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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소울 푸드가 바뀌었다

주재원 부록 #4.

by 채주원 Mar 26. 2025


나는 2018년부터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여럿이 크루로 전시회/행사 참석차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1주일 내외의 짧은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던 때라 짐에 컵라면을 챙겨 다닌다거나 출장지에서 한국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 나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기도 바쁜데 굳이 한식을? 특히 해외 한식당은 조리법이나 맛이 현지화되어 있다 보니 한국과 같은 맛을 기대할 수 없는데 음식 값은 꽤 비싸서 굳이 찾아 먹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 음식을 찾아먹는 출장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한 달 이상 장기 해외출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음식을 맛으로 먹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것 정도로 대하던 나 역시 한 달 이상 한식을 전혀 먹지 못하니 한국에서 쉽게 먹던 음식들, 특히 매운 국물 베이스의 요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고유의 미식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나 유난히 밀가루/치즈 등 느끼한 음식이 주식인 나라에 오래 머물 때면 특히 그랬다.  


재밌는 건 해외 출장을 다니기 전까지 해외에 거의 나가본 적 없던 한국 토종인 내게 오랜 시간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 소울 푸드였다는 점이다. 얄쌍하게 잘라 바삭하게 튀긴 후 짭짤하게 소금을 버무린 감자튀김은 그 어떤 한식보다 나를 기쁘게 했다. 더구나 여기저기 출장을 다녀보니 어느 나라를 가든 프렌치프라이는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아무리 그 나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프렌치프라이는 평타는 치기 때문에 음식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아직도 입맛이 별로 없을 때면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 가서 감자튀김만 몇 개 시켜 쌓아 두고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내게 메인은 스테이크 아니고 프렌치프라이즈내게 메인은 스테이크 아니고 프렌치프라이즈


브라질에 와서 살아보니 감자튀김은 어느 식당에 가든 나오는 기본 사이드 디쉬라서 처음에는 신나게 먹었다. 내 생애 프렌치프라이를 이렇게 자주, 많이 먹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 끼니 빼놓지 않고 먹었다. 그래서 처음 파견 나왔을 땐 한식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는데 두 달쯤 지났을 때부터 슬슬 달라졌다.

당시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한식 먹방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특히 자주 검색했던 건 떡볶이, 짬뽕, 김치찜, 마라탕 등 죄다 붉고 맵고 짠 음식이었다. 아마 브라질에서는 그런 매운 음식이 없고, 국물 베이스 음식도 보기 어렵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배달 앱 몇 번 터치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여기서는 그 비슷한 음식도 찾기 어려우니.. 매일 밤 잠들기 전 유튜브를 보며 허기에 몸부림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런 내게 새로운 소울 푸드가 나타났는데, 그건 바로 한국 라면이다.

브라질에 올 때 혹시나 매운 게 끌릴 때 한 달에 한 번쯤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하고 사온 라면이 10봉 정도 있었는데, 매 주말에 먹는 라면 맛으로 그리운 음식의 허기를 달래다 보니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 떨어졌다. 다행히 브라질에서도 아시아 마트가 있는 도시에서는 한국 라면 구하기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가격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한국 마트라기 민망할 정도의 작은 슈퍼가 하나 있는데 라면 값이 한국의 3-4배로 매우 비싸고 종류도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상파울루 봉헤찌로 한인 마트에는 웬만한 봉지 라면 하나가 한국의 2배 정도 되는 가격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해서 상파울루 출장 갈 때마다 왕창 사 온다.


상파울루 봉헤찌로 한인 마트 라면 코너상파울루 봉헤찌로 한인 마트 라면 코너


지난주 상파울루 출장을 한 주간 다녀오면서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들로 마음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라면을 사 올 수 있다는 게 숨통을 트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두 달 만에 끓여 먹는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특히 감동이었던 건 브라질에 와서 처음으로 '냄비에 끓인' 라면이었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생활하던 첫 5개월은 전자레인지로 조리했었고, 새 집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라면도 없거니와 한국 짐도 도착하지 않아 화식을 할 수 없었다.

, 이 별 거 아닌 것이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킨다.

모국을 떠나 사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건 타지살이가 주는 선물인 것 같다.


라면을 채워 둔 주방 서랍장을 보니 당분간은 마음이 든든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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