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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필 Aug 05. 2024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동기 부여

종례시간

 하루에만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살아보니 생각은 늘 많다. 생각은 수시로 변한다. 마음만 먹으면 가장 쉬운 일이다. 교사를 원했던 꿈을 이루고 그 행운에 감사하며 살아온 30여 년, 돌아보니 처음 마음 그대로 늘 같은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간의 일들을 기억에서 찾아본다.     


 담임 3년 차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는 학생이 집을 나갔다. 11시에 야간자율학습(야자)을 마치고 근 1달 간을 학생이 머무를 만한 곳을 수소문하면서 잠실에서 천호동, 길동까지 야간 업소를 찾아다녔다. 학생과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이 기억 속에 또렷하다.

 18년 동안 3학년 담임으로 휴일이나 방학 없이 오후 11시까지 학생들을 지도했다. 시간을 12시까지로 연장한 것도 몇 년 된다. 간혹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잠을 떨치기도 했다. 추석 연휴가 입시 막바지라 추석 당일, 하루만을 멈추고 나머지 날은 같은 시간대로 자율학습을 했다. 아침 7시 전에 출근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챙기고 모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절반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했다.

 네 번에 걸친 정기고사를 힘껏 챙겼다. 첫 중간고사를 마치는 날에 성대한 단합대회를 가졌다. 조 편성을  하고 개인별 준비물을 정했다. 밥과 김치, 부르스타와 구이팬, 돗자리와 음료, 상추와 깻잎, 각종 양념(쌈장,마늘,고추), 별식(소시지,라면) 등. 삼겹살은 그간 수고에 대한 선물로 담임의 몫으로 해서 넉넉하게 준비했다. 학교 소운동장 산책로에 우거진 숲 사이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풍광이 참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은 지붕을 갖춘 학교 옥상을 이용했다. 시험 마지막 날은 각자 준비물을 챙겨 등교하고 시험을 마친 직후 빠르게  움직여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웠다. 함께  준비하고 끝낸 첫 중간고사의 뒷풀이는 서로가 좋은 관계로 가까워지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였다.

 학급 학력 신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전 과목 학급 멘토들이 만든 내용 정리와 문제는 제법 양이 많았다. 선생님들이 출근하시기 전에 학교 복사기를 이용하여 학급 인원수에 맞추어 복사했다. 시험 한 달 전부터 시험 직전까지 이어진 문제 복사를 위해 복사 용지를 문구점에서 구매해 온 적도 많았다. 시간을 쪼개서 과목별로 시험을 보고 평가 후에 결과에 대한 처리까지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성과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즐거이 챙길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담임으로 함께 한 다양한 모습의 제자들이 1,500여 명에 이른다. 함께 했던 시간과 제자들을 떠올려보면 그 안에 30년이 넘은 시간이 고스란히 있다.     


 학교 행정 업무도 있었다. 15년 동안 부서의 기획, 창의체험활동부 부장, 학년 부장(1,2,3학년) 업무도 그 시간 안에 있었다. 학급 담임을 하면서 맡았던 보직들이다. 1997년 신설된 특별활동부 선도학교 업무 담당의 유공으로 다음 해 다녀온 금강산 관광 연수, 2006년 3학년 부장으로 서울대 수시 전형 18명 합격 포함 주요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와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고 온 대마도 졸업 여행, 창의체험활동 부장을 맡아 10여 년 연예계에서 활동하다가 당시 대학 축제 전문 기획사를 운영하던 제자의 지원으로 성대하게 만든 80주년 한맥제(학교 축제) 등이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배려하고 챙겨주고 함께하는 학교의 좋은 분위기는 모든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고 늘 기대만큼의 성과가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 역사 소설 <창업>을 출간했다. 유년 시절 <맹자>를 배우고 역사를 접하면서 크게 다가온 인물이 고려 말 혼란기를 살았던 정도전이다. 한국사 수업에서 발표 수업 주제로 정몽주와 이방원을 포함하여 토론을 진행했다. 이색의 제자로 함께 공부했으며 마음을 나누었던 정몽주와 정도전은 역사의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같은 길을 가던 이방원과 정도전도 왕권과 신권의 우위를 둘러싼 생각과 입장의 차이로 대립한다. '역사 속의 라이벌'인 이들의 선택은 개인뿐 아니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정도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자들이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동필 장학회’를 만드는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정도전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격적인 자료 모으기와 글쓰기 관련 10 여권의 책을 구해 반복해서 읽었다. 주로 방학을 이용한 집필과 다듬기를 거쳐 5년 만에 책을 완성하였다.          

 

 몇 학년 담임을 맡을 것인지, 어떤 업무를 할 것인지가 정해질 때 나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감사한다.  

