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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친일파2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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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리 Sep 23. 2024

개인의 삶

제8 장 유럽(4)

 그날 저녁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나하게 취할 정도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만날 정도로 우리 셋은 잘 어울렸다. 참 신기한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배경도 삶의 목표도 모두 달랐지만 이상하게 같이 있으면 편안했다. 우리는 만나서 참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전쟁과 유럽의 정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고 제국주의의 침략과 우리의 독립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하루 일과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들도 물론 많이 했다. 예전에도 했음 직한 이야기였지만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비장한 마음으로 다짐을 하듯 말하던 주제를 편안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저 하나의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말속에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내 생각은 이래 이러면서 남의 얘기를 하듯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난 하나의 온전한 개인이었다. 물론 죄책감 같은 느낌도 있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도 했었다. 어떠한 것에도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 난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는 이런 삶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의열단에 관련된 것은 말할 수 없었지만 마자르를 찾는 것이 독립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여러 방면으로 날 도와주었다. 아드리안은 가끔 미군 친구들을 소개해 줬고 그들을 통해 여러 종류의 폭탄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신홍은 그 성격 때문인지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았고 헝가리 조병창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인맥이 닿아 있었다. 신홍을 통해 만난 조병창 직원을 통해서도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자르의 행방도 마자르를 대신해 나와 함께 아시아로 떠나 줄 존재도. 결국 헝가리에 온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난 마자르를 찾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의백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거의 잊고 살았다. 

 이곳에서의 삶도 이제는 점점 안정되고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도 제법 되었고 유럽에서의 생활도 많이 익숙해져 갔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원래 젊은 청년들이 입대해 나라를 위하여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을 큰 명예라 생각하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입대를 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비난을 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나라를 위하여 떠난 전쟁터에서 그들은 상처만 가지고 돌아왔다. 전쟁이 끝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 후로 그들은 개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상처를 잊기 위해 매일 취했다. 오로지 자신과 지금 이 순간만 즐기며 살고 있었다. 나 또한 점점 그렇게 바뀌어갔다. 국가도 민족도 점점 중요치 않아져 갔다. 나의 전쟁은 그들과 다르게 끝나지 않았음에도. 하루하루 일을 하고 끝나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범한 유럽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술에 취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육체적인 관계를 위한 여자들과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난 더 이상 독립투사가 아닌 유럽에 살고 있는 존이라는 동양인일 뿐이었다.

 헝가리에 온 지 어느새 일 년이 되었고 아드리안은 떠났다. 그리고 신홍과 나도 떠났다. 아드리안은 군대로 복귀를 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떠났다. 더 이상 직접 전투를 할 수 없었기에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책상 앞의 군인이 되기로 하였다. 그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유랑은 여기까지였다.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루종일 즐기고 취하고 나면 그 뒤에 허탈감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과연 돌아갈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국으로 떠났다. 나의 상사이자 사격장의 주인인 또 다른 존은 영국인이었다. 그동안 그와 많이 친해졌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에 대해 하나씩 얘기를 하였다. 퇴역 군인이었던 그는 나의 과거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이해를 해 줬고 우리의 독립을 응원해 주었다. 또한 마자르를 찾고 있던 나의 사연도 포기해 버린 상황도 모두 알고 있었다. 군 복무 이후 그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생각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헝가리에 정착했다. 군대 시절 사격에 특출 난 소질이 있었던 그는 특기를 살려 사설 사격장을 차렸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생겨서 사격장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자네에게 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는지 아나? 자네가 그 시합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네. 그것이 리볼버를 처음 쏘면서도 소총을 쏘듯 잘 쏠 수 있었던 이유일세. 그런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피나는 훈련을 해야지 가능한 일이지. 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네. 그래서 자네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네. 그런 자네가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네. 어떤가? 나와 함께 영국으로 가서 다시 도전을 하는 것이.”

 사장님은 나를 위해 영국행을 제안하였다.

 그 시절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의 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마자르는 찾지 못했지만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나도 아드리안처럼 새로운 시작을 해야만 하였다. 사장님은 나에게 정식으로 학교를 다닐 것을 권유하였다.



 그렇게 영국이란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장님은 꽤 명성이 있던 군인이었다. 사장님은 군인 시절에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었고 그때의 인맥을 통해 난 쉽게 영국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난 중국인 신분으로 영국에 체류할 수 있었고 명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모두 사장님의 배려 덕이었다. 혼자였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와는 다르게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있었기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남는 시간에는 돈을 벌었다. 음식점에서 접시 닦이 같은 허드렛일을 하느라 예전보다 급여도 근무 환경도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좋았다. 몸은 고되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뿌듯했다. 

 이제 이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신홍이 찾아왔다. 그 또한 영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를 응원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각자의 모습을 존중했고 묵묵히 응원했다. 예전처럼 그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씩 그와 만나면 즐겁고 편안했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이였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일 년이 지날 무렵 나는 물리학과 화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도 많고 생김새도 전혀 달랐지만 여기 학생들과 쉽게 친해졌다. 헝가리에서 친구를 만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학교라는 소속감 때문인지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는 같은 처지의 동질감 때문인지 차별도 적었고 모두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헝가리 때와는 다른 느낌의 즐거움이었다. 
 아직은 기초 이론일 뿐이지만 여기서 배우는 것들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였다. 의백과의 약속에 대한 부담감에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곳에서 나의 삶이 점점 안정을 찾고 있었다. 헝가리에서 개인적인 삶에 대해 배웠다면 여기서는 안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안정을 언제나 유지하고 싶었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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