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을 깨닫다.
의심이는 자신이 버거킹킹알바를 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의심: 진심아~! 오랜만이야! 여기 공원경치 죽인다..
진심: 그러네 ㅎㅎ 참 고등학생 때 여기 정말 많이 왔었는데,,참 세월이 허허..
의심: ㅋㅋㅋ그치 우리 여기 많이 왔었잖아. 우리 저기 앉아서 대화하자!
(경치 좋은 자리에 호숫가에 앉은 후)
의심: 진심아, 내가 버거킹킹알바를 하잖아.
진심: 그렇지.
의심:그런데, 진짜 별의별 가족을 다본다? 막, 성인이 된 자식한테 먹을 것을 골라주는 부모가 있어. 자식들은 앉아있고 부모가 음식가져오고 치우고 자식이 성인 인데도 엄마가 시켜준 음식을 먹기만해. 참 수동적이더라니깐..
진심: 그러네.. 그런 가정을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긴해.. 분명, 성인정도 됐으면 음식을 치우는 걸 도와주는 건 몰라도,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은 고를 수 있는 나이일텐데,,, 심지어, 그걸 당연히 여기는 부모도 좀 그렇다.
의심: 진심아, 나 궁금한 게 생겼어! 혹시 하나님은 이 상황에 대해 이웃사랑을 어떻게 말씀하셔? 부모님의 희생을 그냥 사랑으로 보시나?
진심: 하하하 의심아, 정말 좋은 질문이야. 이런데서 신앙이 빛을 발하는 법이지 ㅎㅎ. 우리는 가정간의, 이웃간의, 친구간의 사랑을 하며 사회적관계를 이루는 사회적 동물이야. 그렇기에, 우리는 제대로 알고 사랑해야만하지. 그런데, 때로는 그 사랑이 변질될 수가 있어. 방금 의심이 너가 말해준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지.
의심: 오호,, 변질된 사랑, 왜곡된 사랑을 말하는 건가?
진심: 그렇지, 맞아.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혹은 우리 가정안에서 이런 문제를 겪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거야. 가정을 해볼게. 한 귀부인이 있어. 이 귀부인은 남편을 향해, 자식을 향해 자신의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 빨래를 자신이 다 해가면서, 세탁소에 맡기고 싶다는 가족의 만류에도 꿈쩍않고 자신이 다 할려해. 또한 귀부인은 자식에게 늘 최고의 것을 주려 애써. 자식이 필요없다고 해도 늘 자신이 보기에 예쁜 옷들을 주며 입으라고 권해. 이 가족은 아내로 인해서 필요 이상의 사랑을 받아 고통을 겪고 있어. 이 내용을 들어보니 어때?
의심: 으,,, 듣기만해도 부담스러워. 우리엄마가 그랬으면, “엄마 지금 내가 필요없다는데,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해?” 라고 말했을 것 같아.
진심: 그치, 의심이의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이야. 또 한가지 가정을 해볼게. 이번에는 왕모씨라는 사람이 있어. 왕모씨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이야. 그는 늘 이웃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자신의 사비를 털어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살아가. 그런데, 정작 그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사랑의 목마름을 느껴. 한마디로, 사람과 함께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는 거지. 즉 심리학적으로는 ‘홀로서기’가 안되어있는 불안정애착 유형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왕모씨의 사랑은 어떻게 생각해?
의심: 아이고,, 불쌍한 인물이네. 왕모씨가 생각하는 사랑이 난 별로 사랑같지가 않아. 저건 이웃사랑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애착할 사람을 찾는거지..
진심: 의심이가 통찰력이 좋네 ㅎㅎ. 그치, 맞아. 왕모씨가 보기에는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기’때문에 자신의 사비를 털고 있고,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존적으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볼 수 있어.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사람과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의심아, 귀부인과 왕모씨의 사랑이 옳다고 생각해?
의심:(단호히) 아니.
