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슴푸레한 새벽녘부터 엄마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더덕 다듬기에 열중했다. 티브이에서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재방송 중이었다. 엄마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애청자였는데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한때 시청자 참여 여행 이벤트를 했을 때 나를 닦달해 사연을 보내달라고 할 정도였다.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은 눈물겨웠다. 그곳에는 약간의 과장이 뒤섞여 이혼한 후 자식들을 키우느라 한 번도 해외여행을 떠나본 적 없는 기구한 중년 여성이 등장했다. 나는 출판사 교정교열 담당답게 엄마의 사연을 보기 좋게 꾸며 쓰면서 이벤트에 떨어지게 되면 동남아라도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생각에만 머물게 되었다. 티브이에서 몽골의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지프차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요즘 개가 안 짖네.”
엄마가 말했다.
“개?”
“응. 옆집에 개가 한 마리 사는데, 평소엔 조용하다가 주말 아침이면 산책 나간다고 왕왕 짖고 그랬거든. 오가다 몇 번 봤는데 젊은 여자 혼자 사는 것 같더라.”
나는 티브이 볼륨을 조금 줄였다. 조용했다. 엄마가 신문지 위로 떨어진 더덕 껍질들을 정리했다.
“젊은 여자 혼자 사는데 남편도 없는 것 같고 애도 없는 것 같고…….”
엄마는 계속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괜히 불편해졌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이웃의 지나친 관심은 어딜 가나 있었다. 현관에 남자 신발을 놔두거나 빨랫줄에 남성 속옷을 널어두라 따위의 조언을 가장한 간섭들이 떠올랐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해외 파견을 떠났을 때에도 몇몇 이웃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뭘 그런 걸 궁금해 해. 엄마도 혼자 살면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소리가 나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더덕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거나 먹어라.”
잘 다듬어진 더덕을 베어물자 입안에서 쌉쌀한 향이 번졌다.
“달지?”
엄마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더덕이 이맘때쯤 가장 맛있어. 이모가 직접 캐서 준 거야. 유기농이지, 유기농.”
엄마는 유기농이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했다. 더덕도 유기농이 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흙에서 나오는 거면 다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똑같은 게 어디 있어. 다 다르지.”
엄마는 신문지를 고이 접어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멍한 표정으로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더덕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행동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딴 생각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정 서방은 같이 안 왔어?”
“나 혼자 왔잖아.”
“많이 바쁘대? 설 연휴까지 일해서 어떡하냐…….”
엄마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했다.
“여기 나 혼자 왔어. 지금은 설 연휴가 아니고.”
나는 한 문장씩 천천히 말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 피어오르던 의뭉스러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엄마는 아, 하고 짧게 탄식하더니 다듬던 더덕을 신문지 위에 그대로 내려두었다. 이제 몽골인들은 직접 짠 소젖을 보여주고 저녁으로 먹을 양고기를 굽고 있었다.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은 어딘가 평화롭고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따가 구워 먹을까? 내가 해줄게.”
나는 어딘지 시무룩해진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더덕들을 집어들었다. 부엌으로 걸어가 개수대에 물을 받고 소금을 뿌렸다. 소금물에 절여진 더덕들은 금방 부드러워졌다. 결에 따라 찢어 접시에 담았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