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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이유

by 훈연

가끔 아이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말을 듣지 않는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기분 좋게 일어나 내 품에 안기던 둘째를 조용히 안고 형이 깨지 않게 살살 데리고 나왔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웠다.

아이는 혼자 로봇을 갖고 놀았고, 나는 아침을 준비하며 물었다.
“쉬야했어?”
“안 해도 돼.”
요즘 밤기저귀를 막 뗀 시기라 아침엔 꼭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고 알려주는 중이었다.

며칠 전에도 갑자기 바지에 쉬를 한 기억이 떠올라 더 조심스러웠다.

“아니야. 누구나 자고 일어나면 쉬야부터 하는 거야. 고추가 쉬 하고 싶다고 하잖아.”
아이의 주의를 돌리려 애쓰며 차분히 설명했지만, 아이는 로봇만 만질 뿐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남편이 툭 던지듯 말한다.

“안 하고 싶다잖아. 그냥 두지 그래.”

물론 남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모든 아이가 아침마다 꼭 급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이는 갑자기 급해지면 참지 못하고,

혼자 화장실 불도 켤 수 없고,

변기 뚜껑도 들기 힘들며, 디딤대도 필요하다.
그 모든 걸 우왕좌왕하는 동안, 부엌에서 야채를 자르던 나는 급히 칼을 내려놓고 아이를 안고 뛰어야 한다. 그 전쟁을 매번 겪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다녀오면 편하잖아. 어차피 할 거, 지금 가자.”
단호하게 말했지만, 남편은 아이 편을 들었고 나는 화가 났다.
그렇게 아침의 평화는 깨졌다.

나는 화를 꾹 참고 피자를 준비했다. 늘 먹는 밥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빵 피자를 구웠다.
첫째는 신기해했고, 둘째도 냄새만으로 들떴다.

하지만 막상 식탁에 피자가 오르자, 둘째는 방에 들어가 애착 베개를 껴안고 나오지 않았다.
“OO아, 피자 다 됐어. 나와서 먹어.”
"… "

대답이 없다.
“엄마가 너한테 뭘 잘못했어? 밥 차려줬잖아! 먹지 마! 그냥 어린이집 가. 지가 배고프면 음식이 저절로 나오는 줄 알아.”

결국 헐크처럼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이는 달래주는 할머니 옆에 붙어 우유를 마시고, 잼 바른 빵을 몇 입 베어 물고, 조용히 어린이집에 갔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든 생각.
아이도 그냥… 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런 날.

나도 그런 날이 있는데.

이유는 없지만 모든 게 귀찮고, 몸이 무겁고, 누워 있고싶은 날.

아이에게도 그런 ‘너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채
또 소리치고 말았다.

언제쯤 나는 아이의 이유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
언제쯤 더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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