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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책임, 그 관계에 대하여

주재원 기록 16.

by 채주원 Mar 29. 2025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그 무엇도 잘 믿지 않는다.

사람도, 종교도, 심지어 피를 나눈 혈육조차 믿지 못한다. 인간이 때로 선하기도, 악하기도 한 것은 약하기 때문인데 그 나약함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온전히 믿을 수 없을뿐더러 그 나약함에 의해 탄생한 종교 역시 근원을 모두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과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세상의 모든 종교와 종교인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내게 신뢰라는 건 100%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위험을 부담하고 함께 하겠다는 일종의 결심, 선언과 같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 특히 다수의 구성원들과 조직을 이뤄 함께 나아가는 직장 생활을 하면 어렵게 건네는 그 신뢰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경우를 꽤 자주 겪는다. 가볍게는 내가 상대를 믿고 맡겼던 일들이 이렇다 할 진척도 없이 무너지는 일부터, 무겁게는 내가 내 구성원이라고 믿은 사람의 배신까지. 가뜩이나 객체를 믿지 못하는 내가 어렵게 신뢰를 준 대상이 그것을 무너뜨릴 땐 인류애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들을 겪으면 '사람이 어떻게 그러나' 기가 차서 속상했고, 결국 그런 사람을 못 알아챈 나를 사람 볼 줄 모른다고 탓하면서 신뢰는 역시 함부로 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신뢰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나는 위험을 부담하겠다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을 어느 정도로 부담할 건지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예를 들어, 신뢰하는 조직 구성원에게 일과 권한을 위임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믿음 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tool이 필요하고, 진척 상황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주기 및 방식에 대한 결정과 추진이 필요하다. 여기에,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과 별개로 인간이 나약하기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미니멈부터 맥시멈까지 고려하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부담의 마지노선과 해결 대안을 미리 고민해야 한다. 그 사람이 의외로 일을 미루는 타입일 때, 다른 구성원들과 협업해야 됨에도 늘 갈등의 중심에 있을 때, 열심히는 하지만 결과를 잘 내지 못 하는 타입일 때,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갑자기 떠났을 때, 회사를 배신하고 경쟁사에 정보를 넘겼을 때 등등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그저 맡겨두는 것, 견물생심인 사람이 탐낼 만한 것을 무방비하게 드러내는 것.. 그 모든 것들은 믿음이라는 미명으로 잘 포장된 것일 뿐 사실은 책임 없는 신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게 신뢰는 상대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그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Plan B, 그 안전감에서 오는 책임이 더해졌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 나를 배신한다 해도 그를 탓할 것도 없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로 사람을 대하고 존중하며, 책임을 바탕으로 신뢰를 표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구성원들에게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당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같이 뛰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 역시 노력하고 선택을 책임진다. 리더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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