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유라는 함수는 늘 경제력과 시간이란 변수에 따라 일정한 상수값을 갖는다. 총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곧, 누릴 만한 시간은 넉넉한데 돈이 없다든지, 돈은 여유가 있는데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든지. 그래서 향유의 기회는 공평하게도 늘 일정한가 보다.
낯선 곳, 울산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니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좀체 시간을 낼 수 없다니. 예의 함수는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격주로 사랑의 온도(?)를 지키려고 서울로 향한 이유도 작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벅찼다. 결국 한 달에 한 번씩으로 빈도를 바꾸기에 이른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는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다.
뜨겁게 타올랐다가 겨우 냉정을 찾았지만, 나카에 이사무의 <냉정과 열정 사이>와 같은 간극을 메우지 못하거나, 그 경계의 최적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덧 냉정 쪽으로 치우친 느낌. 일 년여 지나서 마침내 무용계(?)를 떠나고 말았다. 서울과 울산은 멀고도 먼 천리길이었다. 김광석이 유명을 달리한 해였고,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나이도 '서른 즈음에' 이르렀다.
그 무렵, 매일 퇴근한 후 들른 재즈바가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빌 에반스, 키스 자렛을 듣고, 특히 나보다도 어렸던 신예, 조슈아 레드맨의 색소폰에 매료되어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조슈아 레드맨의 2집 「Mood Swing」의 ‘Alone in the morning’은 당시 내 상황과 일치하면서 혼자여도 외롭지 않게 해 줬다. 울산시향의 공연을 매달 보러 갔고, 콘서트홀에 자주 찾아간 덕분에 당시에 신예였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소리도 가까이서 들을 기회도 있었다. 장사익의 음악이나 김소희의 창을 들으러 멀리 부산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또 온 동네 비디오 가게를 죄다 뒤지며 영화를 탐독했다. 주말이면 몰아치기로 네댓 편도 예사였다. 내겐 외로움을 녹여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도 아니면, 지적 허영심인지도 모르겠다. 강력한 흡반처럼 뭐든 빨아들였다.
재즈와 영화를 동시에 즐기는 방법은 재즈 영화를 통하는 방법이 있다. 재즈마니아였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거나 관여한 <버드>와 <델로니오스 몽크>, 베르트랑 티베르니에의 <라운드 미드나잇>, 스파이크 리의 <모베터 블루스>는 당시 내 그물망에 걸려든 작품들이다. 굳이 여자친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재즈, 국악, 클래식뿐 아니라, 이렇듯 내겐 영화가 있었고, 여전히 시와 소설이 건재했고, 사진이 있었다. 영남알프스도 손짓하며 불렀다. 그 많은 걸 해내느라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 재즈바는 혼자 와서 한참 동안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거려도 개의치 않는 나만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벽면으로 길게 바를 만들어 놨던 것이다. 오로지 벽만 보면서, 면벽수도라도 하듯 내 세계로 몰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오늘은 목요일인데 좀 늦게 오셨네요?”
이 말 한 마디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 월, 수, 금요일은 학원에 갔다가 오기에 늦는 줄 알지만, 그도 아닌데 왜 늦었냐는 핀잔만 같았다. 이미 내가 너무 많이 노출이 된 상태였다.
“오는 길에 레코드 가게도 들르고, 서점에도 좀 갔다 오는 바람에요.”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내 사생활이 전부 노출된 건 달갑지는 않았다. 심지어 오후에 볼 일이 있다고 퇴근 후에 와서 가게를 대신 봐달라고도 하신다. 본의 아니게 일일 재즈바 매니저가 되기도 했다.
근래 들어서 퇴근 후 늘 혼자 오는 나처럼 종종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한 여자가 부쩍 눈에 띄었다. 눈이 유난히 커서 눈에 띈 걸까. 하지만 내겐 그저 익명의 존재일 뿐.
그러던 어느 주말께였다. 간월산장 쪽에서 가파른 코스를 올라 신불산 산행을 하고 하산한 후 바에 들렀다. 어느새 동생처럼 대하는 재즈바 주인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마침 손님이 둘밖에 없자 우리를 한 테이블로 부르신다.
“우리 바 단골 두 분만 계시네. 여기 테이블에서 같이 한 잔씩들 해요. 서로 알고 지내시게 인사도 나누시고요.”
