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그전처럼 똑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는 건 같은데 내 몸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 산다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숨을 쉬는 것에 감사하고, 햇볕을 본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냥 산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던 내가 더 이상 이 모든 삶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루하루가 매일 지옥 같고 자기 전 눈을 감으며 이대로 눈을 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
그렇다고 스스로 끝을 보기에는 겁이 많아서 나쁜 의도를 생각만 할 뿐 시도를 한 적은 없었다.
하루살이들은 매일이 정말 소중하고 하루의 끝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을 텐데 그런 하루살이까지 부러워진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심장이 천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병원에서는 이 심장소리를 느낀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좋게 생각하라는데 도저히 그게 용납되질 않는다. 이게 정말 살아있는 증거였다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 소리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몸의 소리는 더욱 커질 뿐이다.
이 소리를 듣기 싫어서 당장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도 난 자면서 울었나 보다. 눈물자국이 볼까지 있는 걸 보니.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장난 중 하나인 세수를 하며 내가 잘생겼다고 느끼는 재미가 이제는 없다.
거울 속 비친 내 얼굴은 그저 슬펐다. 뭐가 그리 슬픈지 입꼬리는 내려가 있고 두 개의 눈동자 속에 비친 두 명의 나 조차도 세상을 잃은 표정이었다.
침대에 두고 왔으면 했던 그 소리는 여전히 나를 따라 화장실까지 왔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드리기도 하고 팔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그만 좀 들리라고 제발. 나 좀 그만 쫓아다녀."
말하고 생각할수록 더욱 쫓아다니는 지겨운 존재다.
그런 와중에도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몸은 쉴 수 없었다. 아니 쉰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아까운 시간이었다.
몸은 항상 나에게 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더 큰 스트레스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니깐.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그 쉼이 싫었다. 쉬는 행위 자체로 타인보다 뒤처진다 생각을 했고 멍을 때리거나 가만히 있으면 온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나인 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행동은 나를 얽매이고 숨을 못 쉬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도 일을 하러 가기 전 예약된 병원이 2곳이나 있다.
병원은 이제 나에게는 일상이다. 가서 진단을 받아도 정상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더욱 불안했다. 작은 안식처랄까? 정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도 그 하루는 조금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보는 나조차 한심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화를 하며 웃기도 하고, 여러 명이 걸어갈 때는 스치는 대화 속 행복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 동 떨어진 기분. 나 혼자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차라리 꿈이었다면. 누군가 이 꿈을 깨워주며 괜찮냐고 한 마디 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잠긴 생각을 뒤로 한채 나는 차에 탔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내 차이지만 이제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켜자 애플워치는 심박수 경고 알람을 보냈다. 정신과 의사는 이 알람들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심리적 알림이고 웬만하면 워치를 차지 말라고 권유를 했었다.
하지만, 심박수를 확인하지 않으면 무섭다. 가족한테도 말 못 하는 내 심정. 그게 지금 내 현실이다.
가만히 차에 앉아서 보는 애플워치 속 심박수는 어느새 135를 찍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10초. 30초. 1분. 3분. 조금씩 내려간 심박수를 확인한 나는 차를 출발했다.
아무래도 첫 공황발작 증상이 운전하다가 나타난 만큼 운전은 나에게 가장 큰 시련 중 하나다.
엊그제는 친형, 어제는 친한 형, 오늘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면서 운전을 할까.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 불안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병원에 들러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은 숨을 쉬었다.
꽉 막힌 가슴이 조금이나마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천천히 살펴봤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정말 아파 보이는 어린아이까지.
나이와 아픔은 상관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껴면서도 한 편으로 외적인 부분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내가 여기에서조차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분명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더 슬펐고 힘들었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 지금의 난 나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깐.
그리고 일을 하고 집에 온다. 이게 나의 반복적인 하루다. 모든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하루지만 나조차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마음의 병이 아프다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준다면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애초에 겉으로 티를 내는 성격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고 어색한 만큼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 이겨내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괜찮냐는 진심 어린 한 마디를 듣는다면 아마 나는 댐이 터지듯 눈물을 흐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