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수업 계획 및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교사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시간 중 하나가 PPA(Planning, Preparation, and Assessment)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수업은 다른 커버 TA들이 하고, 교사들은 따로 나와서 다음 주 수업 계획을 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교사들은 수업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주중에 주어지는 이 두세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이론상으로는 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수업 준비와 논의를 하는 시간이지만, 다들 할 일이 많아서 20-30분 정도 회의만 하고 각자 일을 하기에 바쁘다.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같은 시간에 PPA를 가지며, 2학년의 경우 수요일 오후, 점심시간부터 하교 전인 3시까지 약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수업 계획은 가능한 방학에 미리 해 놓기 때문에, PPA 시간에는 주중에 밀린 일들을 따라잡고 기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이 된다. 매일 아이들이 책 읽는 것도 듣고 코멘트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들 읽는 것을 들을 시간이 없어 내 PPA 시간에 따로 아이들을 불러 책 읽는 것을 듣곤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몰래 하게 되었다. 학교의 장점은 체계적이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잘 잡혀있다는 점이지만, 이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르게 하면 하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방학 전에 아이들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동네 교회에서 했는데, 부모님들이 몇 분 와서 도와주셨다. 내 생각에는 고마우니 카드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2학년 선생님들이 자신들은 시간이 없으니 나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알겠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우리 반 아이들끼리 카드를 만들어 부모님들께 드렸다.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2학년 선생님들은 바빠서 나만 아이들 책을 읽는 것을 들으니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몰래 다른 곳에서 읽게 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 혼자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불편하지만, 초임 교사로서 해야 하는 것들을 다 하고 싶은 욕심에 자주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말하지 않고 나 혼자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영국 아이들은 Key Stage 2의 마지막인 6학년 5월에 SATs(Standard Assessment Tests)라는 학력 평가 시험을 본다. 반면, Key Stage 1의 마지막인 2학년 아이들은 SATs가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었다. 우리 학교는 시험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5월에 아이들 리딩, 문법과 철자, 수학 시험을 보았고, 이 시험들 성적을 매기고 성적을 전산화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따라서 5월과 6월의 PPA 시간과 나머지 모든 자투리 시간들을 다 이 채점과 평가로 쏟아부어야 했다.
또한, PPA 시간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다면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잘 다루지 못할 것 같은 문제들은 2학년 리드 선생님인 로라에게 부탁해 함께 처리하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 반 여자아이의 부모님이 딸이 다른 여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이메일을 보내와 이를 다뤄야 했다. 아이들끼리 싸울 때는 내가 중재하지만, bully (왕따, 괴롭힘)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두 아이를 따로 불러 상황을 파악한 후, 두 아이를 함께 불러 서로의 이야기를 맞춰봐야 한다. 이후 부모님께도 다시 이야기하고, 학교 시스템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로라는 26년의 교직 생활을 한 베테랑이라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초보라 이런 일이 있을 때 왜 이런 일이 우리 반에 생겼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자책하기 바빴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상황을 차분히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라의 방식에서 배운 것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공감을 제공하는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가끔 수업을 커버해 줄 TA가 없거나 외부 단체에서 수업 참관을 오는 경우에는 PPA가 취소되거나 요일이 변경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자신이 원래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하거나 일정을 급하게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갑자기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훈련이 되었다.
SATs가 뭐지?
나는 2학년 교사이기 때문에 6학년이 아닌 2학년 때 보는 SATs 시험에 대해 설명하겠다.
읽기 시험
페이퍼 1 - 비교적 짧은 지문에 페이지별로 있는 지문을 읽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시험
페이퍼 2 - 좀 더 긴 지문이 있고 좀 더 세부적인 질문에 답해야 해서 페이퍼 1보다 조금 더 어렵다
철자와 문법 (SPaG, Spelling, Punctuation, and Grammar) 시험
철자 - 교사가 읽어주면 학생들이 철자를 적어야 함
문법 - 문장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는지 보는 시험으로 마침표, 쉼표, 물음표 등을 제대로 쓰는지, 어떠한 문장인지를 구별해야 하고 한 문장에서 동사, 명사, 형용사 등을 찾아내야 한다
수학 시험
페이퍼 1 - 기본 연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 기본 산수 시험
페이퍼 2 - 문제 해결 (어떻게 문제를 접근해서 푸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시험)
SATs는 영국 전체 학교에서 시행되는 시험인데 아이들이 그 나잇대에 알아야 하는 교육 커리큘럼에 맞춰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표준화해서 성적을 내고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시험을 보고 나면 곧 교육부에서 채점지를 배부하는데 교사는 이 채점지에 맞춰 성적을 낸다. 6학년이 보는 SATs는 필수 시험이기 때문에 채점 센터로 보내져서 검토되지만 2학년이 보는 SATs는 선택 사항이라 센터로 보내지지 않고 각자 학교에서 채점한다.
성적은 원점수 (raw score, 예를 들어 총 30문제 중 맞춘 문제 수)를 스케일 점수(scaled score)로 변환하여 표준화하는데 스케일 점수는 시험의 난이도와 일관성을 고려하여 변환된다고 한다.
스케일 점수에 따라 학생의 성취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80-100점 미만: 커리큘럼의 내용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며, 배우는 중(working toward)으로 분류
100점 - 109점: 커리큘럼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기대 수준(expected)으로 평가.
110점 -120점: 커리큘럼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더 높은 수준(greater depth)으로 평가된다.
학교는 아이들이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미리 모의고사 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는 SATs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학교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이는 부모들이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성적이 우수한 학교는 자원 확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님들 중에는 SATs 시험이 학교에만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나 역시 많은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시험 준비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는 게 좋은지 조금씩 감을 잡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성적인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업 중에는 말이 많고 발표를 잘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지만, SATs 시험을 통해 내성적인 아이들 중에서도 잘하는 학생들이 드러난다. 이런 경우, 교사는 아이의 실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며, 발표를 잘하지 않거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학업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6, 7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 아프고, 가끔 시험 보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딸에게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시험이 단순한 퀴즈일 뿐이고 자신이 어느 정도 아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아이의 전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것 뿐이어서 답답했다.
시험이 끝난 후, 내가 좀 더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지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시험을 즐거운 학습 경험의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편안할 때 시험도 잘 볼 수 있을 테니, 내년에는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