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발표가 있고 난 이후, 시국은 하루도 잔잔할 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불처럼 시위가 일어났고, 군사정권은 국민의 열망인 개헌의 정당성을 무마시키며 원성을 사기에 이른다. 기어코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한 사건이 터진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는 희대의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교문을 지날 때마다 메케한 최루탄 연기는 거의 일주일 내내 맡아졌다. 수업을 듣기 전에 최루탄 냄새를 맡는 게 필수였던 시절이랄까. 어떤 날은 교문께부터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경찰의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어서 아예 강의를 들으려 학교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교내 깊숙한 곳에 있는 본관 쪽에서 교양과목을 듣고 있는데, 창 너머로 하얀 헬멧에 청색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이른바 ‘백골단’ 무리가 우르르 뛰어가는 게 보였다. 지금 밖에서는 목소리를 외치며 민주화를 외치는데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있었으랴. 늘 마음은 갈팡질팡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었다.
책가방 속에 시집만 넣고 다녔다. 용돈을 아껴가며 문지사, 창비사, 민음사, 청하의 시집을 샀고, 틈만 나면 시집을 펼쳐 읽었다. 시대를 외면한 채 나름대로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몸짓이었을까. 스테디셀러처럼 황지우, 김정환의 시를 읽었고, 김광규, 김명인, 고정희, 최승자, 정호승, 정현종, 이성복, 황동규 등의 시를 즐겨 읽으며 심지어 외우기까지 했다. 시를 외우는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시대를 핑계 삼아 공부는 젖혀두고 세상의 고민을 모두 짊어진 채였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지.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번지는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염없이 청춘의 어둔 터널에서 헤매고 있자니, 도무지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결국 군대라는 도피처를 핑계로 휴학을 하고야 말았다.
제대 후 복학해도 삶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외로움은 그대로였다. 사랑과 욕망의 차이를 구분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예 아저씨로 불리는 복학생이 돼버렸으니까, 만남의 기회는 더더군다나 줄어 있었다. 환경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제대로 공부나 좀 하자며 다짐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늘 흥청망청 술에 취했던 정문 쪽보다 뭔가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문 근처로 하숙집을 구했다. 그곳은 대부분이 가정집이거나 하숙집이어서 아마도 유혹받을 데가 상대적으로 적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도서관만 찾은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집과 학교 사이만 왔다 갔다 한 듯하다. 마치 외딴 길인 양.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체육관에 가서 농구를 한 게 유일한 샛길이었다. 어떤 날은 체육관 2층에 올라가서 농구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누긋이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TV에서 봤던 스타 선수가 감독에게 혼나는 장면은 의외였다. 검은색 뿔 테 안경을 낀 감독은 운동선수 출신이라기보다 점잖은 신사처럼 보였는데, 제대로 훈련을 따르지 못한다고 선수를 부르더니 잔뜩 주눅 든 선수에게 공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치기도 했다.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선수들. 어떤 때는 내리치는 공의 세기로 인해 뒤로 나자빠지기도 했다. 코트에서 야생마처럼 뛰던 선수들도 나름대로 이런 고충이 있다는 걸 목격한 순간이었다.
단순한 생활의 반복도 나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하나씩 채워가는 느낌이었고, 여전히 시를 사랑하며 맑은 꿈을 꾼 시절이었다.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도, 그런 내가 한심해 보였나 보다. 답답했거나 아니면, 측은해 보이기도 했나 보다. 어느 날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부천에 있는 학교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동갑내기 학생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좋기만 했다. 성격도 밝고 무척이나 적극적이란 인상을 받았다. 더군다나 첫 대면에서 내게 한 말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우리, 나이도 같은데, 바로 말 놓자. 나, 너 맘에 들어."
내가 좋다지 않은가? 그로부터 연신 방글방글 연애하는 티를 낼 수밖에 없었다. 복학한 후에야 뒤늦게 사랑의 홍역을 앓다니. 멋쩍지만 이제야 학보도 날아오고, 촘촘히 글을 써넣은 후 학보도 보냈다. 나도 마침내 여자대학교에서 학보를 받고야 만 것이다.
