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Jung Sep 08. 2024

내 교실 꾸미기

나만의 공간 만들기


실습했던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방학 동안 내 교실을 꾸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열쇠(fob)를 가지고 있었기에 거의 매일 학교에 가서 내 교실을 정돈하고 꾸미는 일에 열중했다. 이 교실은 집이 멀어 근무지를 옮기는 선생님이 쓰던 곳이었는데, 마지막 날 교실을 완전히 비우고 갔기에 그다음 날부터 교실을 정리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 교실을 꾸미는 과정은 마치 나만의 방을 갖게 된 기분이었고,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듯한 설렘을 안겨준다.


내 교실, 나의 공간


교실에 비치된 수납공간이 부족해 교장에게 수납장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학교에 예산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집에 뭐 있으면 가져와도 된다고 했지만,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아마존에서 내 돈으로 수납장을 구입했다. 남편은 왜 교사가 자기 돈을 들여야 하냐며 불만을 표했지만, 앞으로 내가 사용할 교실이니 내 마음에 들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학교는 교실이 작고 테이블도 협소해서 아이들 물건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의자 뒤에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베갯잇을 사서 Pillowcase Pouch를 만들었다. 이 방법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기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딸과 함께한 방학의 추억


우리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크롬북을 매해 새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사용하던 것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방학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자신의 계정을 지우게 하고, 방학 동안 나는 딸과 함께 학교에 가서 크롬북을 소독하고 청소했다. 딸은 방학마다 학교에 와서 많은 일을 도와줬는데, 이 점이 매우 고맙게 느껴진다. 방학 중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자기 자녀들을 자주 데려오곤 했는데 그래서 서로의 아이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 딸은 방학 중에 자주 왔는데 옆 반 피비는 자기 엄마도 교사여서 자기 어렸을 때 엄마 학교에 가서 많이 도와줬다고 자기가 그래서 교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딸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교사는 별로라고 해서 너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면 뭘 하든 괜찮다고 말해줬다.


아이들이 책 읽을 때 앉아서 보도록 벤치도 샀고 아이들 행동 챠트도 만들고 이것 저것 많이 사서 만들었다.
필통도 사고 화이트보드 지우개도 사고 아이들이 각자 자기 학용품을 갖고 공부하게 하고 싶었다. 수납장도 사서 만들어 놨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앉아 쉴 수 있도록 벤치를 구입했고, 아이들 행동 차트를 만들어 걸어 두었다. 필통, 화이트보드 지우개, 학용품 수납장도 마련하여 아이들이 각자 자기 물건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기본 학용품을 제공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질이 좋지는 않다. 나는 화이트보드 지우개와 일반 지우개를 사비로 구입해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이런 노력을 하는 동안,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는 드물었지만, 시대의 변화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체로 저가의 학용품들은 temu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돌아보니 한 달 평균 30파운드 정도의 학용품도 사고 아이들에게 줄 물건들도 산 것 같다.


내 교실을 갖게 되니, 내가 원하는 대로 교실을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디스플레이 보드를 꾸밀 때도, 필요한 교구들을 배치할 때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학교마다 어떻게 하라는 틀이 있지만 틀 안에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매일 아이들 책상을 항균 스프레이로 깨끗이 닦아주는 일도 하는데 덕분에 우리 반은 학교에서 가장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낡고 좁은 교실들이라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도 내 공간이 있어 좋다.



