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맞는 말이다.
부모가 되지 않아도 어른다운 사람은 많다.
예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지만, 세상을 바꾼 사랑을 남겼다.
부처는 아내와 아이를 두었으나 결국 출가해 깨달음을 추구했다.
결국 ‘어른다움’은 자녀 유무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야 진짜 어른’이라고 말할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씩 나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방금 한 말이 옳았을까?
이 행동은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다른 선택이 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가 된 뒤,
나는 매 순간 나를 복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심코 던진 말 하나, 아이를 울게 한 어떤 표정 하나,
그날의 감정을 밤마다 되감고 다시 살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시험대에 올려두고
잘게 잘게 다져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아내려 애썼다.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면 정답을 검색하고,
맘카페에 묻고,
받은 조언들을 하나하나 시뮬레이션한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엄마들은 정답 없는 시험에서 그래도 최선의 답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수없이 탈락하고 실패해도
오답 노트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대입도 취업도 이렇게 오래, 자발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반복해서 복기하고, 수정하고, 다시 도전했던 일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답은 없는데 기출문제는 있다는 것.
기출문제를 아무리 풀어도 내 아이에게는, 정답이 아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새로운 문제가 출제된다.
모유 수유를 넘기면 이유식, 이유식을 넘기면 유아식,
같은 이유식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시험은 매일 변형된다.
나는 매일 새로운 문제를 받아 들고,
끝없는 오답을 복기하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탐구해 나간다.
어쩌면 이 길고 지독한 여정—
정답 없는 시험을 매일 치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과정,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시 세우는 그 과정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되어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되고 나서야 어른이 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