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말이야.
나는 박미경으로, 당신은 권은호로 살아야 해.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로만 살면… 우린 결국 불행해질 거야.”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이들과 진심으로 웃으며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삶의 궤적은 당연히 달라지고, 나는 그 변화를 수용하고 때로는 즐기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 했다.
나는 나다움을 잊지 말아야 했다.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야 했다.
엄마가 되었으니, 부모가 되었으니
그 전의 삶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애써 적응하고 참고, 나를 지우다 보니
나는 점점 화가 났고, 우울했고, 슬펐다.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은,
아이를 사랑하는데도 자꾸만 비어 있는 삶.
그 모순 속에 오래 머물렀다.
엄마가 되었어도, 나는 나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싫어했는지,
어디까지는 참고, 어디부터는 참기 어려운지.
그런 나의 경계들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다시, 나를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주말 영화관의 느긋한 시간, 식당에서의 여유로운 식사.
가끔은 예쁘기만 한 디저트 하나로 하루를 보상하던 시간도 있었다.
요리 프로그램을 따라 해 보는 것도,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했고,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낯선 곳까지 드라이브하던 날들도 있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상대와 아무 말 없이 책을 읽는 그 조용한 동행도.
이젠 그 시절처럼 똑같이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좋아했던 것을 기억하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이보다 나를 먼저 챙기고 싶다.
아이와 위한 삶 속에서도,
엄마인 나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는 행복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로 살아가는 길,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