자연스레 서로 소개를 해주신다. 무용계(?)를 떠난 후 뜻하지 않게 다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황송한 아니, 황홀한 순간이었다. 어언 3년 가까이 면벽수도에 전념한 끝에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러 가부좌를 풀었다고 할까?
여느 때처럼 버드와이저와 안주 삼아 주문한 커피를 주섬주섬 양손에 들고 왔다. 서로 간단히 소개를 한 후, 이윽고 버드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치 커피를 안주 삼아 들이켜는 내 모습을 예전에도 훔쳐보았는지 대뜸 묻는다.
“늘 맥주랑 커피를 같이 드시네요? 마치 안주로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요.”
아무렴, 일종의 안주라고 할 수도 있지. 어떻게 보면 맥주의 풍미를 더 살려주는 역할을 커피가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맥주 마실 때는 원래 안주를 잘 안 먹어요. 처음에 커피만 마시다가 ‘버드 bird’라고도 불리는 찰리 파커의 색소폰이 스피커에서 나오자, 발음이 비슷한 버드(와이저)를 주문한 적이 있었죠. 그때 함께 마시니까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어요. 커피한테는 미안하지만, 안주로도 일품인 듯해요.”
내 입맛도 다소 특이한 면이 있다. 된장찌개가 자작하면 밥에 국물 몇 스푼을 얹고난 뒤 거기에 마요네즈를 비벼서 먹는 걸 좋아한다. 그 조합을 상상하며 쓴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더러 봤다. 인도식당에 가도 커리를 곧잘 먹고, 아랍 고유의 음식도 참 맛있다는 생각을 하고, 터키식 커피도 거부감이 없는 걸 보면.
그는 놀랍게도 공무원이었다. 평소 곁눈질로 본 옷차림이 꽤 세련되었는데, 공무원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공무원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무척 쿨한 여자였다.
당시 무면허였던 나와 달리 빨간색 스쿠퍼를 몰던 그의 버릇 중의 하나는 음주운전이었다. 한적한 곳에 가서 함께 술을 마셔도 꼭 운전대를 잡았다.
"대리 부르거나, 여기 놔두고 택시 타자. 내일 찾으러 오고."
안절부절못하는 나에 비해 무척이나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막무가내다.
“내가 운전하면 음주운전 검사를 해도 대개 그냥 보내. 그리고 오늘은 검사하는 날도 아냐.”
약간 홍조가 보이는데도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힘이 넘친다.
“경찰 공무원도 아닌데, 그건 어떻게 알아?”
내처 묻자, 다 아는 수가 있단다. 지금도 난 모르겠다.
둘 다 퇴근 후 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바빠서 가끔씩 만났지만, 서른을 넘기니까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서 좋았다. 그때는 비디오방이 흔해서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난상토론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필 야한 것을, 그 은밀한 공간에서 본 후였다.
"애드리안 라인은 종잡을 수가 없네."
대학에 입학하고 그 해에 개봉한 <나인 하프 위크>를 보고 나서 충격을 받았지만, 해석 불가였다. 그때는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도 않았다. 그런 후 두세 번 다시 본 후에야 조금은 그 진가를 깨치기도 했지만. <플래시댄스>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상상은 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 같이 본 그의 차기작에서 적이 실망했다는 얘기를 에둘러 말하니 득달 같이 토를 단다.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만으로도 인정할 부분이 있는 걸! 여전히 애드리안 라인은 좋은 감독이란 생각이 들어."
왜 아닐까. 좋은 영화의 첫째 조건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으니.
“집요하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지만 점점 한계를 보이는 것 같아서. 전작을 우려먹는 듯해서 말이야.”
이만하면 한 발 양보하며 수긍할 수도 있을 텐데, 또 파고든다.
“그래도 애드리안 라인만 한 감독도 흔치 않아. 어떻게 보면 집요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같이 본 작품은 그렇지만, <야곱의 사다리>, <은밀한 유혹>은 최고의 작품 반열에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고 생각해.”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는 사람의 고집스러운 추구 뒤에는 결국 낯선 세상이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시도는 추켜세울 만하다.
