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2

by 무상

‘이놈의 학교에서는 먼 일을 할 수가 없어.’


학교가 겉돈다며 두 부장 교사가 내 자리 근처에서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보려고 하면 부장회의에서 막히고 꼬인다는 것입니다. 일부 부장교사들이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표하며 가능한 편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긴 혁신학교를 한다고 뛰어들었던 우리도 그랬습니다. 혁신학교 주도 멤버들이었던 우리 3명의 부장들은 학생생활 관련 영역들 포함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영역에서 교장이 임명한 부장교사들과 매번 부딪치며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교직사회에서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교사들이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를 생성,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장 지위만큼 중요한 역할이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는 교사들이 힘을 발휘하고자 할 경우,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관리자들에 의해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경우 부장회의의 중요성이 더해집니다. 따라서 그만큼 부장 인선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 학교처럼 대부분 관리자 위주의 관료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판국에서는 교사들의 바람을 전달하고, 평교사의 의견과 관리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교직사회의 핵심 매개체요,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장이나 교감이 방향을 잘못 잡을지라도 부장들이 제대로 의견을 모으면 충분히 학교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관리자들이 아무리 올바르고 교육적일지라도 평교사들은커녕 부장들이 동조하지 않거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전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만큼 학교 변화와 개혁에 주춧돌처럼 부장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래의 예가 교사 업무에서의 단편적인 예이지만, 평소에도 전반적인 학교 운영에서 나도 놀랄 정도의 교육적 소신을 맘껏 발휘한 부장이기에 언급해 봅니다. 최소한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교사들의, 특히 부장들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의식이 준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정실에서 알려드립니다.>

1. 나이스 통계 지원 시스템을 통한 자료 검증(나이스, 교무업무시스템) 및 제출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2. 담당 선생님들께서는 오늘까지 다시 한번 입력 자료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내일(13일) 검증 자료를 취합하여 교육청에 보고하겠습니다.

4. 고등학교는 매달 7일 보고하게 되어 있으니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000님이 전체 회신 >>

교무부장입니다.

통계 지원 시스템은 그야말로 웃기는 일입니다.

제가 전화로 확인해 보니 교육부의 디지털 지방 교육재정팀의 과장 하나가 안을 내서 시작된 일이고 지금은 담당 과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파견 공무원 하나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이 일과 관련하여 그냥 계시면 됩니다.

혹시 이일과 관련하여 물어보면 알아서 하라고 답하시면 됩니다.

행정실의 000씨가 알아서 보고할 것이고, 필요하면 네이스에서 필요한 정보를 가져갈 것입니다.


행정실의 느닷없는 자료입력 요구에 교사들이 수업에 쫓기며 부랴부랴 대처하고 있는 와중에 교무부장의 단비 같은 메시지가 날라옵니다. 내가 보기에 교장, 교감보다 멋있는 부장입니다. 물론 승진에 관심없는, 능력있는 교사를 교무부장 자리에 앉힌 것 자체는 모처럼 만난 합리적인 교장 덕분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무부장 자리가 승진을 노리는 교사들의 필수코스이기에 교장의 뜻을 거스르는 교무부장은 없습니다. 또한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압력의 시시비비를 교육적으로 판단하여, 선별 시행하도록 교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관리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미 그들은 상급기관에 자타 공인 종속되었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근거한 자율적인 판단 및 실천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감, 교장의 승진을 교육청이 좌우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교장도 상급기관에서 불합리한 시책이 내려왔을 때 자유롭게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그냥 상급기관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처럼 교육부나 교육청의 직접적인 통제와 감독을 받는 교장, 교감에게는 언감생심,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소신 있고 능력이 넘치는 교무부장이 해냅니다. 물론 관리자들의 의도와는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승진에 뜻을 두고 있지 않기에, 그리고 교무부장으로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당당히 일개 부장교사가 관리자들에 반대하고, 교육부의 업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교육적 소신이 없거나, 능력 없이 승진에 급급한 부장이나 관리자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 처리를 보여줌으로써 교사들의 시간 및 에너지를 아껴줍니다. 물론 교무부장의 일처리에 아무런 뒤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업무와 관련하여 담당부장들이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들어 교사들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하여 바라는 것들 중 하나가 서류 업무경감입니다. 하지만 제대로된 관리자나 부장의 역할이 없어 학교현장은 기존 낡은 업무들, 서류들을 대체한다고 새로운 지시들, 새로운 업무들이 생겨나지만 기존의 것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서류들을 더해야하니 업무가 자꾸 쌓이는 꼴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잡다한 업무들을 선별하고, 없애기 위해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부장들이 과감히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서류에 집착하는 철저한 책임감으로 의미없는 서류를 없애는 것 조차 허전해하는 부장들도 있어 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서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우리 교사들의 현실은 뒤에가서 더 자세히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교 조직에서도 교장, 교감을 뒷받침하는 부장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때 학교가, 교사들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특히 교직사회에서는 2등의 위치인 부장 역할을 제대로 해주질 못하고 1등만을 추구할 때 학교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단위 학교에서 관리자들이 승진을 목표로 하는 교사들을 부장으로 임명하고, 그렇게 임명된 부장들이 승진 점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관리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행태만으로 최선을 다할 때 그 학교의 교사와 아이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오직 교감, 교장이 되기 위해, 그리고 교장, 교감에게 맹목적적 충성으로 매진할 때 바로 이들이 학교 현장의 변화와 개혁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단위 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학교자치 및 민주적 학교 운영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이고 교육적 소신으로 무장한 교사들, 특히 중추 역할을 하는 부장들이 그 소임을 다하고 뒷받침하고 있을 때 가능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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