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램프. 누가 발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은하면서도 뜨거운 이 기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곧, 금방 식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문과 서문을 거쳐 화곡동 생활까지 전전한 후 마침내 동문 쪽에 있는 하숙집을 구했다. 예의 정문 앞은 유흥문화 일색이고, 서문은 면학 분위기가 강하다면, 어쩐지 동문은 야릇한 연애가 일상일 듯싶었다. 우연히 찾아간 하숙집은 자그마치 하숙생이 40 명이 넘었다. 그런데 그 수보다 인상적인 게 있다. 하숙생 중에서 절반이 여자였다는 사실. 뒤늦게 여자복이 터지려나?
“오빠, 왜 하필이면 그쪽으로 하숙집을 구했어?”
조금은 불안했던가 보다. 근처에 여대가 있어서일까. 사이폰 커피로 뜨거웠다가 조금씩 새로운 맛이 그리웠던 시기인 것을 그도 눈치챈 것일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제대로 된 커피 향을 간절히 맡고 싶었다고 할까. 그의 질문에 내 대답은, 어쩌면 변명 같지만, 명쾌했다.
“오빠가 대식가란 걸 알잖아. 졸업반이니 공부도 해야 하고, 끼니마다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느니 그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그냥 차려준 음식 먹고 싶어서. 집밥이 그리울 때가 된 모양이야.”
그 하숙집은 40명의 끼니를 일일이 차려줄 수도 없어서 식사도 아예 뷔페 식으로 제공되었다. 식당 한편에 있는 방을 사용하시는 주방아줌마를 따로 두고서. 무엇보다 양껏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곳이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제야 수긍하는 눈치였다. 따지고 보면, 그곳은 하숙집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하숙전문 중소기업에 가까운 곳이었다.
다소 식은 듯한 사랑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신촌에 갈 때마다 약속장소는 현대백화점 앞이다. 이미 랜드마크로서 입지를 굳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의 그 현대백화점이 개장한 시기가 1990년대 후반쯤이라고 기억한다. 그 자리에는 원래 재래시장인 신촌시장이 있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종종 들렀던 곳이다. 때로는 군것질도 하고, 생필품도 사곤 했던 곳. 예나 지금이나 덤과 흥정이 있는 재래시장에 끌리곤 한다. 무언가 인간적인 향내가 풍긴다고 할까. 정해진 가격에서 한 푼의 에누리도 없는 곳은 삭막하다.
1992년 어느 날이다. 신촌시장 한 귀퉁이에서 지금은 흔하디 흔한 원두커피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인스턴트커피만 알던 내게 그 발견은 신비, 그 자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건 어쩌면 본능인가 보다. 과연 저 맛은 어떨까, 하고. 노점상이니까 뚜껑만 덮은 채 방치하여서 이미 향은 많이 날아갔을 테고, 어떤 품종인지, 산지는 어딘지, 볶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싸더라도 결코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호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줌마, 저 원두 한 움큼만 주세요.”
용기를 냈다. 그러자 아줌마는 한 차례 내 몸을 훑어본 뒤, 퉁명스럽게 뱉었다.
"학생, 한 움큼? 한 200g이면 되겠어?"
200g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뭐람. 지금이라면, 분쇄해 달라고도 안 했을 테고, 분쇄된 상태를 살 수밖에 없다면 맛만 보는 셈 치고 100g만 샀을 것이다.
"네, 그러세요, "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커피 갈아줘?”
당시 내게 분쇄기가 있을 리 없었다.
“네, 갈아주세요.”
분쇄도도 천양지차다. 추출방법에 따라, 원두의 품종에 따라 분쇄도를 달리해야 하는 걸 알 턱이 없었다.
1992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비록 분쇄된 상태지만 원두커피를 처음 사는 순간이었다. 이른바 원두와의 첫 만남.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서 벌써 30년이나 지난 얘기다. 아줌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국자 모양을 한 작은 되를 저울 위 그릇에 달아가면서 200g만큼의 커피를 계량한 후 그릇째 분쇄기에 넣어서 갈아 줬다. 지금은 커피의 향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갈지 않은, 이른바 'whole bean' 상태로 사지만 말이다.
드리퍼도, 서버도, 핸드밀이나 분쇄기도, 드립포터도, 종이필터도 쉽게 구할 수도 없었던 시절. 아무런 장비도, 더군다나 원두 추출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막상 분쇄원두를 사 오긴 했지만 그야말로 막막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인스턴트커피처럼 뜨거운 물에 바로 넣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도 어디서 본 적이 있어서 하숙집에 돌아와서 핸드드립을 해서 마셨다. 핸드드립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기막힌 아이디어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추출할까 고안한 것이 바로, PET병을 반 토막 낸 후 위 부분을 다른 아래 부분에 거꾸로 포개서 소위 '드리퍼 일체형 서버'를 만들고, 종이필터 대신에 거름종이를 두른 기상천외한 모양새였다. 어쩌면 가장 원시적인 핸드드립 방식이 아닐까 싶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서 탄생한 추출방식인데, 커피박물관에는 내가 고안한 최초의 일체형 드리퍼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아쉽게도.
아무튼, 그때는 원두의 종류가 뭐였는지, 로스팅 정도는 어땠는지도 몰랐다. 불림시간이 필요한지도, 추출온도는 얼마가 좋은 지도 전혀 모른 채였다. PET 병에 뜨거운 물이 닿으면 환경호르몬이 발생하는 건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인스턴트커피에서 느낄 수 없었던 커피의 향과 맛이 좋기만 했고, 새로운 커피의 세계로 다가서는 설렘이 컸다. 그때부터 신촌시장에 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느새 아줌마도 내 얼굴을 기억하시는지 덤을 얹어 주시기도 했다. 단골집이 생긴 셈이다.