그렇게 서로에게 자극이 되던 중에, 어쩌나, 그만 사건이 터졌다. 중동에 2년 가까이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공무원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모처럼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를 어쩌나. 2년 후에도 공무원의 건재는 장담할 수 없었다. 기다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친구 이상도 아닌 듯했고, 둘 다 결혼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마음이 기우는 찰나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나 혼자만 애달파한 관계가 아닌가도 싶었다. 서로 만나면서 애써 쿨한 척했는데, 막상 떨어져 지내야 해서 마음을 고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연은 여기까지가 아닐까 생각하자, 마음이 뜻밖에 차분해졌다.
느닷없는 자기 위안 같지만 내겐 커피가 있었다.
점점 핸드드립도 더는 낯설지 않을 무렵이었다. 중동으로 출국할 때 한국에서 달랑 캘리타 드리퍼와 종이필터만 가지고 갔다. 드립포트, 분쇄기, 서버 등은 현지의 마트에서 살 작정이었다. 모든 게 갖춰졌는데 다만 원두가 문제였다. 싱글 오리진이 그리웠다. 마트에서 파는 이탈리아 산 일리 Illy나, 독일 산 멜리타 Melitta, 레바논 산 압착식 분쇄원두도 그럭저럭 훌륭했지만, 결국 1999년엔가 커피의 메카인 중동으로 처음 진출한 스타벅스로 귀결되고 말았다.
스타벅스에서 처음으로 에티오피아 원두인 이가체프 yirgacheffee (예가체프라고 불리지만 엄밀히 이르가체페가 맞다), 시다모, 하라, 게이샤 등을 접하고서, 역시 싱글 오리진! 하며 감탄하고야 말았다. 그 품격 있는 맛. 새삼스레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Arabica 종의 원산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커피의 귀부인'이라고도 불리는 이가체프를 알게 된 것은 오로지 스타벅스 덕분이다. 그 뇌쇄적인 신맛이라니!
한국이든 중동이든 스타벅스에서 파는 원두는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비용도 그렇거니와 맛에서만큼은 호기심이 끊이질 않는 나로서는, 어느 날 마트에 가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덜컥 터키식 커피와 아랍식 커피의 원두를 한꺼번에 사 왔다. 오래전 신촌시장에서 팔던 그 모양 그대로 로스팅한 원두를 수북이 쌓아놓고 팔았다. 차이라면 뚜껑이 덮여있다는 정도? 그런데 거의 일반 원두의 반 값밖에 안 한다. 숙소에 돌아와 익숙한 방식대로 드리퍼에 커피를 내렸다. 그 순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맛이 탄생하는 게 아닌가? 인터넷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물어 물어 추출법을 익힌 후 터키식 커피 전용 포트인 체즈베 cezve과 이브릭 ibriq 등을 사서 제대로 된 터키식 커피를 비로소 즐기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커피 열매를 발견하고 난 뒤 어떻게 커피를 추출해서 마셨을까? 문득 궁금했다. 커피의 유래와 관련한 여러 가설 중에서 소위 ‘칼디의 설’을 접한 적이 있다. 다행히 중동에서 만난 친구와 얘기도 나눴지만, 백과사전에 있는 '커피의 역사'가 그런대로 신뢰가 갔다.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에티오피아 남쪽 고원에 양치기 소년 칼디가 살았다. 그는 매일 양 떼를 몰고 산야를 돌아다닌다. 한 번은 자신의 양이 어떤 열매를 먹은 후 흥분하는 걸 목격한다. 칼디는 그 빨간 열매를 눈여겨봐 뒀다.
어느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식사를 거른 칼디. 배도 고프고 해서 무어라도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눈앞에 예의 빨간 체리가 보였다. 양들이 흥분하던 바로 그 열매란 게 기억났던 것. 호기심이 발동한 칼디는 그 열매를 따서 먹어봤다. 과육을 먹고 속에 있는 씨앗을 뱉었다. 그다지 특별한 맛도 아니고 은근히 기대했던 효과도 없는 게 아닌가? 오히려 배만 더 고팠다. 그래서 과육 속의 씨앗(커피콩)까지 슬쩍 깨물어 본다. 역시 별다른 맛도 없었다.
