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피오르 옆에서의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피오르를 바라보며 잠들고, 다시 피오르를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는 일상을 그려본다. 평범한 일상에 노르웨이의 산과 바다, 산과 강이 가까이 있는 삶은 여느 곳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마치 디즈니 겨울왕국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날은 스타방에르 도시에서 출발하여 베르겐에서 시간을 보낸 뒤 플롬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인 Låtefoss 폭포였다. 유럽 고속도로 바로 옆에서 쌍둥이 폭포는 165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데 크기와 힘찬 물줄기에 압도되었다. 유량이 많을 때에는 그 높은 곳부터 쏟아져 내려 도로까지 물이 넘치는 장관이 된다고 한다. 아직은 5월 초입으로 폭포의 물줄기는 힘차지만 넘치지는 않았다.
라테포센 폭포 Låtefossen Waterfall
이 거대한 폭포를 지나서, 베르겐으로 향했다. 노란 들꽃이 만발한 산 아랫길을 지나서, 산을 따라 오르는 길을 달리는데 점차 눈이 남아있는 곳들이 있었다. 5월의 북유럽에서는 눈이 아직 있을 수 있다니! 눈 덮인 산을 이 시기에 만난 처음이라 마치 첫눈 맞는 아이처럼 신이 났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감탄하던 순간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산 정상 근처에서 길에 차단막이 내려와 통행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도 아니고, 5월에 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니.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베르겐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베르겐은 중세 최대 무역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도시라고 한다.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고 다채로운 색상의 박공 지붕들이 인상적인 구항구와 어시장, 한자동맹의 중심지인 중세건축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음악가 그리그의 생가와 실제로 작곡하던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당장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결국 우리는 원래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서 바로 최종 목적지인 플롬으로 향했다. 산을 넘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돌아가는 길에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했다. 긴 시간 차를 타고 달리며 눈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돌아가는 길은 멀고 길고 피곤했지만 결국 우리는 플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플롬은 에울란피오르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피오르를 오르는 관광 산악열차가 유명하지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피오르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가 묵은 곳은 피오르의 끝자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작은 집이었다. 피오르는, 산에 둘러싸인 바다의 모습은 마치 스위스의 작은 마을처럼 고요하고 잔잔했다. 디즈니의 겨울왕국이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우리는 마치 그 세계의 한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피오르를 마주하며 저녁식사를 하고, 피오르를 따라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도 눈으로 인해 만만치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눈덮인 산길을 달려서 롬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Otta강을 따라 자리한 캠핑장에서 머물렀다. 이 캠핑장은 1990년부터 운영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전통 노르웨이식 통나무집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를 따라 캠핑장 내 목공작업소에서 통나무집과 가구들을 제작한다고 한다.
덧붙여 예약방식도 매우 구식이었다. 200채가 넘는 숙소를 운영하면서도 실시간 예약 시스템이 없었다. 이메일로 연락하여 수기로 예약문의를 해야 하며, 예약 확정 회신을 받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캠핑장 옆으로 흐르는 강은 세차게 흐르며 마치 연어가 거슬러 올라갈 것 같았다. 그 옆으로 연어 사냥을 나온 곰이 절로 떠올랐다. 이 강물을 이용한 수영장도 있었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아직 추운 날씨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번 노르웨이 여행 중 유일하게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피오르 바다보다 거센 강을 바라보며 오늘도 노르웨이 맥주를 마셨다. 마치 우리의 일상의 배경에 당연스럽게 자리잡은 듯한 강을 바라보면서. 긴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노르웨이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