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를 만나다

7장: 더치커피는 웰빙 음료, 2001

by 허류

내 피 속에도 막연히 예술 창작에 대한 그리움이 흐르고 있었나 보다. 무언가 나만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내가 상상하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랄까. 덜컥 거금을 주고 SLR 카메라를 장만했다. 이 무렵에는 프로 사진작가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이미 디카로 작업 방향을 선회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DSLR이 아닌, SLR을 장만한 것이다. 직접 사진을 인화하고 싶어서다. 수소문한 끝에 찾아간 스튜디오. 지금은 디카시대지만, 암실에서 서서히 인화지 위에 드러나는 이미지는 신비,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한 친구를 만났다.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의외로 대화가 통했다.

“직장인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사진을 배우려고 해요?”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사진을 배워서 신기하다는 뜻인지 내게 물었다. 주저주저하다가 불쑥 말했다.


“로버트 카파의 ‘순간 포착’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고 난 뒤, 막연히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넓은 세상을 작은 프레임에 담고, 혹은 마이크로 한 세상을 더없이 넓고 크게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이 어쩌면 새로운 시각을 지니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더군요.”


조금 거창한 입문 사유를 둘러댔다.


“새로운 시각.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사실, 지금 소설을 구상하고 있는데, 저도 그 방법론을 찾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긴 해요.


불현듯 문창과 출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처 물었다.


“아, 그러시구나.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볼 참이에요? 궁금하네요. 참, 저도 글을 쓰고 싶은데, 공돌이 출신이라서…... 학교 다닐 때 국문과 수업을 몇 과목 듣긴 했지만 다시 정식으로 배우는 건 어떨까요? 회사를 관두고 말이에요.”


그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다. 거창하게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쓰세요."


뒤이어 다시 대학교에 편입하는 건 결코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때는 정녕 몰랐다. 그 튀지도 않았던, 민숭민숭한 아메리카노 같았던 친구가 그로부터 몇 해 후 삼미 슈퍼스타즈와 파반느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쓴 유명 작가가 될 줄이야.


사진과 인화작업까지 배운 후에 명동에서 어렵사리 확대기까지 사 와서 집에 암실까지 꾸미기에 이른다. 제대로 빠져보자며. 지금 사는 타운하우스의 앞집 남자가 사진작가이다. 장인 되시는 분은 저명한 작가 겸 사진학과 교수이시다. 덕분에 내 이름을 써서 서명까지 해주신 사진집이 두 권씩이나 생겼다. 주말에 파티를 하면 사진작가 후배들이 대거 몰려와 사진작가들의 모임같이 판이 커지곤 했다. 사진과의 인연이 참 오래 이어진다.


늘 카메라를 메고 다녔지만, 또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퇴근 후에는 화실에 다녔다. 풍경사진을 찍은 후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내가 찍은 사진을 유화로 그려보고도 싶어서다. 여전히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다.


'모든 일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리스인 조르바. 그처럼, 세상을 낯설게 보려고 했다.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려고 했다. 마음에서 번져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생각으로만 그득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온갖 악다구니가 설쳐대고 있었다.


만약에 카페를 차린다면, 가게 이름을 ‘제11 계명 eleven commandments’으로 지으려고 했다. 모세의 10 계명이 모두 ‘하지 말라’ 투성이어서 새로운 생활 규범을 부르대고 싶었다.


‘제11 계명: 네 인생을 즐겨라 Enjoy your life’라는 부제를 달아 놓고 말이다. 크리스천은 그 카페에는 결코 오지 않을 성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모토는 점점 확실해져 가고 있었다.


화실에 다니면서 선생과 같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하는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는 여자, 아는 동생으로만 생각했다. 어느 휴일에 그의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석조작업을 하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누구든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는 순간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 작품세계가 이를테면, 삶이 필연적으로 내재한 고통의 외연이든, 혼돈스러운 세상에 대한 독설의 표현이든, 미추에 대한 직관이요 재현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심상을 표현하는 사실이 중요하다. 결국 그 아는 여자와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에 조각하는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독신으로 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결혼할까요?”


거창한 이벤트로 청혼을 할 만큼 로맨틱하지 않은 나를 잘 아니까, 너무도 단순하게, 아무런 미사여구도 없이, 그냥 툭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독신으로 살까도 생각했죠.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처럼, 고흐나 에곤 쉴레처럼, 이상이나 기형도처럼. 짧지만 예술혼을 발휘하는 천재를 꿈꾸며 말이죠. 가당치 않게도.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도 전 천재가 아니더군요. 그러니 길게 오래 살아야죠. 결혼도 하고 애들도 낳고요.”


아, 네, 하며 유심히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해요. 대신, 한결같이 서로의 삶을 배려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하며 살 자신은 있습니다.”


나는 노력에 방점을 찍듯 톤을 높였다. 사실이었다. 서로의 삶을 배려한다는 말에 끌렸을까?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어차피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방점을 찍었던 노력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을까? 순순히 알았다고 하며 다음에 답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결혼에 골인하고야 말았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아내는 각자의 삶을 배려한다는 약속을 시험이라도 하듯, 결혼 초에 지방에 있는 선배의 작업실에 가서 작품을 준비한다며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다. 그 선배는 결혼하기 전에 깊이 사귄 적이 있었다는데, 함께 밤새며 작업을 한다? 머릿속은 엉뚱한 상상으로 혼란스러웠다. 마음은 너끈히 이해하는데 머리는 영 아닌 듯했다. 내려간 지 며칠이 지나도 전화 한 통이 없다. 결혼한 사실을 잊은 걸까? 설마?