며칠 지나서 또 양들이 그 열매를 먹은 후 흥분하는 걸 봤다. 아무래도 뭔가가 있긴 한데, 도무지 무엇이 그토록 양들을 들뜨게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칼디는 체리를 한 움큼 따서 집에 돌아왔다. 일일이 과육을 제거한 후 한 데 모은 씨앗을 하나씩 으깨서 물에 타서도 먹어봤지만 역시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다른 곡식과 섞어 봤다.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칼디는 그 체리의 씨앗에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씨앗을 삶아서 먹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팬에다 올려놓은 줄도 모르고 해거름에 양들과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우연히 팬 위의 씨앗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기 좋게 색이 변해 있는 걸 봤다. 그런데 태양열에 달궈져 색이 약간씩 노르스름하게 바뀐 콩을 깨물어 보니 독특한 향과 맛이 나는 게 아닌가?
마침내 칼디는 아예 불 위에 팬을 올려놓고 볶았다. 그러자 먹음직스러운 색깔로 변했다. 깨물어보니 볶기 전과는 사뭇 다른 특이한 맛이 났다. 볶은 콩을 으깨서 먹기만 해도 그 쌉싸름한 맛이 의외로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런데 입 안이 조금 텁텁했다. 물을 들이켜자 한결 나았다.
한 번은 볶은 콩을 갈아놓은 다음 물에 녹여 봤다. 아쉽게도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마침내 뜨거운 물에 갈아놓은 커피콩을 섞어 불 위에서 끓였다. 이윽고 거품(크레마)이 생기며 부풀어 오른다. 한참 지나 불에서 꺼내어 우러난 커피액을 들이켰다. 마시자마자 차분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해졌다. 이게 양을 흥분시킨 비밀이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숱하게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 나름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하나. 커피콩의 과육을 벗긴 뒤 씻겨서 말린다.
둘. 콩을 직화로 볶은 뒤 껍질을 낱낱이 털어낸다.
셋. 콩을 빻아서 가루를 내고 작은 주전자에 담는다.
넷.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불 위에서 계속 끓인다.
다섯. 거품이 잦아들 때쯤 주전자를 불에서 빼낸다.
여섯. 주전자 속 커피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일곱. 주전자 윗부분에 이미 검게 변한 (커피) 액체를 마신다.
신기하게도 이 물을 마시면 피로가 사라지고 기분도 상쾌해지고 온몸에서 활력이 생겼다. 양들이 흥분할 만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각성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칼디는 이 체리의 신비로운 맛을 마침내 발견한 듯해서 날아갈 듯 기뻤다. 콩을 볶는 정도와 물의 온도에 의해서, 물을 얼마나 붓고, 불 위에서 언제까지 두냐에 따라서 오묘하게 맛에서 차이가 나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갔다. 어느새 동네에 소문이 나서 이 우려낸 커피를 얻어 마시려고 칼디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칼디는 마침내 최적의 맛을 찾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소문은 점점 퍼져 기어코 홍해 건너 모카항까지 전해졌다.”
아마도 칼디가 고안한 커피 추출방식은 오늘날의 터키식 커피 제조법에 가까웠을 것이다. 모카항이 있는 예멘은 전 세계 커피 품종의 7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원두의 발원지로서도 유명하다. 운명처럼 중동으로 파견을 나오게 된 것이다.
커피의 역사에서 아라비카 종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를 빼놓을 수 없다. 바다가 없는 에티오피아나 우간다, 르완드 등은 커피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지부티공화국을 거쳐야 했고, 지부티 건너편에 있는 예멘의 모카 항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렇게 유럽에 앞서 먼저 중동지역으로 커피가 전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스리랑카의 차 재배 지역의 이름인 실론에서 따온 실론티라는 홍차가 스리랑카의 상징이 됐듯, 커피의 대명사는 단연 모카이다. 모카와 더불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영화가 깃들어 있는 터키도 커피를 전파시킨 일등 공신 중의 하나이다.
터키식 커피는 곱게 간 원두에 카다몸 cardamon이라는 향신료를 섞어서 만든 커피 파우더를 시용한다. 체즈베에 파우더를 넣어 물과 섞은 후 불(직화) 위에서 끓이고 커피거품인 크레마 crema가 나오면 넘치지 않도록 불에서 떼어내고, 이 과정을 한두 번 더 반복하면 마침내 터키식 커피가 완성된다. 컵에 커피를 붓고 커피 침전물 Grounds이 가라앉으면 이를 마시는 방식이 바로 터키식 커피이다. 터키식 커피는 커피의 종류라기보다 제조법 preparation의 별칭인 셈이다.
