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은 고난을 극복했을 때 찾아온다
당신의 최애 만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나는 디지몬 어드벤처가 단연코 내 최애 만화이다.
(파워디지몬도 좋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1편이 더 잼썼음)
엄청 어릴 때 본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생각날 때마다 찾아본다.
내가 디지몬을 계속 찾아보는 이유는 디지몬의 진화 장면에서 전율이 돋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모험을 하며 파트너 디지몬과 고난을 겪고 그걸 극복하면서 각성하는데 그 각성의 결과로 디지몬은 진화하고 주인공들은 한 단계 성장한다.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그 시간을 극복해야 각성이 찾아오고 좀더 달라진 내가 될 수 있다.
20살에 나는 처음으로 ‘진화’했던 것 같다.
집안에 누군가가 아프면 잠시 휘청인다고, 그때는 우리 가족이 그랬다.
건강할 것만 같던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고 지금도 엄마는 오른쪽 팔이 약하시며 매일 세끼 약을 드신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학생인 동생을 케어할 수 있는 건 대학에 막 들어가 여유가 생긴 나뿐이었다.
뭐 케어라고 해봐야 이마트에서 온갖 냉동식품을 사서 구워준 게 전부이지만, 당시에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서 나물반찬만 먹었던 동생은 가끔 내가 와서 구워주는 냉동식품이 맛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모일 때마다 그때 이후로 내가 많이 철이 들었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다 자란 어른이 된 줄 알았다.
누구보다
독립심이 강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알아서 잘하고,
그리고 스스로 보호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겉만 어른스러워졌을 뿐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립심이 강했지만 매 순간 외로웠고 누군가의 애정을 항상 갈구해 왔다.
생활력이 강했지만 온전히 나 혼자만을 위한 생활력이어서 본집에서는 항상 가족들과 부딪혔다.
알아서 잘해왔지만 그렇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나약한 나의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익숙하지 않았다.
스스로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공격적인 태도가 나가기 일쑤였고 한없이 자책하면서도 만만해 보이지 않겠다며 합리화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미워하기도 했다.
내게는 한없이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면서도 동생에게는 관대해보이는 대우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도 곪고 가끔은 가족이 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날카로워졌다.
결국 살짝 보면 어른스럽지만 알고 보면 그저 아직 애정을 필요로 하고, 애정이 필요한 한없이 이기적인 어린아이였을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났고 그 사람을 사랑했고 결국 그 사랑을 잃었다.
같은 시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사고를 겪은 엄마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나게 했다.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은 미성숙함 투성이인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내게 기회일지 모른다.
나를 내가 돌볼 수 있는 기회.
좀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
지금이 전환점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진화했다.
아니, 진화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마음이 힘들다면, 충분히 아파한 후에 이것이 기회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시 모험을 떠나고 어둠을 해치우고 진화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