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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린 Aug 29. 2024

호주 어린이집 생활

에피소드 - 단 하나의 한국아이 & 비 오는 날

단 하나의 한국 아이


아이가 한국말을 배우면서 크길 바라는 마음에 집에서는 한국말만 사용했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영어도 배웠지만 2-3살 시기에 우리 아이는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더 먼저 튀어나오곤 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한국인 아이가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최초의 유일한 단 하나, 한국인인 우리 아이를 위해 선생님들께서 세심한 배려를 해주셨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위해 필요한 한국말 단어들을 나에게 물어보셨고,  내가 알려드린 데로 배우셔서 단어들을 적고 교실벽에 붙다. 교실에 오는 선생님들이 모두 배울 수 있도록.



나는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단체생활에 더욱 익숙하다.

'예외란 없다'

'단체생활에 적응을 하려면 한 사람이 바뀌면 된다'

'혼자 튀지 말아라'

학교든 학원이든 가정이나 공공장소에서 이런 말들을

자주 듣고 자랐다.


단체로 생활하는 어린이 집에서 단 하나의 한국인인 우리 아이를 위한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해주신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고,

호주에서 아이를 계속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비 오는 날

어느 비 오는 날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간 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비가 와서 아이들과 밖에 나가 감각놀이를 했다고 하셨다.

둘러보니 홀딱 젖은 아이가 우리 아이뿐만이 아이였다.


아이를 보자마자 반가운 건 둘째치고

'아차. 어떻게 차에 태워 집을 가나'

'선생님들은 어쩌자고 부모들에게 묻지도 않고 애들을 빗속에 뛰놀게 했을까'

'감기에 들면 어쩌나'

걱정에 걱정이 쌓여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는 내 속도 모르고 집에 가기 싫다며 빗속에서 깔깔 웃고 방방 뛰며 뛰어다녔다.

빗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인지 가슴이 몽글거렸다. 나모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어릴 적 내가 자랄 땐 한국에서 산성비라고 해서

비를 맞고 다니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혹시라도 옷이 젖어서 집에 오는 날이면

'바닥 젖는다' '빨랫감을 왜 만들어오냐' 등

엄마의 따가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언제 저렇게 오는 비를 다 맞으며

아무 걱정 없이 뛰어다녀 본 날이 있었을까.

아이가 내 대신 그 해방감을 느껴 주는 것 같았다.


그래. 옷이야 빨면 되고. 차는 마르겠지.

네가 그렇게 즐겁다면야.

이왕 젖은 거 실컷 놀라고 하고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픽업 오는 호주 엄마, 아빠들을 지켜봤다.

아이 옷이 다 젖었다며 얼굴 찌푸리는

부모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아이가 덕분에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며

빗속에 아이들을 뛰놀게 한 선생님께 감사했다.


이때쯤부터였다.

내 생각은 바뀌었다.

아이가 옷이 젖거나 더럽혀지는 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조심하지 않고 실컷 뛰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가 유치원, 학교에 갈 때 나는 이렇게 인사한다.

"Have fun!" 재밌게 놀고 와~


아이가 집에 돌아와

옷이 더려워 졌다고,

신발이 더러워졌다고,

투덜대면 나는 말한다.

"As long as you had fun, that’s all that matters"

네가 재밌었으면 됐어.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빨래가 많이 쌓이고

신발이 망가지고

집이 더러워지면 어때

우리 아이가 즐거운 하루를 보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어른이 되어서 그 재밌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니,

아이가 꼭 그 재미난 시간을 충만히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금방 이 날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행복한 마음은 오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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