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없는 감옥. 지금 나는 감옥 안에서 독립운동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라는 사람이 이 감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뿐이다.
모든 나의 인관관계에서 시작된 내 일련의 과정들을 말이다.
“아니 힘들게 취업 했으면서 이직을 왜 하겠대?”
“갓생호소인이야?”
"지금이야 젊어서 그러지 자주 이직하는 것도 안 좋아"
“그냥 육아휴직 받고 천천히 살지… 독하다, 진짜.”
맞다.
3년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3년이면 이제 회사에 적응을 하고 내 부서가 어떤건지 어느 팀의 김우기 하면 모르는 사람 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많았다.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도 있었다.
"우기야 우리 결혼하자. 미룰 이유도 없고 나는 빨리 너랑 같이 살고 싶어"
그의 말이 갓생호소인인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sns에서 오전 5시에 운동을 하고 회사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퇴근 후에는 영어회화나 제2외국어를 하는 그런 모습이,
갖고 싶었다.
꿀꺽.
"미안해. 나 이직하려고. 우린...여기서 그만하자."
5년 사귄 남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줄 알았다. 그 선택을 하려고 하자 목구멍에 콱하고 가시가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컥컥되는 나의 눈에는 전업주부인 엄마가 보였다.
아, 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안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면서, 조금은 숨 고르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평범은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내가 살아 숨 쉬는 방식안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이 말리는 상황에서도 대출을 해서 자취집을 구했다. 목구멍에서 가시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해방감. 숨을 자유롭게 들이킬 수 있는 이 호흡이 행복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의 여정의 시작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마케팅부서로 입사한 김우기입니다!!”
“아 어서와요. 소문이 자자해요. 굉장한 인재가 왔다고.”
그때는 몰랐다. 나의 꼬리표가 “경력직 주제” 가 될 줄은.
모든 잡일을 시킬 때마다 어머, 이런거 시켜도 되나?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말하면서 모든 잡다한 일들을 나에게 주었다.
어머, 시켜도 되나? 의 말과 다르게 웃으면서 메일로 파일이 우수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조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 나에게 3개월은 숨만 쉬었는데 끝이 나있었다.
매일 점심에는 새로운 사람들관의 점식 약속으로 꽉 찼고 나중에는 그 점심약속이 나의 인맥성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세상에는 피라미드가 존재하지만 회사에서는 견고하고 단단한 피라미드가 존재했다. 임원들의 점심약속을 잡지 못하면 그것 또한 막내의 역량인 것을. 하루하루 일과의 싸움에서도 지고 부서의 막내에서도 지고 말았다.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적응하거나 버티는건 sns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마다 갓생을 외치곤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증명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3개월에서 6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부서에서의 이질감이 조금은 덜 이질감으로 남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음료를 시키지도 못하는 의견 없습니다!를 말하지만 그렇게 6개월을 버텼더니 나름의 여유도 생겼다.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 선 나는 나름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 이제 좀 사회인같다."
그 말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월급은 내가 만져본 돈 중 가장 많았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그 돈으로 친구들과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났고, 숙소를 고를 때 더는 최저가를 보지 않아도 됐다.
‘성공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금세 가까워졌다.
전시회 동호회, 등산 동호회, 와인 모임—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지만, 매주가 반짝였고 그 안에 내가 있었다.
부서별로 좋은 공간에서 회식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어진 내 모습도 융화됐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오만함을 느꼈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급이라는 것을 나누게 됐었을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그리고 회사엔 영업부서가 많았고 나는 그들과 어울릴 접점이 없었다. 마케팅부서와 영업부서가 얼마나 접점이 있는가.
“좀 적응되셨어요?”
“어...네?”
“이거 먹고 힘내세요.”
나에게 줬던 과자와 젤리들. 탕비실에 없는 자신의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했던 그 간식.
마케팅 팀.사람들이 ‘제일 바쁘고, 제일 멋있는 팀’이라 불렀던 곳.가끔은 나 자신이 너무 멋져 보여서 웃음이 났다. 부서 내 괴롭힘도 나아졌겠다. 이제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