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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Jung Sep 22. 2024

학년 말, 떠나보내기  

울어도 괜찮아


7월, 나의 첫 초임교사로서의 1년이 끝났다. 크리스마스 방학 때는 마지막 날 차 안에서 많이 울었다.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많은 일들이 겹쳐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탔을 때 무사히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일 년이 끝날 때 얼마나 울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반년 만에 이렇게 강해졌나 싶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초등학교는 Infants와 Juniors가 분리되어 있어, 2학년이 가장 고학년이다. 그래서 7월 초에는 3학년 반 배정을 2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함께 했고, 우리 학교와 붙어 있는 Junior school의 내년 3학년 선생님들에게 각자 맡게 될 아이들에 대한 성향, 주의할 점, 장점 등을 알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그 외에도 한 달 동안 Leavers Assembly(졸업 행사) 연습을 했다. 리셉션, 1학년, 2학년 동안 배운 노래들을 하나씩 골라 연습했고, 각 반마다 class song도 골라서 연습했다. 마지막 주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보여주는 행사를 가졌다. 우리 반은 샤키라의 "Try Everything"을 수화로 연습해 발표했다. 일 년 사이에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여전히 어린아이들이지만 더 의젓하고 성숙해진 것 같아 너무 자랑스러웠다.



마지막 주에는 부모님이 수업 후 학교에 와서 졸업 파티 겸 피크닉도 했는데, 매우 어색했다. 부모님들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고 피자도 먹으면서 좋았겠지만, 교사로서는 가족끼리의 피크닉에서 어디에 껴야 할지 몰라 둥둥 떠다니며 인사만 했다. 부모님들 중에 일 년간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해준 분들도 있어서 더 쑥스러웠다. 그래도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 다행이었지만, 행사가 5시쯤 끝나서 너무 피곤했다. 원래 학교는 3시 10분에 끝나고, 파티는 4시 15분에 끝나며 4시 30분까지 모두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계속 늦어져서 끝나고 나니 너무 지쳐 쓰러지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3학년에 가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자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울 것 같아서 차갑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좀 더 사랑으로 받아주고 품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도 했다.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더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이 고맙다고, 방학 잘 보내라고 얘기해 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너무 민망했다.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내년에는 후회 없을 만큼 더 사랑하고 아끼지 말고 품어줄 수 있는 교사가 되면 좋겠다 (개학하고 작년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담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 주는데 너무 울컥했다. 아이들은 교사를 정말 이유 없이 좋아하고 끝없는 사랑을 준다. 우리 애들이 방학 동안 훌쩍 큰 걸보고 예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했다).



7월은 아이들이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많이 떠나는 시기이다. 이사를 가서 멀어서 학교를 바꾸는 경우도 있고,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원해 다른 학교로 가는 경우도 있다. 올해는 보조 교사들도 많이 그만두었고, 교사도 3명 그만두었다. 덕분에 새로운 교사들이 왔는데, 2학년에도 소피라는 새 선생님이 한 명 와서 짧게 인사했다. 21살로, 대학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갓 졸업한 어린 선생님이다. 우리 교실 바로 옆에 있어서 나와 많이 얘기할 것 같은데, 요즘 20대는 성숙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교장인 레이첼이 같은 트러스트 내 다른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이동했고, 교감인 쌤이 교장으로 승진했다. 승진은 축하할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는 교감이 없어서 옆 Junior 학교의 교감들 세 명이 함께 업무를 분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학교는 시스템이 있으니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레이첼은 내가 실습을 시작했을 때부터 보이지 않게 나를 지지해 주고 도와줬는데 떠난다고 하니 너무 아쉬웠다.



결국, 이렇게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이 다 집에 간 후 직원들끼리 스태프룸에서 작은 송별회를 가졌다. 한 달 동안 모은 돈으로 떠나는 직원들에게 선물을 줬는데,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출혈이 심했는지 원래 학년 말에는 서로 선물도 주고받았지만, 올해는 다들 선물 없이 여름 방학 잘 보내라는 말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나는 파티 후, 다시 교실에 와서 교실 정리하고 의자에 씌어놓은 파우치들 다 빼서 빨래하고 퇴근했다.



방학하고 이틀 후에 한국에 가는 일정이어서, 이틀 내내 학교에 가서 교실 정리도 했다. 내년에는 2학년 리드였던 로라가 자녀 건강 문제로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면서 트러스트 내 다른 학교로 이동하고, 우리 학교 리셉션 리드인 리지가 2학년 부장교사로 온다. 리지는 계속 리셉션만 맡아서 해서 2학년 수업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지만, 방학 동안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했다. 나도 4주간 한국 방문을 마친 후 영국에 돌아가 학교에서 다음 학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피비가 2학년 교사로 있어서 든든하고, 새로 시작하는 소피도 성실한 것 같아 내년 한 해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내 ECT 첫 해는 이렇게 끝이 났다. 9월부터 시작되는 내 ECT 시간도 더 많이 배우고 좀 더 성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처음에는 아이들이 내 말 안 들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선생님을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따른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 자리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고 더 사랑하고,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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