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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선 Aug 03. 2024

2장. 너의 꿈은 뭐였지?

나도 어느 시절에는 꿈을 꾸었었다.

나를 쳐다보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습만 자란 어른이었지, 어쩌면 어렸을 적 이루지 못한 무언가에 갇혀있었던 거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없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날들의 연속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언제 그것을 내려놓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웃기게도 내가 떠올려낸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연예인이었다.

잊고 지냈던 나의 그 시절 모습을 그려보니, 어린아이였던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끄러움은 많았지만 학예회를 꽤나 기대하고는 했었다.

옷 입는 것도 좋아해서 언니 옷장을 살피며 여러 옷들을 내 방식대로 입어보기도 했다.

한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가 나에게 '오늘도 멋쟁이처럼 입었구나'라고 말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재주가 많았다기보다 누군가가 내가 준비한 공연을 봐주고 남들과는 다른 어떤 모습을 칭찬해 주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나의 꿈이었던 연예인은 인생을 살면서 너무 짧은 시기에 첫 번째 좌절을 당했다.

다섯 살이 되던 무렵이었던 거 같다. 동네 사진관을 지나면서 어린이 모델 지원 공고를 보았다. 아마도 사진관과 연계하여 진행하던 공개오디션이었던 것 같다.


엄마 손을 잡고 가던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엄마 나 저거하고 싶어. 사진 찍어서 어린이 모델 해보고 싶어"


돌아온 대답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안돼. 저런 걸 쓸데없이 왜 하니? 해도 안될 거야"


그 고민 없던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귀여운 외모도 그렇다고 개성 있는 외모도 아니기 때문에 엄마 말대로 지원했어도 어린이 모델이 되지는 못했을 거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의 꿈을 말하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두 번째 좌절을 위한 말을 내뱉었다.

"나 가수가 하고 싶어. 피아노랑 음악 관련된 거 배워서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어."


돌아온 부모님의 대답에는 역시나 다른 기대를 했던 내가 우스워지기만 했다.

"가수? 그럼 최소 Y대 합격하고 나서 하도록 해. 가수 하려고 해도 좋은 대학 나와야 남들한테 무시 안 당해. 그리고 피아노는 어렸을 적에 더 다니라니까 끊기 없이 그만뒀으면서 이제 와서 다시 하고 싶다고?"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나와 언니, 우리 자매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그랬기에 우리가 '공부'로 성공하길 바랐다. 그래야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으니.

우리의 꿈을 지지해 주는 것보다는 부모님의 어렸을 적 가난을 우리에게 대물림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 선택이 지금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는 맞았을 것이다. 우리(적어도 나는 확실하다)는 남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없었을 것이며, 결국 스스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며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의 나의 온 세상이었기에 그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깨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거는 나의 용기 없었음에 대한 후회이다. 그때 용기를 내어 한 번이라도 도전해 보았다면 지금 드는 아쉬움도 덜하며, 도전해 봤음에 나를 칭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 더하면 부모님의 대답에서 조금만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믿어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너는 해도 안돼.', '네가 남들보다 뛰어나?' '좋은 대학 나와야지 남들한테 무시 안 당해' 같은 말들은 어쩌면 알게 모르게 나의 자존감을 갉아왔었던 거 같다.


지금도 무엇인가 작은 일을 시작해보려고 할 때 나는 나의 능력을 의심하고는 한다.

'정말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다른 사람이면 더 좋은 방향을 찾지 않을까?'

'나는 왜 쉽게 포기하지'

'나는 왜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답답하지'


상담을 받으면서 몇 가지 깨달았던 게 있다.

나는 내가 끊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왜냐하면 나는 피아노도 조금 하다 금방 질려했고, 다니는 직장도 몇 년 뒤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그 어린 나이에 5년이나 배웠는데 끊기가 없었다고요? 지금 다니는 직장도 6년을 다녔는 데 끊기가 없다고 하신다고요?"


아니었다. 나는 끊기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힘들어하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든 완수하려고 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잘 살펴보지 못했다.

어릴 적 내가 들은 말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금방 지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에게 '넌 참 책임감이 강한 아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러한 말들이 어느새 자라나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나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를 의심하는 생각들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은 나에 대한 하나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냈다. 바로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책임감에 비해 일을 처리하는 거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하고, 융통성 없게 처리하는 일들도 있으며 좌충우돌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이 일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기를'이라는 자세로 요행을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꽤 괜찮은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가치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적에 너는 심부름을 시키면 온 동네 슈퍼마켓을 다 돌아서라도 꼭 물건을 사 오고 말았어."


아마도 나는 어렸을 적부터 쉽게 포기하는 아이가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던 거 같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너는 참 좋은 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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