어느새 사귄 지가 4개월째에 접어들었고,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기말실험이 끝나면 방학 동안 시골에 가야 해서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2개월의 별리. 내겐 너무 긴 시간이었던 것! 어려운 가정형편에 방학 내내 서울에서 하숙비를 내며 살 수도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 재간도 없었다. 방학이 있기 전에 혹시나 해서 아르바이트생 모집, 이라는 쪽지를 보고 커피숍에 들어가 보았다. 내 모습을 쓱 훑어보더니 말한다.
“어쩌죠, 학생. 이미 구했어요.”
그러면 쪽지를 떼든지, 훑어보지나 말든지. 며칠 후에 가봐도 여전히 ‘아르바이트생 급구!’라는 쪽지는 그대로 붙어있다. 한몫을 할 외모가 아니라며 자위할 밖에. 커피숍 아르바이트에서도 낙방을 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꾸미고 갈걸. 물론 꾸며도 원본은 불변이겠지만. 결국 선택은 정해졌다. 기말시험이 끝나자마자 고향 행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막상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자 문득 기말시험 기간임에도 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금 내게는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마땅해.'
'어떻게 일궈낸 사랑인데, 그 사랑에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텐가.'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법. It’s time to love.’
우리는 멀리 홍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날이 내일인데도 첫 만남처럼 기다려진다. 하루가 왜 이다지 긴 걸까 싶게. 홍대 정문에서 상수역 방향의, 꽤 고급스러운 외관을 한 가게가 쭉 늘어선 곳이 있다. 그중의 한 곳으로 약속장소를 일러줬다. 화려하고 어리어리한 외관뿐 아니라 실내에 들어서자 인테리어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슬쩍 주눅이 든 것도 잠시, 메뉴를 보자 입이 떡 벌어진다. 일반 커피는 안 보이고 이름도 외국물을 먹은 듯한 메뉴만 죄다 보이지 않는가. 아이리쉬 irish 커피, 베일리스 baileys 커피, 칼립소 calypso 커피, 비엔나 Vienna 커피 하며.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에스프레소에 칵테일을 한 일종의 ‘리큐르 커피’였던 것을. 아마 메뉴를 뒤적였더라면 일반 커피도 보였을 텐데,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니 ‘같은 걸 마실게’ 했던 것 같다. 다방커피는 피하는 중이기도 했거니와.
베일리스나 아이리쉬는 위스키가, 칼립소는 럼이 들어간다는데, 비엔나커피가 그나마 제일 무난했다. 그럼에도 가격이 일반 커피에 비해 두세 배가 넘었다.
나란히 비엔나커피를 앞에 두고서, 달콤하고 쌉싸래한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필시 잘못 들은 것일 게다. 실내 분위기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때문임에 틀림없다. 아무런 사전 징후도 없이 급작스런 이별 통보를 해오지 않는가.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 우리 그만 만나.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허나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 꼭 이런 날은 날씨도 흐렸다. 어쩐지 만나러 가는 날, 하늘이 한 차례 비라도 쏟아질 듯 찌푸렸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좋다고 하지나 말지.
“무슨 이유라도 있니? 느닷없이 헤어지자니, 그게 무슨 말이야?”
비엔나 여인은 무슨 사연인가를 말했다.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변명일 테지. 그냥 솔직히 말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를테면, 어떤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든지, 갑자기 내게로 향하는 마음이 바뀌었다든지. 내 우둔한 머리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이유는 모른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쾌활한 목소리를 두 번 다시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홍대에서 우중충한 날씨를 어깨에 맨 채 하숙집이 있는 서문까지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 멀고도 먼 길을. 미처 피곤할 기색도 없이 완벽한 어둠이 장점인 반지하 방에서 불을 끈 채 두문불출했다. 당시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아서 저항, 분노, 좌절, 번민, 자학의 수단으로 애꿎은 밥을 거부했다.
"학생, 어디 아파요?”
