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에게 여행은 선물이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처럼, 평소에는 쓰지 못할 돈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며칠 만에 다 써도 괜찮았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계획하고 상상하고 돈을 쓰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건 규칙으로 가득 찬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의 시간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집순이였던 내게 여행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을 경험하는 그 시간은 인생의 특별한 쉼표였다.
하지만 육아가 시작되자, 여행은 더 이상 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고통을 선물하는 사람은 없다.
여행은 이제 아이를 위한 프로젝트가 되었고,
내 몫의 자유는 사라졌다.
아이가 즐길 수 있을지,
잘 먹을 수 있을지,
덜 힘들어할지.
모든 기준은 아이 중심이 되었고, 그에 따라 짐도, 계획도, 동선도 달라졌다.
외출 하나에도 짐은 한가득.
1박 이상의 여행엔 특대 캐리어가 필요했다.
아이가 둘이 되니 짐은 두 배, 아니 세 배가 됐다.
나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짐을 이삿짐처럼 챙겼다.
실외복, 실내복, 여벌 옷, 겉옷, 물놀이 신발, 기침약, 콧물약, 알레르기약, 해열제, 체온계, 연고, 밴드.
엑셀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도 늘 뭔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짐을 쌀 때부터 이미 스트레스는 시작된다.
아이 물건을 다 챙긴 후에야 내 물건을 챙기지만,
예쁜 옷은 아이 것뿐.
내 것은 최소한만 챙기고, 가져간 옷은 그대로 가방에 들어 있다가 돌아오곤 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처음 떠난 비행기 여행엔 온 가족이 동원됐다.
한때 면세점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예쁜 물건을 고르던 나는 없었다.
“엄마, 다리 아파. 엄마, 물 줘. 엄마, 심심해.”
잠깐 앉아 쉬려 해도
“엄마, 쉬야! 쉬야 마려워!”
항상, 지금 아니면 안 될 타이밍에 들려오는 말.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뛰는 나.
그때부터 이미 헐크는 소환됐다.
나 화났으니까 건들지 마.
눈치 보는 아이, 이미 깨져버린 분위기.
비행기가 연착되면,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왜 돈까지 내고 이 고생을 해야 하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여행인지 알 수 없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정, 무용지물이 된 입장권.
그저 차라리 집이 더 편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행(苦行)
‘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통해 수행을 쌓는 것.’
여행은 고행이 되어 있었다.
정신적 수양이라도 쌓이나? 목적이 뭐였지?
졸린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나가고,
떼쓰는 둘째를 안고 달래다 보면,
멀미가 심한 나는 바로 토할 것 같았다.
예전엔 차에 타면 바로 잠들었고,
속이 울렁거리면 눈을 감고 조용히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이동하는 사이,
내 몸 상태는 뒷전이다.
아이를 안아야 멀미를 가라앉힐 수 있으니,
남편 말대로 울어도 카시트에 앉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내가 안을게.”
나는 아이를 안고, 속을 달래며, 멀미와 감정을 동시에 참는다.
엄마는 아플 시간도, 아프다고 말할 권리도 없다.
여행은 아이만을 위한 여정,
나는 왕자님을 모시는 수행원일 뿐이다.
남편은 운전기사 정도일까.
남편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듯하다.
내가 계획한 여행지에 거리 타령을 하고,
짐을 싸면 캐리어에 넣기만 할 뿐.
뭐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짐 정리도 결국 나의 몫이다.
아이들은 여행 중에도 아빠보다 엄마를 찾는다.
씻기기, 화장실, 재우기, 먹이기,
다 엄마! 엄마! 엄마!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엄마에겐 사치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혼자 조용히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유일한 여행의 ‘쉼’이었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잠도 아깝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가방을 풀고, 옷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도 결국 엄마다.
남편은 묻는다.
“이건 입은 거야? 안 입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