   

 학교에서의 많은 일 중에 특별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휴일 없이 오후 11시를 넘긴 야간자율학습을 했던 시절에는 초과근무수당조차 없었지만, 보람과 감사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 시절엔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스마트 폰의 출현은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은 학교 앞 문방구 옆 건물 지하 오락실이 전부였다. 서울시 고입 연합고사에 합격하고 고등학교에 들어 온 학생들이라 성적은 상위 60%이내로 학습의 기본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다. 작은 평수의 낡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독서실도 제대로 없었고 몇 간 학생들만 과외나 학원 수강을 하고 있어서 거의 모두가 교실 자율학습에 함께 했고 방과후와 공휴일를 통해 시간도 많이 확보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학급 임원들과 서점에 들러 과목별로 적합한 문제집을 정해서 단체로 구입했다. 매년 수 차례에 걸친 과목별 50권이 넘는 대량 구매로  당시 도매 서점 사장님은 싼 값에 공급해 주셨다. 학교 덕분에 먹고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주라고 200만 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주시기도 하셨다. 지금도 서점 앞을 지나다 뵙게 되면 몹시 반갑게 인사 나눈다. 참 좋은 인연이다. 매주마다 풀이 상황를 점검하며 시험 때까지 과목별로 서너 권의 문제집 풀이가 진행되었다. 함께하면 더 많이 할 수 있고 힘이 덜 든다. 성과는 입시 결과를 통해 확인되었다.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자율학습 분위기는 참 좋았다. 늘 마치는 시간에 ‘감사합니다’라는 합창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이 그립다.

 1999년, 서강대학교 특차전형에서 교과 내신 성적이 4등급 정도였던 3학년 담임 반 학생이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했다. 외동딸이고 학부모는 염색가공 사업을 하는 재산가라는 사실을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딸의 합격에 대해 크게 감사했다. 당시 특차전형을 준비하며 잘 챙긴 것은 학생의 영어 성적이었다. 대부분 대학은 고등학교 재학 중의 실적만을 인정하는데, 서강대 특차전형에서만 중학교 과정 실적을 포함한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간의 영어 과목 우등상 실적을 중심으로 서류를 만들었다. 합격했다.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정중하게 청을 했다. 사업으로 성공했지만, 딸아이의 공부를 챙겨주지 못해 마음이 쓰였는데 믿기지 않는 결과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학교 주변에 주공 아파트 단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중 여러 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 내가 사는 16평 맞은 편에 있는 18평 아파트를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담임 반 학생의 입시를 챙기는 것은 교사의 본분임을 말씀드리며 사양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학교를 방문하였으나 그때마다 그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어느 날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학부모님이 다녀갔다 하였다. 몇 날 후에 학교에 잠시 들러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선생님만큼 사모님도 대단하다 말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이 이야기가 부실에 함께하는 선생님들을 시작으로 주변에 알려지면서 가장 큰 보상을 받았다. 교사로서 진심을 인정받은 것이 이어지는 교직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2018년에 학생과 학부모, 제자들의 추천으로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2020년에는 3개월 동안 동료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제자들을 통한 실사 검증을 거쳐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과 홍조근정훈장, 세금 없이 2,0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순간 정말 기뻤다. 500만 원은 제자들이 이끄는 장학회에 기부하였고 나머지는 그간 교직 생활에 소신있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가장 큰 보상은 내가 만든 의미 있는 시간의 기억이다. 교사로서 살아온 삶이 더없이 행복했고 그 속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현재와 미래에 감사한다.     


 새로운 학년, 새 학기 시작인 3월은 늘 설렘과 기대 속에 상담으로 몹시 바쁘게만 보냈었는데 올해는 아주 허전하고 한가로웠다. 1학년 때 담임으로 함께했던 현재 2, 3학년 제자들과의 상담을 챙기면서 교직에서의 마지막 1년에  걸맞는 35년 교직 생활의 보고서로 <종례 시간>의 집필을 생각했다.     


 교육경력이 보태지면서 학생들의 성장을 세심하게 살피게 되었고 그때부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동기 부여’였다. 이를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삶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 고전, 인생·성공·자기 계발 관련 책들을 읽으며 좋은 구절을 모아갔다. 교무수첩마다 담긴 학생들에게 들려준 글들을 들쳐 보는 감회가 새로웠다. 학생들의 긍정적인 성장에 힘이 되어 준 내용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담아가고자 한다.    

 

 교직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여름방학을 특별하게 보냈다. 승용차를 집에 두고 버스로 출근한다. 아침에 버스에서 보내는 30분 정도 시간이 새롭다. 그  시간에 그날 집필할 내용의 방향을 생각나는 대로 수첩에 적어 간다. 오전 7시 50분에 학교에 도착해서 점심도 간단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오후 5시 30분 정도까지  학교에  머문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 후에 스터디 카페를 찾았다. 서너 시간 정도 작업을 이어갔다.


 역사 소설 <창업>을 마무리할 때는 벽을 느낄 때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정도전 사당을 찾았다. 서너 시간을 그곳에 머물면서 생각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이야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종례 시간> 이야기 공간은 학교다. 하루 수 차례 복도를 거닐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인지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복도를 지나 추억이 느껴지는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땀줄기가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한참을 있다가 자리로 돌아오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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