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게 자란 영민한 아가씨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녀의 어머니의 첫인상은 키가 크고 세련된 아가씨로 기억된다. 긴 생머리가 휘날렸고 나팔바지에 굽높은 구두를 신었으며 테가 큰 안경을 쓴 모습은 지적이고 도도해보였다. 말수는 적지만 어딘가 모르게 고상하고 기품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는 넋 놓고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지적인 여성이 이상형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이 여자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할 당시 꽤 큰 회사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고 단정했으며 영민하여 생산직으로 취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사무직으로 발령을 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 그녀는 승진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녀가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후에 더 큰 기업이 되는 그 회사에 더 오래 중요한 역할로 다닐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는 시골 유지의 손녀딸로 부유하게 자랐다. 어머니의 할아버지께서 장사수완이 비상하셔서 중국에서 큰 무역을 통해 부를 이루어 시골 마을의 땅을 많이 사들였다고 한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으리으리한 대갓집에서 어머니는 흰 쌀밥이 귀하던 시절 각종 귀한 음식들과 흰밥을 먹고 자랐다.
그 무렵 어머니의 코흘리개 동무들이 낡은 옷에 고무신을 신을 때 어머니는 고운 원피스에 예쁜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동네 최고 부자이면서 또한 어려운 동네사람들을 앞장서서 돕는 마음의 그릇이 큰 분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가끔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려운 집에 쌀이며 식재료를 나눠주러 가곤 했는데, 그때 찾아간 동네 친구들의 집의 누추한 살림살이에 깜짝 놀라곤 하였다. 마을 사람들 중에 배굶는 사람이 없도록 살피고 보살피던 인심좋은 할아버지 덕분에 어린 손녀인 어머니도 어딜가나 환영을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는 하얀 얼굴에 깔끔하고 도도한 새초롬한 학생이었다. 교과서를 받자마자 한권을 통째로 다 외워버릴 정도로 영민했고, 그림실력도 남달랐다. 학교 선생님은 그런 어머니에게 반에서 뒤처지는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셨고, 학교 벽에는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 크게 걸려있었다.
그렇게 영원히 공주같이 살 것 같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은 안타깝게도 어느새 지나가고 어머니의 친정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가족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 가족은 그 많은 땅을 다 팔아 빚을 갚고 빈털털이로 쫓기듯이 서울로 이주하였다. 어머니의 친정아버지는 수차례 사업실패에 사기까지 당해 화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혼자가 되신 친정어머니와 줄줄이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그녀의 아버지처럼 어린 나이에 회사에 생산직으로 취직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려서 시골에서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건강하게 자란 덕에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잘 어울리며 밝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의 친정어머니에게 중매쟁이가 찾아왔고, 놓치기 아까운 좋은 사람이라며 아버지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렇게 소개로 만난 그는 안정된 회사원에 키도 큰편이었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해서 미남에 가까웠다. 첫만남부터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녀를 존중해주는 태도에 그녀도 마음이 움직였다. 가족들을 돌보다 이미 그 당시 결혼적령기인 20대 초중반을 훌쩍 넘긴 그녀에게 친정식구들은 이만한 사람이면 더 고를 것 없이 속히 결혼할 것을 권했고 그녀도 가족들의 뜻을 따라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그녀의 인생을 참 고단하게 할 줄 그 때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