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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진석 Oct 14. 2024

개미:인간=인간:하나님

작고 약한 내 모습


개미:인간=인간:하나님



 위 식은 비유로 나타내본 식이다. 해석하면, 인간이 개미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잠시 줄지어져 나란히 걸어가는 개미들을 관찰해 보자. 인간에 비해 너무나 작은 체구로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들이 인간에게는 다 똑같이 보인다.



 하지만, 개미의 세계에서 개미들의 관점에서는 나름대로의 서열체계가 있어서, 어떤 개미는 여왕개미를 지키고, 어떤 개미는 짐을 나르는 일을 척척할 것이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라 할 수 있는 개미들의 서열이 우리의 시선에서는 거기서 거기로 똑같이 보인다. 즉,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났든 못났든, 좋은 직장을 가졌든, 가난하게 살든 중요한 사실은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복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내가 알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게 되니 이것 자체가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인셈이다.



 그래서 나는 감사할 것밖에 없다. 나는 보잘것없는 똥강아지인데,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 주시니 감사해서 나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값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믿으면, 악한 내면의 속삭임에 대항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어떻게 사랑을 받아? 넌 한 게 없잖아. 하나님이 정한 율법을 지키지 못했잖아, 그럼 돌에 맞아야 되는 것 아니야? " 등이 있다.



실제로 구약시대에는 간음한 사람을 돌로 치라고 나와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왜곡되어 받아들인 율법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건 사랑이 아니란다 얘들아,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고, 내가 너희를 위해 희생함으로 너희를 영원토록 사랑함을 보였단다.”



이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간음과 같은 악에 ‘타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은 본래 간음과 같은 죄에서 끊을 수 없는 죄인이기에 사람이 진심으로 그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랑은 ‘오냐오냐 사랑’이 아닌 ‘책임을 심어주는 사랑’인 것이다.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진심으로 뉘우치게끔 올바른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사랑.



그런 사랑은 사도바울이 말한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오래 참고, 온유하게 부드럽게 허물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바라는 그런 사랑. 이 시대에서는 그런 사랑이 없어진 지 오래이고, 분노와 시기만 만연해진 것 같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예수님처럼 책임을 심어주기 위한 사랑으로 낳은 용서와 이해로 보듬어준다면 안 바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 이 시대를 주님이 다 아시기에 주님만을 붙들며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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