(2)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다리가 저리고 신물이 올라왔다. 가벼운 멀미 기운이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 탄 탓이었다. 본가인 덕산 아파트는 어딜 가든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시설, 가령 종합병원이나 백화점, 기차역이나 지하철 같은 것이 없어서 항상 다른 지역구로 나가야했다. 다른 지역구까지 자가용으로 십오 분도 걸리지 않지만 버스를 타면 동네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녀서 오십분이나 걸렸다. 택시를 탈 때에도 미터기 요금대로 값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별로 정해진 금액을 내야했다. 어쨌든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었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 엄마는 부엌에서 돼지고기를 삶았다.
“아직 저녁 안 먹었어?”
오후 아홉시였다. 엄마는 먹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안 먹었냐고 물으려다 관두었다. 벌써부터 치매 노인 취급이냐며 구박을 받을 것이 빤했다.
“정 서방은 많이 바쁘대?”
엄마가 알배추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물었다. 나는 엄마 옆으로 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이 빠른 것은 여전했다.
“그 사람은 일해야지.”
“그래. 가스레인지 잘 쓰고 있다.”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인덕션이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멀쩡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곳까지 부리나케 달려온 이유가 상실된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엄마는 곰국을 끓이다가 깜빡하고 잠들었다. 깊고 큰 냄비가 새까맣게 타버렸다. 다행히 연기를 감지한 센서가 작동해 큰 피해는 없었다.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 내게 엄마는 알츠하이머 초기라고 고백했다. 손등에 박힌 링거만 만지작거렸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묵묵히 서 있던 남편이 병동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의사는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더 나아질 수 없겠지만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보자고 했다. 더 나아질 수 없는 것과 더 악화되지 않는 것 모두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의사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다음 달부터 병원 일층 로비에 알츠하이머 및 우울증 예방을 위한 노인 복지 카페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한 달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오윤선 환자님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니까 참여해보세요. 빳빳한 종이 위에 바리스타 캐릭터가 갈색 앞치마를 두른 채 웃고 있었다. 체기처럼 막혔던 울음이 터졌다. 의사가 티슈를 건네주었다. 죄송해요. 말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에 떠나온, 엄마가 있는 덕산 아파트로 되돌아왔다.
엄마가 삶은 수육은 늘 그랬듯 쫄깃하고 맛이 좋았다. 나는 수육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먹으며 식탁 구석에 쌓여있는 약봉지들을 보았다. 알약 개수만 해도 다섯 종류가 넘었다. 약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엄마가 약을 삼키며 달력에 엑스자 표시를 했다.
“내가 원래 건망증이 심했잖니.”
엄마의 건망증 레파토리는 시장에서 네 살 배기였던 나를 잃어버렸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럼 나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어디서 찾았어?”
“나물 파는 할머니 옆에서 네가 앙앙 울고 있더라고. 그 할머니가 돌아다니지 말고 옆에 꼭 있으라고 했대. 기다리면 엄마가 찾아올 거라고. 그분이 참 현명했지. 아니었어봐! 어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인지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엄마와 나는 함께 웃었다. 나는 매번 같은 레파토리에 같은 질문과 답을 하면서도 그 이야기만큼은 늘 처음처럼 신기했다. 나에게는 없고 엄마에게만 남아있는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그런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