요즘에는 아예 팬 로스팅으로 직접 로스팅을 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원두를 사야 할 경우에는 1kg씩 파는 커피공장을 애용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일주일에 두어 차례 로스팅을 해서 보내준다. 품질도 가성비도 만족해서 단골이 된 지 오래다. 100g도, 200g도 아닌, 1kg씩 파니까, 마치 도매상처럼 가격이 합리적이다. 시쳇말로 가격이 착하다. 거기다가 샘플을 요청하면, 다양한 블렌딩을 기꺼이 곁들여 보내준다. 하우스 블렌드도 개발팀의 숱한 시행착오 끝에 최상의 맛을 찾아낸 듯 안정감이랄까, 균형감까지 느껴진다.
15 분 가까이 레인지 위에서 팬 로스팅을 하고, 커피콩의 겉껍질인 채프 chaff를 모두 제거한 후 사방으로 흩어진 채프를 일일이 쓸어 담고, 하루 이상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추출할 수 있는, 홈 로스팅 작업은 만만치가 않다. 그 절대적인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결국 주문해서 먹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 때로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현명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생두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이유가 크다. 만약 대량생산일지언정 여전히 향미를 유지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굳이 그 효율성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핸드드립은 다소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추출에 대한 노하우와 바리스타의 미세한 기술의 차이가 맛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핸드드립이 보편화되자 특이한 가게가 속출한다. 을지로에 있는 커피전문점 두 군데는 곱씹을 만하다.
우선, '20-20'이라는 상호를 가진 커피전문점이다. 대개 핸드드립 전문점에 가면 야박하게도, 일 인분을 위해 고작 15g 정도의 원두를 쓴다. 그런데 이곳은 자그마치(?) 20g을 제공하고, 볶은 지 20일 전의 신선한 원두만을 쓰는 게 철학이자 모토라고 한다. 그래서 20-20! 내 경우는 무려 40-50g이 정량이다. 내가 좀 독한 편이다. 그래선지 1kg을 사도 채 3주가 안 돼서 다시 주문해야 한다. 아무튼 서서히 커피의 세계가 보편화되는 추세에 맞춰, 원두의 양과 보존기간조차 커피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활용한 기막힌 수완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더도 덜도 말고 1kg!
'커피 한약방'이라는 데도 있다. 몸에 좋은 커피란 얘기인가? 을지로에 있는 피맛골처럼, 거리에서 뵈지도 않는 좁다란 길 가운데에 꼭꼭 숨어 있다.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 점심시간이면 손님이 줄지어 서있다. 실내 풍경은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르다. 얼추 10개가 넘는 드리퍼가 기다리는 손님 수만큼 나란히 줄지어 있고, 두 명의 전문가는 연신 핸드드립만 한다. 한편에는 커피를 볶는 사람이 뻥튀기 기계를 돌리듯 반자동 로스터 기계를 돌리느라 여념이 없다. 카운터에는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사람과 커피 변종메뉴나 음료수를 만드는 사람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다섯 명이 철저히 분업하는 핸드드립 전용 카페다. 게다가 가격마저도 저렴하다. 충분히 유명세를 탈 만한 시스템이다.
이렇듯 핸드드립의 열기와 아이디어는 나날이 진보하는 듯 보인다. 그래선지 요즘은 부쩍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도 많이 뵌다. 홍대역의 K요리아카데미에 갔을 때도 요리뿐 아니라 바리스타 과정이 중요한 교과 과정 중의 하나였고, 과정도 많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흔히들 바리스타가 만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커퍼 cupper, 로스터 roaster와 바리스타는 구분하는 게 맞다. 그나마 여기는 로스팅과 바리스타 과정까지는 구분돼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의 내용을 살펴봤다. 한국의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다루고, 변종 메뉴를 만드는 기술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핸드드립 바리스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단종커피는 역시 핸드드립으로 마셔야 그 깔끔하고 깊은 맛과 향을 담아낼 수 있기에 핸드드립 기술까지 최고의 수준에 이르러야 진정한 의미에서 바리스타의 이름에 걸맞지 않을까 싶다. 단종커피의 순수한 맛을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낸다면 말이다.
사랑도 그런 걸까?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 채, 아직 한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된 상태였지만, 단지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사랑이 전하는 향과 맛은 그 순수한 마음만으로도 오롯이 얻어지는 것이니까.
핸드드립이 전하는 색다른 맛을 느껴가면서 미네르바 여신의 육체보다 지혜를 보게 되었다면 지나친가. 내게 핸드드립은 지혜요, 그 지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 아닐 수 없다. 사이폰보다는 다소 손이 많이 가지만 핸드드립 커피의 진면모를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린 너무 뜨거웠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이 되었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으로도 청년실업이 다반사인 요즘인데, 그야말로 최악의 스펙에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다니. 기적이다.
펄펄 끓는 물보다 90도 내외가 핸드드립에는 최적의 온도다. 녹차를 우릴 때도 숙우에 물을 부은 후 손바닥을 대고 있어도 괜찮을 때의 온도가 가장 좋다고 한다. 커피도, 녹차도, 하물며 사랑도 서로 통한다. 마냥 뜨겁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결국 일을 좇아 우리는 멀어져야 했다. 너무 뜨거워서 델 것 같았다. 일부러 멀고 낯선 울산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마음 한편에서 우러난, 조금은 떨어져 서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움에서 시작하여 식기까지 얼추 일 년여 걸린 셈이다.
동문에서 터진 건 여자복이 아니었다. 핸드드립과 나 사이에 가로놓였던 둑이었다. 둑이 터지자 그 틈새로 쉴 새 없는 새로운 맛과 향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