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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한석사 Oct 29. 2024

어린 왕자 in SEOUL(#15 양이 외롭지 않게)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미 길들여진 여우가 있지 않니? 그런데 또 다른 여우가 필요할까?”


여자는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서로가 길들여졌으니, 그 여우가 너에게 가장 특별한 여우겠지. 하지만 만약 새로 여우를 그려주면, 그 여우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여우가 될 거야. 둘이어도 괜찮아?”


어린 왕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게 특별한 여우는 하나뿐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장미가 있지만, 여우는 여우가 없어요. 여우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는 어린 왕자의 말을 듣고 작은 상자를 그려주었다. 어린 왕자는 상자를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요. 양이 한 마리가 더 있으면 둘 다 굶어 죽을 거에요. 풀밭은 양 혼자만의 것이어야 해요.”


여자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여우도 혼자면 외롭고, 양도 혼자면 외롭지 않을까?”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아주 작은 양을 그려주세요.”


여자는 작은 양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 양은 풀을 너무 많이 먹을 거예요. 일주일치 풀을 하루에 다 먹어 버릴걸요.”


그러자 여자는 크게 양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아니, 방금 전의 양보다 더 크잖아요. 그럼 풀을 더 많이 먹겠죠.”


잠시 생각하던 여자는 마지막으로 상자를 그려 보여주었다.


“이 양은 똥냄새가 많이 날 거예요. 함께 살 수는 없어요. 저는 질식해 버릴 거예요.”


여자는 고민 끝에 종이에 아주 작은 점을 찍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거에요! 이 양이라면 풀이 많이 없어도 될 거예요. 이 양도 장미에게 길들여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해?”


“장미는 가끔 화를 내요. 저는 길들여져서 그것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양이 길들여지지 않으면 장미를 먹어버릴지도 몰라요.”


“걱정 마. 이 작은 양도 장미에게 길들여질 거야. 그리고 풀을 조금만 먹고 잘 자랄 거야.”


“안 돼요. 양이 자라면 안 돼요. 이 양은 누나가 키우세요. 풀을 많이 먹지 않으니까요. 키우기 좋을 거예요.”


여자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양을 종이 속에 두고 노트를 덮었다. 어린 왕자는 노트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속삭였다.


“조심해야 해요. 양이 자고 있으니까 깨우면 안 돼요. 풀을 많이 먹어서 이제는 한참 잘 거예요.”


여자는 어린 왕자를 사랑스레 쓰다듬으며, 이번에는 바람떡을 권했다. 어린 왕자가 떡을 한 입 먹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와, 이건 떡볶이 같아요! 하지만 달콤함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입안에 남아 있어요.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아요. 신기해요!”


여자는 어린 왕자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너는 정말 맛 표현을 잘하는구나. 먹방하면 정말 대박 나겠어.”


어린 왕자는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먹방이 뭐에요?”


여자는 스마트폰을 꺼내 먹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화를 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해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방송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 없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하루 종일 들고 다니고, 잘 때도 옆에 두지. 통신망이 잘 되어 있어서 어디에서든지 쓸 수 있거든. 통신망은 정보라는 전기를 전해주는 전파 같은 거야.”


“아, 전기가 뭔지 알아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가르쳐줬어요. 그 사람은 바빠서 길들여지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하루에 1,440번이나 해지는 걸 볼 수 있었어요. 난 해지는 게 너무 좋아요.”


여자는 어린왕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스마트폰이란 것은 거울 같은 것이네요. 장미는 거울을 하루종일 쳐다봐요. 잘 때도 옆에 두고 자요. 항상 거울을 보고 있어요. 하지만 거울보다 스마트폰은 더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거울은 나를 볼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다른 사람만 볼 수 있잖아요.”     


여자는 웃으며 어린왕자에게 말했다.    

  

“아니야 거울하고 비교할 수 없어. 스마트폰도 나를 볼 수 있거든. 밤에는 가로등이 되어주고, 사업가에게는 계산기가 되어 줄 수 있어. 아프리카에서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여우를 담아갈 수 있었을거야.”

     

어린왕자는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아쉬운 듯이 말했다.      


“탐험가에게 스마트폰만 있다면 지리학자가 믿을 수 있겠어요. 지리학자는 탐험가를 믿지 않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스마트폰만 있다면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럼 모든 탐험가는 올바른 탐험가가 될 수 있어요.”     


어린왕자는 크게 기뻐하며 여자에게 말했다.      

     

“일시적인 것들을 영원할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여자는 어린 왕자가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 이야기는 온 세상에 알려져 있었고, 어린 왕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었으니까.


‘정말 이 아이가 그 어린 왕자일 수도 있겠는걸. 그 이야기들이 진짜였던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여자는 어린 왕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아프리카에 갔다 온 적이 있니?”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여우와 친구가 되었고, 아저씨를 만났어요. 그는 비행기 조종사였어요. 우리가 헤어졌을 때 너무 슬펐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계속 지구에 있었니?”


어린 왕자는 빛나는 눈을 들어 대답했다.


“네, 저는 여전히 지구에 있었어요. 여우와 이별한 후에는 꿀벌과 돼지도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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