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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은 멈췄다.

by 훈연

‘나’의 시간은 멈췄다.

아이의 시간만 또각또각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들은 쑥쑥 자랐는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만 정지된 기분, 나만 사라지는 기분을 누가 알까.
‘엄마’라는 이름만 남고,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이 감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출근이 좋았다.
첫째는 너무 늦게 찾아온 생명이었기에, 더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그때는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도 몰랐다.
복직 후, 회사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생명.
복직한 지 겨우 한 달 반이 지났을 때였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나를 겨우 회복하던 중이었으니까.

출근하면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숨을 쉬었다.
힘없이 낮았던 목소리는 어느새 활기찬 소프라노가 되었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생기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심으로 느꼈다.
‘나’로 존재해야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한 연예인이 말했었다.
“사랑을 줄 때도,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 말이 예전에는 낯설고 어려웠다.
‘나’와 ‘너’를 따로 구분하며 연애를 한다는 것.
그건 이기적인 사랑처럼 느껴졌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야, 상대에게도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
나 자신을 돌보고,

여유를 갖고,

나로서 숨 쉴 수 있어야

누군가에게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여유가 없다.
‘여유’라는 단어는 엄마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친정엄마는 늘 말했다.
“엄마가 돼서는 그래야 해.”
“엄마는 원래 그런 거야.”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다들 당연히 해내는 걸 나는 왜 이렇게 못 견딜까?

그러나 이제는 안다.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 엄마는 없다.
엄마가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던 시대가 있었을 뿐이다.

조리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아빠는 호르몬이 달라서 아이가 울어도 그냥 잘 자요.
엄마는 달라요. 멀리서 울음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죠.
그러니까 집에 가서 남편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엄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아빠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에
눈을 억지로 뜨고, 몸을 이끌어 하루를 버텨야만 했던 것이다.

조리원 원장의 단호한 말.
“포기하고 사세요. 원래 엄마는 그런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왜 포기해야 하나요? 저도 사람이에요.”


남편은 둘째를 반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행복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남편은 좋은 아빠였고, 육아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빠가 되기 전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성취를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육아에도 성실했고, 애썼다.
하지만 그 사랑과 동시에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을
어쩔 수 없이 느껴야만 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어른과의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그저 기다리는 삶.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 하루.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는 ‘아빠’가 되면서도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삶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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