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14년 가까이 키운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나는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했다. 말년에 여유로운 군 생활을 보내고 있던 무렵, 흔히 짬타이거라고 일컫는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부대 취사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막연하게 그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이따금 우리를 찾아주는 고양이를 행정병 대원들과 함께 이뻐해 줬다. 계속해서 부대 곳곳을 누비며 안전한 곳을 찾는 듯했던 고양이는 우리 부대 지하에 있던 조그마한 창고에 자리 잡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알고 봤더니 암컷 고양이였고 임신을 한 상태였다. 며칠 후에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세 마리를 출산한 그 친구는 우리의 축하와 돌봄을 잔뜩 받았고, 나는 새로운 생명들에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애완동물을 키우는 요령이 전혀 없어서 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고, 물과 먹여도 되는지 모를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끼를 낳은 지 며칠이 된 어느 날, 지하 창고에서 한참 지내고 있던 어미 고양이는 새끼 한 마리만 데리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두 마리는 놔두고 간 이유를 알게 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머지 두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다. 너무 이뻐했던 친구들이고 우리가 나름대로 잘 돌봐줬다고 생각했기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고양이들을 잘 챙겨주고 있었던 나를 포함한 대원들은 새끼 두 마리의 시신을 수습해서 뒷산에 잘 묻어줬다. 땅에 묻어줬지만, 계속 눈에 삼삼하게 아른거렸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나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휴가를 나가거나 남는 시간이 있으면 새끼 고양이 입양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 끽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각종 인터넷 고양이 카페들을 돌아다니면서 입양할 사람을 찾는 새끼 고양이들이 있는가 찾아보는 정도였다. 제대한 나는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방에 짐을 풀고 딱 열흘 만에 고양이 카페에서 첫째 고양이 D의 입양을 결정했다. 3개월짜리 길고양이(코리안 숏헤어)를 위해 책임비 3만 원만 지급했다. 심지어 고양이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무지했던 터라 캐리어도 없이 크로스백 하나만 덜렁 들고 갔다. 내게 D를 건네주던 사람은 내가 미덥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내가 지불한 책임비 3만 원으로 D의 예방주사를 맞혀주기도 했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집을 오래 비우는 일이 잦았다. 항상 집에 혼자 있는 D가 눈에 밟혀서 친구를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D를 입양한 지 약 3개월 만에 한 마리 더 입양하자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묘연이 닿게 된 친구가 바로 M이다. D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고양이 카페들을 뒤져봤고, 4개월 정도 되는 젖소 무늬의 길고양이가 아름다운 눈망울로 나를 단번에 홀려버렸다. 내가 살면서 사진으로 본 고양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미모를 지닌 말 그대로 미묘였다. 바로 연락해서 그다음 날 한달음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가서 M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D와 M과의 묘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나의 자취방 시절부터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고, 내 인생의 대소사들에 항상 함께했다. 결혼, 신혼집으로의 이사, 딸의 출생, 또 다른 이사. 이 모든 행사에 그들도 계속 함께했고, 나의 성장과 변화를 옆에서 지켜봤다. 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이 친구들과 함께한 지 14년이 넘었기에 언제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노묘가 되었다. 그렇기에 집을 오래 비우고 나면 이 친구들이 먼 길 떠났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귀가하곤 하는데,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다. 듣기로는 고양이들의 일반적인 수명은 15년 정도이고 별 탈 없이 반려묘 생활을 한 친구들은 20년까지도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쁜 생각은 하기 싫어서 좋은 얘기만 받아들이고 수명이 5년 정도 남았다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깊은 잠을 자는 편이라 꿈을 꾸더라도 잠에서 깨면 머릿속이 깔끔하게 비워지면서 꿈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선명한 꿈을 꾸는 경우가 가끔 있다. 너무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꿈들은 보통 한두 개의 장면이 이미지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하필 오늘이 그런 꿈을 꾸는 하루가 될 줄이야. 꿈속 배경은 누아르 영화같이 어두운 계열의 영화에서 보는 뉴욕이나 홍콩의 칙칙한 밤 골목 어디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집 밖에 나와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M을 찾으며 도심 한복판을 헤매고 있었다. 다가가면 도망가고 다가가면 도망가는 M을 쫓아서 어느 벽돌 건물로 들어갔는데, 비상계단 쪽으로 갑자기 꺾어 들어가는 M을 보고 이제는 잡을 수 있겠다며 안심하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M은 누가 놔뒀는지 모를 사료 그릇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제 곧 생포할 수 있는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 찰나에 갑자기 나의 시야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고개를 돌린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M을 봤을 때 이미 참사가 벌어진 후였다.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M은 망나니에게 참수당한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작두로 자른 것처럼 정확히 정수리부터 턱까지 두개골이 수직 방향으로 두 동강이 났고, 하회탈처럼 덩그러니 남은 M의 얼굴 속 텅 빈 눈동자에서는 살려달라는 듯한 슬픔과 14년 전에 나를 홀렸던 그 초롱초롱함이 묘한 공존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충격적이고 선명한 꿈을 꾸고 나면, 해몽을 검색하고 싶어진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나쁜 일이 없을 거라는 평온함을 얻고 싶은 얄팍한 마음에 길몽이라는 확인이 받고 싶어 진다. ‘애완동물 고양이 죽음’이라고 검색하고 원치 않는 검색 결과를 무시하면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옆에서 화장실에 가겠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악몽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