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치던 날들

by 혀늬

절망적인 일은 갑자기 휘몰아친다고 했었나. 그 뒤로는 우리 셋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공주님의 가방이 바뀌는 날이면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눈길들이 어느 순간 더럽고 탐색하는 눈길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놓고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할 사람은 없었고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나와 만만하고 가볍게 보기 쉬운 이서희한테만 화살이 돌아왔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데?"

"뭐 몸매는 봐줄 만하네"

"젊음으로 승부하는 거지~"


혼자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날이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시간이 숨 쉬듯 당연해졌다. 재무팀의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던 동갑 친구는 순수하고 눈치 없고 악의 없이 말을 내뱉었다.


"이참에 그 임원 비서로 일하는 건 어때?"

"..... 뭐?"

"응? 아니... 난 너도 그 사람 좋아하는 줄 알았지..."

"... 나랑 30살 차이... 하아... 됐다"

"아니... 나는 그냥..."


나랑 30년이나 차이나는 늙은이에 심지어 와이프와 자식까지 있는 사람들을 두고 나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하는 그 아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구나. 내가 즐겁게 떠들어댔던 소문들이 막상 당사자가 되어보고 나니 말문이 막혀서 수정할 노력도 에너지도 없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아! 나 이번 주말에 남자친구랑 제주도 가기로 했어!"


아, 남자친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조차 감이 안 잡혔다. 그렇게 즐겁게 떠들고 다녔으면서 여자친구가 소문의 주인공이 됐으니 연락이 올 법도 했지만 전화 한 통이 없었다.


"김우기 님 상무님이 부르세요."


이서희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호출했다.


똑똑


"네 상무님 부르셨..."


그날이 시작이었다. 상무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 C레벨들이 있는 자리였다는 것을. 그것도 사전에 아무 말 없이 대뜸 통과된 기획안을 꺼내 들었다.


"이거 기획안 담당자 김우기씨지?"

"... 네..."

"일을 이런 식으로 하고도 월급을 그렇게 잘 받았나 봐"

"..."

"우기 씨 정규직 아닌가?"

".... 네..."

"아니 정규직이 이렇게 일하는 게 말이 돼?! 인사팀장, 채용 이따위로 할 거야?!"


정규직으로 들어온 지 1년이나 지났는데 이미 통과된 기획안으로 갑자기 상무방에 불러서 30분을 혼났다.


욱신욱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 거야. 이상무 얼굴 봐서 그러는 줄 알아"

".... 네 죄송합니다.."


공개처형이 끝나고 표정이 하나도 없이 나오는 나를 상무는 서늘하게 죽어있는 생선눈처럼 나를 향했다.

소름 끼치고 서늘한 그 기분에 방을 나오자마자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 자기야... 나 너무 힘들어..."

"우기야 미안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할게"

"잠깐이면 되는데 그것도 힘들어?"


지금만큼은 나를 보호해 줄 남자친구가 필요했는데 거절하는 음성에 나도 모르게 서운함이 앞서갔다.


"그렇게 일이 좋으면 일이랑 연애해!!"

"우기야 그런 게 아니라..!"

"아빠~!! 유준이랑 놀아줘"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몸이 굳어졌다.

콩덕콩덕하는 심장박동수가 심장이 아니라 목에 쿵쿵 울리는 기분이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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