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집에 이거 없지?"

by 훈연

나의 친함은 언제나 음식, 먹거리와 함께였다.

전혀 친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내게 마음을 연 것도,

내가 건넨 굴국밥과 딸기 덕분이었다.
새 팀에 늦게 합류했을 때도,

커피를 내려주는 보답이라며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함께 먹었다.
오래 함께한 사람보다 더 빨리 스며든 나의 사회성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당연한 일을 부탁하면서도 왠지 미안해 과자를 쥐여 주고,

든 게 없으면 주머니를 뒤져서라도 무언가를 건넸다.

내가 마음에 둔 누군가를 만날 때면 사탕, 쿠키, 드립백 같은 작은 간식이 손에 들려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내가 따뜻한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해야 관계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본능적으로 믿는 걸까.

먹을 것으로 친해지는 것은 유아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친구를 사귈 때 과자나 사탕을 주며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느 집에 이거 없지?”


점순이도 아니면서 나는 왜 늘 무언가를 들려 보내고 싶어 했을까.
점순이는 먹거리라는 치명적인 수단을 가졌으면서도 자존심을 챙기다 상대의 자존심만 긁어 실패했지만, 나는 웬만한 관계는 물론 어렵다는 관계까지도 제법 잘 풀어냈다.
그렇다면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오가며 만날 사람들에게 줄 게 뭐가 있나 사무실 서랍을 뒤지다가,
‘마땅한 게 없네. 커피맛 사탕이 떨어졌네. 그게 딱인데.’
하고 아쉬워하는 나를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왜 못 줘서 안달일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워낙 소심하고, 아닌 척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민감한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이런 유아적이고도 본능적인 방법을 쓰는 걸까.

나의 단단하지 못한 내면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걸까.
슬며시 부실한 인간관계를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나를 조각내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따뜻한 내가,
왜 유독 나 자신에게만 이렇게 엄격하고 냉정한가.

상처를 보듬는 말 한마디조차 스스로에게 건네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나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맛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이 떠오른다.
괜히 친정집 생각이 나서 밀키트를 주문해 보내고,
새로운 과자를 사면 주저 없이 주변에 나누어 준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그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결의 사촌쯤 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좋은 것을 보면 나누고 싶고,
맛있는 것을 보면 함께 먹고 싶고,
작은 사탕 하나가 주는 달콤함이

오후의 피로를 잠시 씻어 주는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


그건 나의 온전하고 따뜻한 마음이다.


계산 없이 나오는 마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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