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선이요

by 혀늬

“몇 살이에요? 신입으로 들어온 건가요?”

“마케팅부 김우기입니다.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그와는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가까워졌다.


“오늘 끝나고 뭐해요?”


잘생긴 얼굴. 나이가 좀 있었지만 어떤 외모에도 지지 않는 훈훈하고 시원한 외모. 5년을 만난 남자친구랑은 정반대의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위험하고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목구멍에서 얼굴로 점점 피어올라갔다.


“고기 먹을래요?”


성인 남녀가 퇴근하고, 고깃집에서, 술도 없이 만나는 상황에서 아무일도 없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술 한 방울 없이도 우리는 긴 시간을 같이 있었다. 회사의 험담을 하고, 팀장 욕을 하면서.


선을 넘을 듯, 넘지 않는 그 거리감으로.


“데려다줄게.”

“…술 마실래?”


화려한 회식, 화려한 얼굴,
술기운 없이도 우리는 어느새 “사내”에서 만나
“집”까지 데려다주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돈도 벌었고 연애도 시작했다.

아, 적응도 하고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나를 탐탁치 않아하는 사람들은 회의때마다 나에게 일을 던져주지 못해 안달이었고 새로운 인턴도 들어오게 되었다. 잘생긴 남자인턴이 들어오면서 팀장님의 입꼬리 시소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고 둘만의 커피타임이 자주 포착됐다. 대학교 4학년의 남자인턴과 87년생의 팀장님의 어울림은 그 누구도 위화감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렇게 나는 이 회사의 이상함에 점점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김혜민.


우리팀의 깜찍발랄하고 업무실수가 잦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마케팅 부서의 공주님. 다행인지 공주님의 눈에 들어 시녀가 된 지도 1년이 됐을까. 이제는 그녀가 고객사에서 받은 케이크를 꺼내면서,


"힝 포크"


라고 하면 나는 벌떡 일어나 포크를 가져다주는 그런 마케팅팀 시녀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팀장은 김혜민 모르게 나를 괴롭혔지만 김혜민이 밤 늦게까지 야근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내 일을 우리부서 임원에게 말해주곤 했다.


"우리 애기한테만 너무 일이 많은 것 같애요! 속상해~!"


그렇게 일이 점점 줄고 야근의 빈도가 줄어갈 때, 평소 김혜민과 같이 어울리는 또 하나의 시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요주인물. 대표이사 직속비서. 이서희. 외국에서 살다 왔을 법한 화려한 이목구비에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비서"라는 특성으로 남직원들과 임원들이 끊이질 않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과거의 경력이 있는 나는 배척당했지만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 비서를 했던 그녀는 이미 이 회사의 안주인이었다. 사장이 없다면 그녀의 말이 곧 법이고 회사였다.


“이번에 우기님도 같이 저녁식사 같이 해요.”


김혜민과 이서희가 함께하는 저녁식사라니. 그저 여자들의 비밀얘기라고 생각했다. 장소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가봐도 우리의 월급으로 절대 올 수 없는 높고 유명한 호텔의 라운지바였다.


"여기 너무 비싼거 아니예요...?"

"어머 우기씨 쫄았어? 괜찮아 괜찮아. 우기씨한테 내라고 안해"


이서희의 손이 닿을때마다 달콤하면서도 머리아픈 향수냄새가 올라왔다. 순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역하다. 도망치고 싶다.


"여기 꽃들이 있네~"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와 회사의 2번째로 권력자인 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쎄하게 생긴 뱀같은 눈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다정하다, 사람좋다, 하는 그사람의 평판이 나를 보는 저 눈으로 모든걸 다 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처음보는 얼굴이 있네."

"....안녕하세요...처음 뵙겠습니다"

"이 회사는 얼굴보고 뽑나봐요. 하나같이 다 예쁘네"

"그러니깐 우기씨, 이렇게 사석에서 보는거 처음이죠? 영광이에요"

“네...제가 더 영광입니다"

"아, 이쪽은 내 오랜 지인이고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이야. 친해지면 좋은 점이 많다구~"


부서끼리 해서 회식을 하는게 아니라 따로 이렇게 호텔 라운지바에서 회식을 하는 경우가 뭐가 있을까.

