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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사람입니다.

by 훈연

평생 ‘엄마’내가 우리 엄마를 부를 때 쓰는 말인 줄 알았다.
내가 ‘엄마’라고 불릴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첫째가 배 속에 있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내 안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순간.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30분이 넘는 출근길,
이젠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의 길 위였다.
“엄마가 조심히 운전할게. 놀라지 마.”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된 나’를 느꼈다.

하지만 그 후로,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까지
나는 그냥, 나였다.


가끔 친정엄마는
“엄마가 돼서는…” 하고 나를 나무라셨지만
가족 외엔 누구도 나를 엄마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 날,
나는 갑자기 ‘누구의 엄마’가 되었다.
처음 받은 어린이집 전화,
“○○ 어머님 맞으시죠?”
너무 어색해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 어머님 맞으시죠?”
그 말이 내게 엄마라는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누구의 엄마였다.
이름 대신 ‘○○ 엄마’로 소개되고, 불리고, 저장되었다.
내 이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의 어린이집 학부모 소집일.
젊고 단정한 엄마가 다가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 엄마, 박미경이에요.”

그 순간,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엄마면서 이름을 말하다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나는 그냥 엄마였다.
엄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날 이후, 나도 사람들을 만날 때
내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이름도 물었다.
그들은 잠깐 당황하더니
“그냥 ○○ 엄마로 저장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도 끝까지 물었다.
이름을 알려준 분도, 끝내 알려주지 않은 분도 있었지만
그 표정에는 낯설고 이상한 기색이 묻어났다.
“이름을 물은 건 니가 처음이야.”
어느 드라마 속 재수 없는 주인공처럼.


그때 알았다.

내 이름이 소중하다는 걸.
사람은 이름으로 존재하고,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는 걸.

나는 지혜롭고 맑은 의미를 지닌 이름을 가졌다.
한때는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예쁜 이름이라고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이름을 너무 오래 부르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된 이후 내 삶의 모든 것을 놓았다.
모든 것은 변했고,
내 중심은 사라졌다.
내 이름도, 내 시간도, 내 감정도.


좋은 엄마는 그냥 ‘엄마’여야만 하나?
이름을 가진 엄마는 아이를 덜 사랑하는 걸까?

나는 이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한 달에 단 하루라도
그냥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

“엄마니까”가 아니라,
“미경이니까”라는 이유로
존중받고 싶다.
그렇게, 나는
엄마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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