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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친일파2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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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리 Sep 24. 2024

흔들리지 않는 신념

제8 장 유럽(5)

 학교 생활을 한 지 이 년째 되던 해에는 처음으로 정상적인 교제를 하는 여인도 생겼다. 캐나다에서 유학 온 로빈 크리스토퍼라는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두 번째 해를 보내고 있었다. 사회학, 국제 관계학 같은 나에게 생소한 분야를 전공하고 있던 그녀지만 이상하게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해외에서 온 유학생의 모임에서 만났다. 그 모임의 유일한 동양인인 나와 멀리서 봐도 한눈에 서양인임을 알 수 있는 금발 머리의 그녀는 예상외의 조합이었다.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그녀의 얼굴 또한 내 상상 속에 전형적인 금발 머리 여인과는 차이가 있었다. 예상외지만 은근히 편안한 이 여인과 만남은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평범한 연인처럼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일상에 대한 대화도 하고 그렇게 지냈다. 로빈하고 지내는 이런 관계는 처음이었다. 나에게는 지켜야 하는 동생이라는 사명감에 설렘을 숨기고 어떤 감정인지도 모른 채 떠나보냈던 첫사랑이 있었다. 그저 육체적인 관계만을 가졌던 헝가리에서의 여인들도 있었다. 그동안 어떤 여인 하고도 이 순간 로빈하고 지내는 관계를 갖지는 못했다. 난 그녀를 아주 사랑하지는 않았다. 두근거리는 설렘도 가슴이 아린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안정적으로 변해 간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신홍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일상을 공유하는 연인이 있었다. 영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내가 하는 공부에 만족을 하였다. 아주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대단한 신념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난하고 안정적인 생활이었다. 이런 나의 삶을 지키고 싶었다. 사장님이 말하던 신념을 점점 잊어간다는 사실을 망각조차 못 했다. 그저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전공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고 난 점점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간다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새 영국에 온 지 오 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공부는 결실을 맺고 있었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동안 난 이런저런 변화를 겪어야 했다. 먼저 로빈이 캐나다로 떠났다. 그녀는 일 년 전 공부를 마치고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다시 영국으로 나는 캐나다로 상대방을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헤어졌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더 먼 곳으로 떠났다. 이제 나에게는 신홍만이 남아 있었다.

 고령의 사장님은 평상시 앓던 지병이 악화되어 헝가리를 떠나야 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치료를 받으면서 점점 건강을 회복했지만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난 사장님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나만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이제 조금 더 노력하면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음식점 대신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장님 덕에 어렵게 얻은 기회의 결과물이 나오려 하고 있었고 급여도 생활도 나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연구와 논문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 전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하였다. 의례적인 얘기인 줄 알고 바쁜 일이 좀 끝나면 가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사장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그렇게 놓쳤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장님의 집에 들렀다. 언제나 나를 친자식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던 게일 여사는 평상시와 다르게 다정하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사장님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소홀했던 나의 태도 때문인지 그녀는 나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난 사장님이 나에게 남기는 편지 한 장을 들고 그 집을 나섰다.  



 ‘내 아들 같은 작은 존에게.

 너를 처음 봤을 때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난 겨우 20살이 막 지날 무렵 처음으로 군인으로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아주 험준한 산악 지대가 나의 첫 전쟁터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소규모 부대를 이끄는 소대장으로 의욕에 충만하던 시절이었지. 하지만 그 의욕이 좌절로 바뀌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전투에서 난 부대원을 모두 잃고 겨우 내 목숨만 건진 채 구조되었다. 총상을 입고 살려 달라는 부하들을 외면한 채 혼자 도망치다 겨우 구르카라는 용병을 만나 목숨을 부지했던 것이었지. 구르카는 정말 용감한 군인이었지. 그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구한 뒤에 칼 한 자루를 들고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난 그 후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고 군인으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난 그때 나와 구르카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상처 입은 부하를 버리고 건진 내 삶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후회였다. 차라리 그때 구르카처럼 명예롭게 싸웠다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말한 신념이란 것이다. 평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이 바로 신념인 것이다.

 처음 봤을 때 너의 모습은 구르카와 같았다.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보유한. 그런 네가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영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길 권했었지만 이 또한 큰 도움이 된 것 같지 않구나. 지금 당장의 즐거움이나 편안함은 영원할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거라. 그때 그 산악 지대에서 이 늙은이가 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를 사랑하는 늙은이의 괜한 우려였으면 좋겠구나.

 사랑한다. 아들아.’



 사장님은 다 알고 있었다. 아니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평생 후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난 변했다.

 사장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난 당장의 할 일이 급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공부를 하는지도 잊은 채 오로지 결과만을 원했다. 그 결과가 정말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 사건이 터졌다.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미국의 경제가 한순간에 붕괴된 것이었다.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공황은 여기 이곳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 당황은 차별과 미움의 씨앗이 되었다. 어디에 가든 나는 인종 차별을 겪었고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회의 일원이라 생각했었는데 단지 이방인일 뿐이었다. 가장 먼저 버려져도 아무 상관없는 이방인. 어쩌면 차별은 처음부터 존재했었을 것이다. 학교라는 나의 배경이 그 차별을 막아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기에 내가 크게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기는 학교에도 찾아왔고 가장 먼저 나에 대한 모든 지원이 끊겼다. 그동안 진행하던 연구도 연구원으로 일하며 받는 급여도 모두 취소되었다. 심지어 장학생 명목으로 내지 않았던 지난날의 학비를 다시 내라고 할 정도였다. 박사 학위 논문이 거의 마무리되었고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사장님에게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도 없었다. 사장님의 지인이자 나에게 항상 호의적인 지도 교수도 한순간에 변했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다 허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허울뿐이었지만 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유럽에 온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난 오히려 조국과 민족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새로운 후원자가 나타났다.



 이제 나의 후원자는 미쓰비시 공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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