식사 때마다 몇 그릇씩 먹어 치우며 괜스레 하숙집 아줌마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내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아뇨, 시험기간이라서 그런지 입맛이 없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내게로 향한 일종의 단식 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거의 이틀을 굶었다.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곧,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세계에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바로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그렇게 오랫동안 곡기를 끊은 적이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몇 과목을 남겨둔 기말시험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당연히 복학한 3학년 1학기의 성적은, 시대를 핑계로 책을 덮었던 1, 2학년 때 성적에 어슷비슷할 정도까지 추락하고야 말았다. 아, 어쩌나, 내 성적, 나의 객관적인 대학생활의 준거(?)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성적이 전부는 아니란 걸 알지만.
시사영어사에서 출간한 솔 벨로우의 『죽음보다 더 한 실연』이란 제목이 절절히 사무친 순간이었다. 그 무렵에 그 책을 접했고,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한번 더 읽은 책이니만큼 지금도 내 인생의 명작으로 꼽는다. 제목만으로도 묘하게 위로를 주었던 기억. 이를테면,
‘아, 이런 게 실연이구나.'
'얼마나 아팠으면 죽음보다 더하다고 했을까?’
‘그래, 누구든 하나씩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걸 테지.'
'실연을 겪게 되면 한층 더 성숙해지겠지.'
'지금 이 절망의 한가운데 서보지 못하면 난 정말 세상을 허투루 살았던 것일 게야.'
'고통은 늘 사람을 한 차원 고양시키는 무언가가 있어.'
'아마도 더 나은 사랑을 위해, 더 진실한 사랑을 예비하려는 이유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 거야.'
‘죽음만큼 큰 실연의 의미를 느낄 기회를 준 걸 거야.’
정말 해석도, 결론도 가지가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땐 나도 살아야 했으니까. 이틀을 넘기자 다른 생각이 슬슬 비집고 들었다. 사랑이 뭐길래 내가 이리 힘들어야 하나, 더는 사랑 때문에 나를 학대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들…… 배가 너무 고팠던 것이다. 죽을 것만 같았다.
원제인 『More die of heartbreak』에서 ‘heartbreak’라는 단어의 뜻은 상심일 텐데, 역자인 김은국은 이를 아예 ‘실연’으로 번역했다. 상심과 실연. 실연만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건 없음이 분명하다. 화자인 케네스는 식물학자인 그의 삼촌 벤을 일러서 이렇게 말한다. 벤 삼촌은 사랑만큼은 숙맥이요, 누군가의 조언과 보호를 필요로 하며, 심지어 인문학적 깊이가 없는 아이라고까지. 정작 러시아문학 전공의 학자인 자신은 사랑과 욕망을 분석하고, 철학·문학·역사·심리학까지 두루 관통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여자의 사랑도 얻지 못했다. 곧, 케네스는 사랑의 관념론자요 몽상가라고 한다면, 벤은 사랑을 위해 모두를 걸 수 있는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였다.
이론은 늘 현실과 다른 법.
방학 내내 벤이 더 낫다고 자위하며 지냈지만, 죽음보다 더한 상심의 시기를 한 동안 더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엔나커피는 생크림과 연유로 만든 휘핑크림을 에스프레소에 얹은 커피다. 비엔나커피와 달리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우유나 우유 거품을 얹고 계핏가루를 뿌리는 카푸치노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뜻하는 라테 latte를 붙여서 ‘우유 커피’로도 불리는 카페라테도 있다. 이들 모두는 에스프레소의 변종 variation 메뉴라 할 수 있다. 즉, 에스프레소 기계를 통해 추출한 커피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붓는 아메리카노와 달리, 커피 맛을 부드럽게 혹은 구수하고 달콤하게 할 목적으로 휘핑크림, 스팀 우유 steamed milk, 우유 거품 foam milk 등을 추가한다. 비엔나커피든 카푸치노나 카페라테 같은 변종 메뉴든 같은 듯 서로 확연히 다르다.