그리고 이 둘은 왜이렇게 숨쉬듯이 자연스러운거지. 우리 회사의 고객사가 언제부터 성형외과가 된거지


“좋아하는 와인 따로 있어요?”


삐용삐용 머릿속에 적색경보가 울려퍼졌다.

나를 파악하는 저 늙은이들의 눈이 마치 썩은 생선의 눈같았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곳은 위험해.


“꽃구경 안해도 되겠어. 여기가 꽃밭이네.”

“하하...저희야말로 상무님이랑 같이 와서 좋아요.”

“우기님은 고기랑 생선중에 뭐 먹을래?

“아 저는...생선이요”

“어머, 우기씨 이럴때는 고기를 먹어야지”


고급진 장소와 고급지지 못한 멤버 조합.

그녀들이 고른 품질좋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먹음직스러운 고기보다 나는 죽어있는 물고기가 허연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 섬뜩함에 매료되었다.


“아 우기님 다이어트 하는구나?”


저 님이 거슬렸다. 사회 밖에서 비밀스럽게 만나는 주제 마치 사회안에서 존중하는 듯이 쓰는 저 님이. 거슬렸다.


“몇 살이에요? 신입으로 들어온 건가?”

“마케팅부 김우기입니다. 나이는... 스물일곱입니다.”

“우와, 여기서 제일 어리네. 나랑 우기씨랑 20살 차이밖에 안나요.”


그 말을 던진 사람은 껄껄껄 웃었다. 껄껄껄 웃는 그 틈에 누군가 스테이크를 잘랐다. 지글지글 기름 튀는 고기가 탁자 위로 하나둘씩 놓였다.

그리고 내 앞에는 유일하게 생선이 놓였다.
하얗게 드러난 속살. 뼈를 발라낸 정갈한 시체.
그 생선은 마치 나 자신처럼 보였다.
어디를 건드려도 가시가 박히는 그런 모습.

그리고 시작됐다.
원장님이 사람의 얼굴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듯 평가하는 시간.


“서희씨 이번에 입술필러가 잘됐네”

“정말요? 다른 건요?”

“음, 솔직하게 말해도 상처 안 받을 수 있어?”

“에이~ 조금은 포장해주셔야죠.”


우리는 다 포장된 존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팔릴 준비가 된 상태였다.


“원장님! 저는요? 저 눈 했어요~”

“혜민 씨는 코만 살짝 높이면 진짜 완벽하겠다~”

나는 생선을 한입 먹었다. 부드러운 속살과는 다르게
가시는 깔끔하게 발라져 있었고, 조그만 가시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기님은요?”

“...네?”

“고친곳 없어? 내가 무료로 견적 내줄게 요즘 이런 기회 진짜 없어요~”

“우기 씨는 성형이 뭐예요, 시술도 안 해봤겠네~?”

“아, 자연미인이구나? 부럽다아~”

“우기씨는 성형이 뭐예요- 시술도 안 해봤을걸요.”

“아 자연미인이었어?”


부럽다는 말이 그리도 질척한 기름기를 가지고 있었나.
와인잔이 다시 찰랑거리고, 그 속엔 말갛게 씻긴 얼굴들이 웃고 있었다.


“자연미인 좋지~”


내가 아무런 첨가물이 첨가되지 않은 자연산 물고기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려진 생선처럼 하얗고,
까발려진 감정처럼 연약하고,
말 없이 넘기는 고통처럼 불쾌했다.


나는 웃었다. 입에 들어간 생선은 삼켜지지 않았고, 목구멍에선 생선 가시가 자라나는 것처럼 아파왔다. 마치 그 순간의 불쾌감과 치욕이, 피처럼 목울대에서 피어오르는 느낌.


울컥, 아까먹은 생선의 갓시가 목에 박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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