아마도 작업만 했을 것이다. 예술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니까, 속세의 인연조차 멀리해야 하는 절대 경지의 세상과 어울리니까.


핸드드립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숱한 시행착오를 통한 숙련도와 나름대로의 데이터를 축적만 한다면 충분히 자기만의 고유한 맛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업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굳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심지어 커피 1세대라는 보헤미안의 박이추 선생이나 전광수, 박종만 등이 얼마나 특별할까도 싶었다. 웬 근거 없는 자신감?


그러다가 후배가 하는 가게에서 드립포트에 온도계까지 꽂아서 정성스레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핸디 로스팅을 배우면서 한 순간의 차이로 균일한 로스팅이 안 되는 결과를 놓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미묘하지만 그 맛의 차이는 확연하다. 고정관념을 수없이 깨뜨려야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도달할 수도 있을 테지만, 경험치에 의한 주요 데이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길은 훨씬 빠르다.


예컨대, 케냐 더블 A를 1차 파핑 popping에서 로스팅을 끝내고 추출을 하니, 과연 제 맛이 나지 않았다. 이가체프를 성기게 분쇄하면 특유의 신맛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맛이 나왔다. 물이 끓기도 전에 드립 포트에 담거나, 하리오나 코노 같은 드리퍼에 급하게 물을 부으면 충분히 우려내지 못한 채 밍밍한 맛이 나왔다.


그럼에도 수업을 듣게 된 이유는 간명하다. 응용력을 키울 수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에서다. 이왕 커피를 마실 바에야 제대로 배워서 즐기는 것도 좋을 테고, 그래야 더 자주, 더 오래 커피를 가까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긴 했다. 기본을 익히는 건, 무엇보다 삶의 기본(?)이니까.


그 덕분일까? 멜리타, 칼리타, 코노, 하리오의 미세한 차이뿐만 아니라, 융 드리퍼로 추출하는 맛의 깊이까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융 드리퍼로 추출한 깊은 맛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다만 융 드리퍼는 프렌치프레스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마신 후 남겨진 커피 찌꺼기의 처리가 성가시다는 것과 기구를 세척하고 보관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는 점도 그렇다.


수업을 들으면서 더치커피를 알게 돼서 너무 좋았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커피를 운반하던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고안된 커피라서, 그 이름을 따 ‘더치’란 말을 덧대었다는 게 정설이라고 한다. '차가운 물에 우려낸다'는 뜻으로 콜드 브류 cold brew라고도 불린다. 점적식點滴式 추출방식이 일반적인데, 글자 그대로 한 방울씩 물을 떨어지게 고안한 장치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더치커피를 '커피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눈물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려야 하니까.


더치커피는 카페인 함량은 낮고,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들어 있다. 그 폴리페놀은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제거해서 세포의 노화를 막고 심혈관계 질환, 암, 골다공증 심지어 당뇨병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니 커피 추출방식 중에서 가장 건강한 녀석이라 불릴 만하다.


또한 뜨거운 물로 짧은 시간에 추출한 일반 커피에 비하여 쓴맛이 덜하며 순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추출된 커피 원액은 밀봉해서 냉장 보관한 후 하루 이틀 정도 저온에서 숙성하면 풍미가 더 살아난다. 소위 숙성의 시간까지 필요하니, 한 잔의 더치커피를 마시려면 꼬박 이틀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잠들기 전에 커피를 마셔도 곧바로 잘 수 있을 만큼, 카페인과 수면의 상관관계가 무색한 커피와의 친화력 아니, 무딘 감각(?)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더치커피는 너무도 좋기만 한데 곧바로 즐길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좋은 것은 어쩌면 오랜 기다림이 필수인가 보다. 잴 것도 없이 더치커피 기구를 샀다.


아내는 더치커피를 닮았다. 여전히 각자의 영역을 인정한다. 어느덧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 지금도 설렌다고 하면 지나칠까 싶지만, 20년 동안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결코 서두르고 싶지 않다. 아내는 내게 오해가 생기면 누긋이 기다려준다. 오랜 시간을 점점이 내려서 며칠을 숙성한 후에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그 더치커피처럼.


‘더치커피처럼’


이 말은 어쩌면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기다림의 미학은 자학 같지만, 더치커피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세계를 열기도 했다.


그저께 내린 더치커피를, 오늘 아내와 함께 맛보는 상상.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조금씩 아내를 알 듯도 하다.


인스턴트커피를 멀리한 후 더치커피를 만나기까지 어언 15년이 걸렸다. 청춘의 엄습한 터널을 지나며 잘 버텨온 덕분에 마침내 태양을 만난 듯하다. 게다가 더치커피는 웰빙이라는 말에 가장 근접한 커피 추출방식이기도 하다.


더치커피는 아내를 닮았다, 여러모로. 우연히 더치커피를 알게 됐듯, 우연히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고 지금껏 산 게 기적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