쿠웨이트에 있는 어느 회사에 방문했을 때다. 로비에는 손님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 기계가 있었는데, 에스프레소를 비롯하여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의 선택 버튼이 있었다. 새삼스레 카푸치노와 카페라테를 이 기계는 어떻게 만들까 궁금했다.
황당한 결과다. 커피가 먼저 나오느냐, 우유(스팀 밀크)가 먼저 나오느냐, 그것만 다를 뿐이었다. 카푸치노는 커피가 나온 뒤 우유거품이 나오고, 카페라테는 스팀 우유가 먼저 나오고 난 뒤 마지막에 커피가 나왔다. 둘을 모두 선택해서 번갈아 마셔봤다. 결론은 하나. 커피 맛은 매한가지인데, 우유거품과 스팀우유의 차이만 도드라질 뿐이었다. 여전히 에스프레소 변종 메뉴를 마실 바에야, 커피 따로, 순수한 우유 따로, 각각 마시는 게 낫다는 생각.
믹스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넣는다. 에스프레소 변종 메뉴처럼 생크림이나 우유를 넣는 대신에 커피에 첨가하는 것이 다만 우유가 아닐 뿐이다. 우유 대신에 네슬레라는 회사에서 처음 개발했다는 식물성 지방으로 만든 크림을 넣어 맛을 부드럽게 한다. 어릴 때 멋모르고 ‘프림’이라고도 불렀던 커피 크림은 동서식품에서 출시한 상표명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비엔나커피나 인스턴트커피나 매한가지인 것이, 커피 원액의 순수한 맛보다 외려 부드러움이나 달콤함을 강조한다. 커피는 커피만으로 족하다. 커피 자체로도 단맛, 신맛, 쓴맛, 짠맛과 같이 다양한 맛을 지녔는데, 굳이 커피가 달콤하거나 부드러울 필요까지는 없다. 커피의 변종 녀석들은 늘 내키지 않는다. 그들은 커피의 이름을 버리지도 않았고 애꿎은 커피를 이용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치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악마의 유혹’은 달리 불려진 게 아닌 듯싶다. 커피 고유의 순수한 맛을 점점 잃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마치 악마처럼, 순수한 커피를 멍들게 하는, 그 달콤한 유혹. 마침내, 비엔나커피를 좋아했던 부천의 여대생은 커피처럼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일종의 지능적인 자기 합리화에 도달하고야 만 것.
비엔나 아가씨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다그쳐 묻기도 했다.
“너, 혹시 아니? 왜 나와 헤어질 생각을 했는지?”
친구도 얼버무렸다. 무언가가 있긴 한데, 모종의 음모를 꾸미듯, 마치 천기누설을 꺼리듯, 입술을 꼭 다문 채였다.
사랑은 커피 원액만큼 순수하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런데 세상은 변종을 더 사랑한다. 커피를 등에 업고서 부드러움을, 달콤함을, 구수함을 더 찾고 원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발 빠른 적응의 모습으로 이해한다. 변화는 늘 고무적이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변하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거나, 과거에만 머물러있기를 고집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기도 하다. 변화의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본래 지니는 가치는 여전히 존재하게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면서도 늘 경계하는 경구가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라든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Back to the Basic’과 같은. 변화의 바탕에는 반드시 탄탄한 기본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변화는 창조의 의미를 덧입기도 하고, 시대를 제대로 읽는 눈일 수도 있지만, 저변에 깔린 기본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묵묵히 초심을 지닌, 그저 착하게 내주기만 하는 커피는 어쩌라고. 기호가 시시각각 바뀌는 세태에도, 변종을 선호하는 시대의 흐름에도, 무릇 기본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커피의 변종메뉴인 비엔나커피는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내 입맛도 변종메뉴를 거부하는 반목과 질시의 상황에 더 깊숙이 빠져들고야 말았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요즘에야 조금씩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미각이 발달해서 그런지, 변종메뉴를 거둬낸 시원始原의 맛을 찾아낼 수 있어선지, 심리적인 자기부정의 과정을 한 차례 거친 다음 외피를 죄다 벗겨내는 탁월한 감각을 쌓았든지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