일반 드립(필터) 방식과 다른데,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를 비롯하여 발칸반도에까지 터키식 커피 제조법은 널리 퍼져있다. 물론 이 커피를 추출방식으로 브루잉 brewing 해서 마셔도 상관없다. 비록 흔한 아라비카 원두의 맛을 기대할 수 없지만. 아라빅 커피 Arabic coffee는 부가되는 향신료의 차이와 물의 양, 끓이는 시간 등에 차이가 있을 뿐, 제조방법은 터키식 커피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까지 등재된 터키식 커피이지만, 프렌치프라이 French fries가 프랑스에서 통용되는 말이 아니듯, 터키에서는 보통명사의 하나로서 단지 ‘커피’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터키의 문화에서 커피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몇몇 단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침식사를 의미하는 ‘kahvaltı’는 문헌학적으로 ‘before coffee’ (kahve+altı)의 의미이다. 즉,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의미보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먹는 게 아침식사란 얘기다. 즉, 커피가 우선순위에 있다는 얘기다. 또 갈색을 의미하는’kahverengi’는 coffee color를 의미한단다. 그야말로 모든 게 커피로 통한다.
원산지에 따라 다양한 맛을 지닌 원두를 부가물을 섞지 않고 여러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여전히 선호하지만, 가끔씩 터키식 커피가 당길 때가 있다. 추출하지 않아서 커피 고유의 맛을 모두 지녔고, 풍성한 아로마를 머금고 있다.
커피와 물을 한 데 넣고 끓인다는 의미는 끓인 커피를 잔에 따른 후 진득이 기다려야 함을 뜻한다. 커피의 침전물이 잔의 바닥에 모두 가라앉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하고 독특한 향미도 매력적이지만, 그 기다림은 곧 여유와 같은 말이다.
우연히 버드와이저와 커피를 곁들여 먹으며 새로운 커피의 진가를 느꼈듯, 터키식 커피는 내게 신대륙의 발견만큼 황홀한 즐거움을 선물했다.
터키식 커피와 더불어 아라빅 커피 Arabic Coffee도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끓여서 만든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아무려나 터키식 커피는 인류 최초의 커피추출 방법이기도 하다. 칼디가 제대로 비법을 전수한 모양이다.
아라빅 커피도 주로 커피 품종은 아라비카 품종을 사용하고, 로스팅 시 터키식 커피와 같이 향신료인 카다몸 cardamom을 넣는다. 차이라고 하면, 아라빅 커피는 설탕 없이 블랙으로 제공이 된다. 쓴맛이 강해서 커피와 함께 스위티의 역할을 하는 대추야자 등이 함께 곁들여진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라고 알려져 있는 샤프란 saffron을 아라빅 커피를 끓일 때 넣기도 하는데, 그래서 아라빅 커피의 색은 샤프란 때문에 황금빛을 보이곤 한다. 터키식 커피도 ‘터키쉬 딜라이트 Turkish Delight’와 함께 곁들이기도 한다. 그 화려하고 달콤한 딜라이트를 맛보면, 의외로 터키식 커피가 그립기도 하다.
중동에서 귀국한 후에야 알았다. 그는 결국 공무원의 직책을 그만둔 후 프랑스의 어느 에콜로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을. 내게 아무런 연락도 남기지 않고서.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요즘에도 가끔씩 패션디자이너 중에서 그의 이름이 있는지를 살피기도 한다. SNS로 찾아보기도 했다. 아직은 세상에 덜 알려진 듯, 내 정보망 너머에 존재하는 모양이다.
만일 그가 터키식 커피를 좋아한다면, 내 이브릭에 짙은 맛과 향을 담아 건네고 싶다. 결코 평범한 맛이 아니듯, 너는 당시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고. 후처리가 번거롭지만 계속 그 맛이 그리운 것도 닮았다고 말이다.
만약 중동으로 파견을 가지 않고 그와 계속 만났더라도 어쩌면 벅찬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은 보고 싶다. 만나면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