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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을 아십니까?

세상에 알려진 커다란 이상함

by 푸른알약

[<-1화​]


자식을 낳은 어미가 자식을 몰라볼 수 있을까요? 그 어미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데 다른 사람들이 네 자식이 맞다며 그걸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이 미술계에서 있었습니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아이와 같다고도 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커다란 산통을 겪으니까요. 품에 잉태해서 세상에 내보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작품이 작가에게 아이와 같다는 것은 과장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큐레이터라는 회원이었습니다. 아, 모임에서는 이름대신 활동명을 부릅니다. 큐레이터는 그분의 활동명이죠. 예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활동명이 자연스럽게 큐레이터가 되었습니다.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1991년 3월의 어느 날, 국립현대미술관은 순회전을 열었습니다. 거기엔 당시에도 독특한 감성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했던 천경자 화백의 미공개 그림이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호사가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이 작품이 처음 발견된 곳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자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고, 김재규 중정부장은 미술품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의 권력자가 부정축재의 수단으로 삼았을 정도니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겠는가 하는 말들이 입에 오갔다고 합니다. 이 소문은 천경자 화백의 귀에도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 화백은 작품의 진위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아마도 시간이 지나서 천 화백의 기억이 가물가물 한가보다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작을 하는 미술가 중에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작품을 집으로 보내 천 화백에게 보여주기로 합니다.


마침 큐레이터가 당시에 미술관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방문단의 일원으로 천 화백의 자택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내를 받아 화실에 들어선 방문단은 천 화백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직감했다고 합니다.


천 화백은 꺼내놓은 자신의 그림을 앞에 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 긴 침묵을 깨고 천 화백이 나지막이 내뱉던 순간을 큐레이터는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큐레이터의 말에 따르면, 단호함을 넘어 결연함이 느껴지는 말투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하지만 같이 갔던 학예관은 애써 웃으며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 화백은 단호했다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법은 없습니다.” 말을 마친 입꼬리는 처연했고, 천 화백의 시선은 등 뒤로 보이는 캔버스 속의 그녀처럼 형형했다고 합니다. 방문단은 그 기세에 압도되어 아무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더군요.


그러니 작가 스스로가 위작이라 평하는 그림을 들고 나올 수는 없었겠죠. 대문을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된 방문단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화실을 나섰고, 대문을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큰일이 났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빈손으로 나왔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다시 들어갔지만 천 화백은 그림을 들고 내실로 들어가서 다시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시를 하기 전에 미리 알려드리고 협의하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편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다음 날에도 화백 측에서 어떤 회신이 없자, 미술관 측은 마음이 급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더 격식을 갖추고는, 그림이 원래 표구되어 있던 액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야 천 화백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방문단이 격식을 차린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 화백은 이전의 방문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태도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천 화백은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는지, 특히 머리 부분의 거친 덧칠 상태를 지적하면서 진품이 아님을 강조했다더군요.


이 말은 들은 방문단은 그림을 액자에 넣은 채로 확인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요청했답니다. 액자에 표구된 상태라서 그런 덧칠을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하면서요. 천 화백이 내어준 그림을 다시 표구했더니 어느 정도 수긍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방문단은 대문을 나설 때까지 절대로 그 그림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품을 들고 방문단이 복귀하자 미술관에서는 천 화백이 진품임을 시인했다는 말이 돌았다더군요. 전전날, 천 화백의 눈빛을 기억하던 큐레이터는 ‘그럴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관의 진품 인정 발표가 나자마자 곧바로 천 화백은 사실 무근이라며 미술관의 주장을 반박해버립니다. 큐레이터의 말로는, 미술관이 발칵 뒤집혔다고 하더군요. 이에 관장이 직접 나서서 감정위원회를 꾸리기로 합니다.


미술품을 상업적으로 유통하는 공식 창구인 한국화랑협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술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측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공적 대표기관이라면, 화랑협회는 사적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죠. 전국 화랑의 대표 협회니까요.


미술관 측은 이 화랑협회에 감정위원회 구성을 촉탁합니다.



[이 시리즈글의 모든 등장인물, 사건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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