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 장 후회(2)
나는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부대에 합류하였다. 경력을 인정받아 군수 물자 관련 부서에 배치되었지만 나의 주요 업무는 통역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주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아드리안이었다. 그는 군수 물자 관리와 보급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로 나의 상사가 되어서 같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2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나에게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다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예전과 다른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나는 더 이상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이상했다. 그는 나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없다 하였지만 난 자꾸 그를 피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서와 상관없이 통역을 하러 다니느라 그를 자주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조차 편하게 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의아했다. 항상 그리웠던 친구였다. 특히 복종적인 인간관계가 지배했던 일본에서는 아드리안과 함께 했던 유럽에서의 추억이 정말 그리웠다. 그런 나였지만 그를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아니라고 수없이 나 자신에게 외쳐 봤지만 난 그때 나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드리안을 볼 때마다 사명을 가지고 유럽행 기차에 오르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조차 쉽게 떨쳐낼 만큼 나에게 사명감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명감 덕에 몸은 고돼도 마음은 편하게 지냈었다.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고 있다. 몸은 편해도 마음이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나를.
한반도 남쪽을 통치할 미군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은 한 개의 군 전체가 주둔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변수 속에 훨씬 작은 규모인 한 개의 군단이 급하게 파견되었다. 소련의 남하를 염려해 주요 장비도 놓고 가능한 병력부터 서둘러 한반도에 상륙했다. 그런 그들에게 통치 방침도 제대로 수집된 정보도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연합국 주요 국가들은 회담을 통해 전쟁 후 전범 국가와 그 식민지를 어떻게 통치할지 협상하였다. 미 국무부는 외교적 협의 사항을 고려해 한반도의 통치 방침을 정해 놓았지만 급하게 파견된 미 24군단을 지휘하는 하지 중장은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는 어떤 준비도 못한 채 한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왔다.
그런 하지의 생각과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있었으니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통역 가능자였다. 윌리엄스는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군의관이었던 그는 미 24군단이 제물포에 상륙할 때 한국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군이었다. 통치를 위한 첫 번째 단추인 현지 상황 파악은 정치 지식이 전무한 한국어가 가능한 한 의사의 개인 의견에 의해 결정되었다. 동양인은 기본적으로 미개하며 발달된 서구의 문명에 의해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하지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서구의 좋은 교육을 받은 부유한 지배층들을 이용한 통치를 주장했다. 유학생 출신의 부유한 지배층들은 대부분 친일 세력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스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치 않았다. 조선 총독부의 영어 통역관인 오다 야스마를 통해 소개된 이묘묵은 윌리엄스가 말한 딱 그런 사람이었다. 왕성한 친일 행적을 하였지만 미국 유학생 출신의 영어에 능통한 그는 미군정의 마음에 딱 드는 인재였다. 그는 하지의 개인 통역이자 비서실장이 되어 미군정의 실세가 되었다. 윌리엄스와 이묘묵은 해방 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한 독립운동가 몽양 선생을 친일파이자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고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군정부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 첫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지며 역사를 바르게 잡을 기회가 멀어져 갔다.
대부분의 요직은 이런 사람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특별한 자격 조건을 갖추거나 심사를 받지 않았고 한국인 실세들의 추천과 군정부의 승인이라는 아주 단순한 절차에 의해 임용되었다. 한국인 실세는 군정부와 동일한 생각을 가진 존재였기에 승인이 거부될 일은 없었다. 군정부는 심지어 조선 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을 그대로 유임을 시키려 했으나 국민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대부분의 관리는 친일파로 가득 채워졌다. 특히 경찰은 해방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친일파의 근거지였다. 경찰 간부의 대부분은 일제 시절 악명 높던 친일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으로 악명 높던 일제의 고등 경찰 출신 노덕술이나 하판락 같은 이들도 경찰 신분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더 이상 친일 경찰이 아니라 투철한 반공 투사로 여겨졌다. 이들은 마치 과거 자신의 행동을 잊은 사람들처럼 거침이 없었다. 노덕술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좌익분자를 색출 검거하는 애국 경찰이라며 거침없이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일본이 망하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의 세계는 여전히 견고하였다. 그런 그자가 약산을 체포하는 일이 발생했다. 약산이 누구인가? 조선 총독부조차 벌벌 떨게 만든 의열단의 단장이자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친 애국지사이자 독립운동계의 거두였다. 그런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고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늘에 있는 제비 형님이 통곡할 노릇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미군정의 인맥을 통해 노덕술을 만났다.
“미군정의 높으신 분께서 일개 경찰인 나를 찾으셨다고요?”
노덕술은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말했다.
“약산을 체포했다고 들었소. 당신이 그를 체포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당장 풀어 주시오.”
난 그의 여유로운 태도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리의 정권을 위협하고 체제를 무너트리려는 반동분자의 혐의가 있는 자요. 내 아무리 일개 경찰이지만 이 조국을 북쪽의 빨갱이들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그는 여전히 느긋했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가 진정 누군지 몰라서 그리했단 말이오? 우리가 독립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약산 같은 독립지사들 덕분이오. 일본의 개처럼 살던 당신이 그런 분들을 건드리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약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난 이성을 잃고 그에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