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준비, 등원준비로 바쁜 아침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디 그렇듯. 일찍 일어나 아이 아침식사 준비하고, 아이 깨워서 세수시키고 아이가 아침 먹는 동안 나도 신랑도 출근준비를 한다. 아이는 우리가 옆에서 뛰는지 날아다니는지 관심 없다는 듯 아주 평안한 상태로 나무늘보 보다 더 느리게 사과를 입에 넣었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내 인내심이 한계를 다다르고 터져 나오려는데 그걸 꾹 누르고 외출 전 마지막 집점검 및 간단한 정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아이가 토스트를 한입도 안 먹은 게 보였다. 아이에게 도시락 통에 넣어서 유치원 가는 차 안에서 먹자고 달래서 아이를 얼른 차에 태웠다.
차에 시동을 걸고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노래를 틀자마자 나는 회사업무 생각에 사로잡혔다. 출산 후 취직한 회사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 모든 신경이 회사에 쏠렸던 시기였다. 어느덧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했고, 머릿속은 회사업무로 가득한 채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려 들어 안았다. 아이의 등원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께 아이를 안겨야 한다.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교실 유리창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먼저 스캔을 한 뒤, 들어가자마자 선생님께 아이를 안겨주고 급하게 인사를 나눈 뒤 허겁지겁 유치원을 나섰다. 보통은 아이의 특별사항 등을 선생님께 전달하고 나오는데 그날은 모든 내 정신은 회사에 쏠려있던 탓에 허겁지겁 나와버렸다.
회사에 가서 아침 중에 마쳐야 하는 업무가 있는데.. 내가 어제 처리한 업무가 제대된 건가. 혹시 실수는 없었을까. 수 만 가지의 생각을 하며 회사에 도착했다. 가방을 챙기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아침 토스트가 들어있는 도시락 통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아침에 아이가 먹을 토스트를 도시락 통에 챙기고는 아이에게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본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아이는 아침도 챙겨주지 않고 보낸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고프다고 달라고 말도 안 하고, 떼도 안 쓰고 조용히 어린이집에서 내린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가 아침을 안 먹었으니 챙겨달라고 선생님께 말이라도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웃는 얼굴로 손 흔들고 가버린 엄마 뒷모습만 봤을 아이가 계속 떠올랐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흘렀다. 아이가 있는 유치원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겨 회사에 들어섰다.
리셉션에서 일하는 제니를 보자마자 밝게 보이고 싶어서 굿모닝! 을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15년 워킹맘 내공 제니는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제니의 물음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제니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나를 안아줬다. 제니랑 이야기하는 사이 아이 셋, 워킹 싱글맘 20년 차 쉐런이 들어왔다. 내 얘기를 듣더니 그저 다 안다는 듯 끄덕였다. 쉐런은 나를 웃겨주려는 듯 자기 딸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 손을 잡고 소파에서 뛰다가 애기 팔이 빠졌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웃으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애가 아픈데 웃기만 하는 이런 나쁜 엄마도 있으니, 넌 널 용서해도 된다고 했다.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워킹맘의 삶이 이런 거구나 싶어 지면서 마믕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워킹맘 경력이 이제 10년이 넘은 지금. 나는 그 일을 되돌아보면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첫애 키우며 들어간 워킹맘 첫 해시절,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함을 가지고 살았는지. 울다 잠이 들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수십 번 스스로에게 묻던 시절. 10년이 지난 지금도 물론 아이들에게 매일 미안함의 무게를 느끼고 산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미안함의 무게를 들고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낼 만큼 내 마음의 힘이 늘어난 것일 뿐.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엄마들에게,
"힘내세요. 버티세요. 다 지나갈 거예요. 당신은 생각보다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