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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Jung Aug 10. 2024

들어가기에 앞서


어렸을 때는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고, 오십이 되면 할머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년이면 나도 오십이 된다. 그 나이가 되면 지혜롭고 세상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린아이처럼 실수도 하고, 젊은 친구들처럼 화를 내기도 하며 욕심도 낸다. 가끔 나이를 헛먹었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현재 영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여름 방학을 맞아 목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따로 살아서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은 별로 없다. 내 기억 속 부모님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분들이지만, 아빠는 심장 수술과 허리 수술을 두어 번 받았고, 파킨슨병으로 몸이 떨린다. 아빠는 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엄마는 무릎이 좋지 않았지만, 작년에 고관절 골절 이후로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신다. 2주 후에 무릎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매일 열 개가 넘는 약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 된다. 여든이 넘은 아빠와 여든에 가까워지는 엄마를 보며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사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요즘은 부모님을 향한 깊은 경외감도 든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



2020년 7월 말, 언니에게 카톡으로 동생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다. 부모님은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 표 구하기 힘들다는 것과 내가 와도 자가격리 때문에 장례에 참석할 수 없기에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던 이성적인 판단을 하셨지만, 서운한 마음이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아빠는 동생의 사진을 보고 매일 말을 걸며 애도하셨고, 부모님은 그들 나름대로 애도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언니와 통화할 때마다 갑자가 떠난 동생의 죽음에 황망해서 서로 왜? 어떻게 이래?라고 하며 울기만 했던 것 같다. 



동생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올케와 어린아이들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부모님은 어린 손주들 때문에라도 본인들이 잘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안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또 다른 아픔이 왔다. 2022년 12월 언니가 크리스마스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뇌종양으로 뇌압이 높아져 뇌수종으로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에 있으면서 한국에 갈 수도 없고, 언니의 상태가 걱정되어 기도와 염려만 하게 되었다.



언니도 동생이 죽고 부모님 옆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했던 것 같다.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그냥 두통이라고 생각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크리스마스에 너무 심각해 부모님이 억지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검사받으면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뇌종양인 것도 알게 됐는데 뇌압이 너무 높아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영국에서 교사 과정을 하던 중이었는데 한국에 나가고 싶었지만 언제 수술받을지도 모르고 당시 한국은 코로나로 여전히 병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내가 가더라도 언니를 볼 수 없다고 부모님이 나중에 언니가 괜찮아지면 나오라고 하셔서 영국에서 그냥 마음만 졸였던 것 같다. 



현재 언니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요양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술 전에 의사들은 수술을 해도 지능이 3살 정도일 거고 오래 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형부는 직장을 그만두고 언니를 돌보고 있으며, 언니는 현재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다. 부모님은 경제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언니를 돕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요양 병원 비용이 일주일에 210만 원이 된다고 해서 나는 깜짝 놀랐지만, 부모님은 힘들어도 자식을 위해 지금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하고 계신다. 이런 상황을 보며 부모님은 나를 무정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때로는 죽음이 삶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고통을 계속 겪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빠는 종종 이제 너 하나 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이 말이 참 마음이 아프다. 아빠가 끔찍이 아끼고 기대했던 언니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그저 살아만 있는 어른 아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국에 있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당장 부모님 곁에 올 수 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이 힘든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하시던 아빠가 하나님을 믿었고 세례도 받으셨다. 부모님은 매일 하루 세 번 가정 예배를 드리시고, 그들의 잘못으로 자식들이 힘들어졌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신다. 부모님을 보며 나는 깊은 경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라는 사실에 참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아침에 부모님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매일 성경을 여러 장 읽고 자녀와 손주들을 위한 기도를 하신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편 127:3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시고, 맹목적으로 최선을 다하셨다. 이 시편 구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이 말씀은 저주 같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 부모님의 평생이 실패였다고 말하는 듯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이 행복하고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그들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 오셨다. 자식들의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신 부모님은 결국 우리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셨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저주받은 집, 큰 잘못을 해서 망한 집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내 삶을 사랑하며 살 때, 나와 부모님은 비록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부모님께 내가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힘을 내어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내가 자라온 이야기를 주관적인 경험으로 적으려 한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실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헌신과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긴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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