진심: 나도 동의해. 그들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부담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행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어떻게 제대로된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의심: 그야, 상대방을 배려하고 내가 홀로서기가 되어있어야 될 것 같은데?
진심: 빙고! 맞는 말이야. 가정안에서의 사랑, 이웃들간의 사랑 모두가 예의범절이 있어야하고, 인내와 겸손같은 ‘선’이 있어야되고, 무엇보다도 ‘선량한’태도를 지녀야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예를들어서, 어떤 대학교수가 있다고 쳐보자. 그 교수는 제자를 가르칠 때, 훗날 자신과 견주어 지식을 전달하는 경쟁자가 될 것을 목적으로 가르쳐야 돼. 또한 펜싱선수는 그 제자가 훗날 실력이 성장해서 나의 옆구리를 찌를 날을 목적으로 가르쳐야 돼.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자신으로부터 독립해서 내가 필요하지 않을 날을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스승의 사랑이고,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거야.
의심: 아 맞네,, 그런데, 이 사회에는 제자가 스승보다 성장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불편해서 회피하는 스승도 있는 것 같아.. 흔히 청출어람이라고 그러지?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난 상황을 못 견디는 스승들도 있더라고.. 그런데, 그것도 참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 내가 자존심을 많이 내려놔야 하는 부분이니깐..
진심: 좋은 지적이야. 그래서, 인간은 이웃,가족,친구를 향한 사랑 이상의 것이 필요해.
의심: 사랑 이상의 것이 뭔데?
진심: 그건 바로 ‘이성’이야. MBTI로 치면 T같은사고를 말해.
의심: 오호라. 내가 ISTP인데. 잘알겠군.
진심: ㅋㅋㅋ 맞아.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그 이상의 상식, 즉 이성이 개입할 때 우리는 서로 공정하게 주고 받으며 건강한 사랑을 행할 수 있어.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 ‘자기부인’, ‘겸손’과 같은 선의 기준이 있어야 돼. 우리의 사랑이 훨씬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부터 지속적인 간섭을 받아야 우리의 사랑도 건강하게 흘러간다고 볼 수 있어. 안그러면, 우리의 사랑은 고인물처럼 썩어버리고 말거야.
의심: 아까, 건강하지 못한 사랑들처럼?
진심:그치..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해. “사랑안에는 증오의 씨앗이 들어있습니다. 만일 사랑이 삶의 절대 주권자가 되면, 그 씨앗은 발아하기 시작하여 악마가 됩니다.”
의심: 와….나는 진심이 너가 예수님얘기를 할 때, 이웃사랑을 강조했잖아. 그 때, 솔직히,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관계의존적이게 홀로서기를 방해하는 길로 새게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오늘이야기 들어보니까, 내가 생각한 이웃사랑은 건강하지 못한 이웃사랑이었네.
과연 어떻게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옳은 생각일까..모르겠다..어려워.
진심: ㅎㅎㅎ그치? 나도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말해보자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이시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오늘도 봤듯이, 사랑을 제일 우선시하다가는 사랑이 변질됨을 알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부터 ‘인내’와 ‘겸손’같은 선량한 태도를 알아가고 그분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 그걸 바탕으로 홀로서기를 이룬다면 이미 그 사람은 어떤 사람들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멋있는 사랑꾼이 되어있겠지. 아마, 그사람은 누구보다도 이웃을 배려하며 정중한태도로 자신의 행위가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지 세심하게 확인할 아량이 있는 사람일거야. 자식이 있다면, 자신이 다 해주려 하기보다는, 자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자식이 필요한 사랑을 넉넉히 베풀거야. 그럼에도, 필요이상의 과한 사랑은 건강하지 못함을 알기에, 오히려 자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독립적으로 성숙하게 홀로설 수 있는 아이로 키울거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자 원칙이기 때문이지.
의심: 그럼, 아이도 부모님께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능동적으로 살 수 있겠네.. 참 하나님이란 신은 은근 좋으신 분일수도…?
진심:ㅎㅎㅎㅎㅎ뿌듯하군.
(다음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