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 Sep 11. 2024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을 맞춰 사촌 언니가 사는 미국 중부에 있는 마을로 놀러 갔다. 사촌 언니 오빠들은 고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을 와 10년 정도 지내며 공부를 했고 지금은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다. 3명의 사촌 오빠 중 2명의 사촌 오빠도 시간이 맞아 언니가 있는 지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모이기 어려웠던 언니 오빠들을 미국에서 만난다는 게 신기했다. 언니는 공항으로 마중 나와 반겨 주었다. 거의 5년 만에 만나는 거라 너무 기분이 좋았고 할 얘기도 많아 집까지 가는 길 동안 얘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의 미국에서의 세 번째 홈스테이 가족의 집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낼 계획이었고 나도 언니의 미국 홈스테이 가족이 너무 궁금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홈스테이 가족이 정말 좋은 분들이라고 얘기를 많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는 언니가 친구와 같이 사는 집에서 보내고 추수감사절 전날 홈스테이 가족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언니가 사는 동네는 내가 지내는 뉴욕과는 정말 다른 풍경이었다.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큰길과 드문드문 있는 집들 차가 없으면 마트를 갈 수 없는 그런 전형적인 미국이었다. 언니는 언니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직장이 있어 대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간 날은 연휴라 대학교에 학생들이 없었다. 언니는 대학교를 소개해 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다. 대학교의 내부는 마치 <하이스쿨 뮤지컬>에 나오는 미국 대학교를 연상케 하는 넓은 일층 짜리 건물들이었고 식당도 정말 컸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이 정말 좋았는데 마치 작은 궁전처럼 생긴 도서관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연휴 기간이 아니었다면 진짜 미국 대학생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언니가 나온 대학교를 둘러보고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갔다. 미국 식당답게 모든 음식의 양이 많았고 내가 본 미국 영화의 식당과 똑같았다. 소소하게 언니와 오랫동안 못 했던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언니의 미국 홈스테이 집으로 출발했다. 이곳은 또 다른 느낌의 동네였다. 언니가 사는 곳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였고 동화 속에서나 본 적 있는 길을 지나니 인형이 살 것만 같은 집이 나왔다. 노크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내부는 더 동화 속 집 같았다. 뉴욕에서는 신발을 벗고 아파트를 들어갔었다. 하지만 이 집은 정말 미국답게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가도 되는 집이었고 미국 엄마 아빠는 우리를 포옹으로 반겨 주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아이들이 무려 6명이었고 그중 3명은 미국 엄마 아빠가 어릴 적에 입양한 친구들이었다. 이때 나는 입양 가족을 처음 본 것이다. 미국에서 입양은 한국보다는 흔한 일이라 신기한 일도 낯선 일도 아니지만, 한국에서만 쭉 살았던 나에겐 조금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나니 미국 엄마는 이제 추수감사절 음식을 만들자고 했다. 미국스러운 주방에서 모두 모여 피칸 파이와 초콜릿 파이를 만들었다. 복작복작 원래도 식구가 많은데 나와 언니 그리고 사촌 오빠까지 있으니 명절날의 대가족을 보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피칸 파이와 초콜릿 파이를 만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이 집 막내아들인 그리픈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얘기하며 하루를 마쳤다.


추수감사절 당일 미국 엄마와 아빠는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문 앞에도 허수아비와 나뭇가지로 장식하고 주방 식탁을 가을 느낌으로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구이를 먹는데 이날 칠면조 구이를 처음 봤다. 칠면조 구이는 그레이비 소스와 라즈베리 소스를 같이 곁들여 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매시포테이토,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 양배추 샐러드 등등 정말 많은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물론 이 모든 음식은 가족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 미국 엄마 아빠는 각자 이번 한 해 감사했던 것을 한 가지씩 말하고 기도하고 밥을 먹자고 했다.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한 해 동안 감사했던 것들을 말하고 미국 엄마가 대표로 기도하고 추수감사절의 만찬을 즐겼다. 정말 미국스러운 분위기의 추수감사절 하루였다.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미국 엄마 아빠는 정말 나에게 가족처럼 잘해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유독 이런 감정을 많이 느낀 것 같다. 아이들도 나에게 정말 친한 친구처럼 잘해주었고 분명 우린 어제 만난 사이인데도 마치 몇 년 알고 지낸 사람 같았다. 


사촌 언니는 미국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가 미국에 와서 미국 엄마의 도움 정말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엄마와 사촌 언니는 언니 동생과 같은 정말 친한 사이였다.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정말 가족처럼 말이다. 나도 미국 엄마가 언니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서 진짜 가족처럼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미국 엄마는 참 많은 일을 겪으며 힘들게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나누고 도와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미국 엄마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내가 그곳에서 지냈던 3일간 이 사람은 정말 나누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6일간 이곳에 지내면서 느꼈던 신비로운 느낌은 정말 휴식을 취했다는 느낌이다. 물론 휴식은 어디서든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쉬었다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엔 모든 게 느리게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알게 되었다. 느리게 가는 게 아니라 이게 자연스러운 속도라는 것을. 한국도 뉴욕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나라이며 도시이다. 하지만 내가 지낸 6일간의 그곳은 빠르게 바쁘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아닌 자신의 속도 대로 가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과 환경이었다. 


진정으로 휴식을 취한 느낌이었고 뉴욕에 돌아와서 내 속도라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나는 경쟁하며 치열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경쟁이었느냐는 것이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경쟁을 하며 살아온 나는 내 속도 보다도 더 빠르게 살아가려 애를 쓰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늘 긴장되어 있었고 신경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속도는 어떤지도 나를 어떻게 허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나에게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의 6일간의 시간은 정말 큰 영향을 주었다.  


나의 속도를 찾게 해 준 6일의 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 속도를 찾아가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해왔던 것들은 어떤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NOTE]

나는 보통보다도 조금 더 느린 사람이다. 

하지만 느린 만큼 깊이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 날 사촌 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말이라며 일기장에 쓰여 있던 글을 보여주었다.     


“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지금의 삶을 사랑할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 것


-Bob Marley-     


나의 느린 삶의 속도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남들의 속도에 맞추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전 16화 L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