열악한 교실 환경


지금 내가 있는 학교는 1906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 TA 중 하나인 다이안이 자기 할머니가 여기 학교 다녔다고 해서 역사가 오래됐다는 걸 알았다. 원래는 교실들이 컸는데 반을 늘리면서 교실들을 나눠서 지금의 아주 작고 낡은 교실이 됐다고 한다. 우리 교실은 히터가 고장 나서 겨울에는 추워서 덜덜 떨며 수업을 했다. 코비드 때, 우리 교실이 아이들이 와서 수업 듣는 교실로 썼는데 너무 추워서 히터가 꺼지지 않도록 뭘 조작했다고 하는데 그게 잘못돼서 보일러가 돌아도 우리 반은 춥기만 했다. 10월부터 교실 춥다고 학교 관리하는 분에게 고쳐달라고 말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트러스트에서 다른 팀을 보내야 한다고 해서 결국 겨울이 다 지날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추우면 옷을 껴입고 있으면 되는데 더위는 답이 없다. 영국 초등학교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고 작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보낸다. 선풍기가 너무 작아서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선풍기 없이 수업을 했는데 수업하다 보면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서 매일 집에 가서 샤워를 해야 한다. 요즘 영국도 지구 온난화로 여름에 갑자기 더운 heat wave (폭염)가 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도 지치고 나도 지치고 서로 기운이 빠져서 공부할 환경이 되질 않는다.



내향인 교사의 소소한 사회생활


보통은 점심을 스태프룸에서 먹지만, 나는 내 교실에 앉아 혼자 먹으면서 오후 수업을 준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 시간은 나에게 하루 중 유일하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으면, 나는 오전 수업 때 다 하지 못한 아이들의 글을 보며 마킹을 하기도 하고 오후 수업 자료들을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른 직원들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해져서, 학교의 소식이나 동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10~15분 전에는 스태프룸에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적인 대화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어느 날 동료가 들려준 유쾌한 이야기에 다 함께 웃으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작은 대화 속에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거나 사소한 잡담에 시간을 쓰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런 노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이런 대화 속에서 내가 놓쳤던 학교의 중요한 정보나, 동료들의 고민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EastEnders보다 더 막장인 현실?


처음 영국에 왔던 1997년,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뉴스와 함께 드라마도 자주 보곤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EastEnders였다. 복잡한 인간관계, 갈등, 배신, 불륜, 심지어 범죄까지 아무렇지 않게 공영방송인 BBC에서 방영할 수 있을까 싶어 놀라기도 했다. 한국에서조차 이런 드라마는 보지 않던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잠깐 보다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드라마를 끊고 뉴스만 보게 되었지만, EastEnders의 강렬한 장면들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이제는 불륜이 일상처럼 보였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 바로 함께 살고, 헤어지면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결혼하고 이혼한 뒤 동성 연인과 아이들을 데리러 오기도 한다. 교사로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내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판단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스태프룸에 있으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이야기들—누군가는 바람피우다 들켜 남편에게 맞고 이혼했다거나, 누군가는 크리스마스날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거나—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잡한 삶을 살아내며 매일 교실에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료들을 보면, 오히려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나는 한국인이라 결혼하면서 남편 성으로 바꾸지 않아 Mrs Jung 대신에 Ms Jung을 쓴다. 영국에서는 결혼 상태를 밝히고 싶지 않을 때 Ms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싱글인데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직원도 많고, 이혼 후 다른 사람과 동거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 내가 Ms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혼녀로 오해한 직원 하나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도 모르게 내가 학교에서 이혼녀로 알려져 있구나 싶어 멍해졌다. 누가 내게 물어봤다면 왜 Ms를 사용하는지 설명해 줬을 텐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물론 영국이 한국보다 더 개방적이라 내가 듣는 이야기들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무조건 믿고 소문을 퍼뜨리면 학교가 막장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학교 웹사이트에 교사 소개하는 곳에 Ms Jung이 아닌 Mrs Jung으로 올라온 걸 보고 아무래도 내가 이혼녀라는 소문이 퍼져서 학교에서는 이혼녀가 아니라는 걸 밝히고자 나와 상의 없이 작년에 쓰던 Ms Jung 대신 Mrs Jung으로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혼녀라고 오해해도 상관없으니  Ms Jung으로 바꿔달라고 할까 하는 반항심이 들기도 하지만, 작은 일에 목숨 걸지 않는 파리 같은 인생이라 그냥 속상하고 어이없는 마음을 이렇게 끄적여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