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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고

by 온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결정했다.

우리나라와 정치와 사회에 많은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20대에 두 번째 탄핵이다. 첫 탄핵은 친구 H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16년, 그때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었다. 내 또래 중 H만이 사회이슈나 정치에 대해 조심스럽게 때로는 대담하게 의견을 얘기했다.


탄핵 국면으로 들어섰을 때 친구 자취방을 놀러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바닥에 넓은 도화지 한 장을 놓고 연필로 대자보를 작성하던 H다. 이 친구가 무언가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나서는 친구였던가. 생소한 모습이었다.


또 다른 날은 같이 혜화역으로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다. 지하철로 나오니 마침 근처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고 친구는 갑자기 자기도 집회에 참석해야겠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당시에는 H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속을 파토낼 정도로 저 집회가 중요한걸까. 눈밖에 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자보를 붙이는 저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때 내게 정치는 ‘뭔진 모르겠고, 알고싶지도 않지만’ 더럽고 남얘기 같은 일이었다. 정치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내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 오판한 것이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정치는 내게 그저 닿고싶지 않은 주제였다. 그런데 내게는 H말고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전 남자친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헤어지고 나서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여행에 돌아오면서 차에서 노래가 아니라 뉴스를 틀어놓는 그를, 가족들이 모이면 정치에 대해 얘기한다는 그 가족의 문화를.


그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뉴스 라디오를 틀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야 공방’이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내 무지함이 무서웠다

여당 게스트가 나와 얘기하면 그말이 맞는 것 같고 야당 게스트가 나와 얘기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무지하니 갈대마냥 판단을 할 수 없던 것이다. 바보가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피하고 싶었다. 한 개인이 사회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들, 세상은 어차피 권력이 있는자들의 조작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관심을 가져봐야’라며 내 자신을 과소평가했다.


두 번째, ‘국민을 대표하는’자들이 이익만 챙기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정말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민의 신뢰를 깨지 않는” 등 국민을 위한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수식어는 같아도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니 신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유리할 때는 주장하던 정책을 불리할 때는 보류하는 그런 이중성.


그럼에도 이런 지점들을 묻어두고 좁은 시야를 갖고 살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무지하면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면 되고 한 전문가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내 주관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는 것이기에 사회에서 결정한 정책이 내게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뿐.


계엄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며 이전의 계엄과 지금의 계엄은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이전의 계엄을 겪었다. 내 부모님, 내 조부모님 세대는 거리에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정부를 비판하면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거리에 군인들이 난무하는 시대를 겪었다. 그런 시대를 겪은 국민이 ‘이번엔 다른 계엄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일어나지 않은 미래이지만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 생활과 내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엄이 선포된 시간에 나는 헬스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계엄이 선포됐을 때 밤에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얘기가 세간에 돌았다. 나보다 내 윗세대가 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기억에 기반한 당연한 일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뉴스에서는 여야의 기싸움이 이어졌다. 솔직히 귀가 피곤했다. 탄핵심판이 미뤄지면서 기각이냐 각하냐 인용이냐를 두고도 매일 매일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보며 덩달아 불안해졌다. 그럼에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탄핵심판의 결정이 내 삶에 미칠 영향을 모르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용결정이 난 지금, 우린 다시 대선을 치러야한다. 이전에는 별생각 없이 ‘싫어하지 않는’쪽에 투표를 했다. 최선책은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중하게 내 소중한 표를 행사하려고 한다. 단 한 표더라도 이 표가 미칠 영향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긴 겨울이 끝났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번 겨울은 너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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