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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인생의깊이를 음미할 수 있다

힐링미 암환우 수기

by 힐링미
ⓒunsplash


큰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다



주근깨투성이 얼굴, 어릴 적 영화 주인공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못생긴...

경상도 사투리를 잘 쓰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어릴 적 동네 아이를 모아 놓고 학교 놀이를 즐겨합니다.


나의 꿈은 선생님이라고, 스스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꿈과 다르게 공부를 잘하지 못해, 사범대는 못 가고 일반 대학교에 나와서 회사 인사팀에 취직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남보다 일찍 출근해 일하고, 남보다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1997년 당시, 보너스만 850% 주는 회사에 다니며 충분히 누리며 살 여유가 되는데도 행사하는 마트 전단만 찾아다녔습니다. 900원, 1,000원 짜리 물건들만 구매하며 그렇게도 알뜰히 살았습니다.


동료들은 해외여행이다, 풀빌라다, 하며 즐기며 사는데도요.

무엇이 그 소녀의 마음에 그토록 여유를 잃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휴가도 반납하고 인사 고과 잘 받아 성과급 욕심만 내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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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2000년 당시 주위에서 "이번 휴가 서울 에버랜드 다녀왔어요. 63빌딩이 너무 좋더라." 소리에

"나도 꼭 서울로 여행을 갈 거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친구가 서울 여행 중 길거리에서 파는 오징어를 보고

“메메 꾸봐 주이소~ (덜 익어 빠짝 익혀 달라는 말)" 하니 못 알아듣더라는 소리에

사투리 쓰면 시선 집중될 테니 서울말 연습해서 꼭 서울 여행 가야지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러던 경상도 소녀가 10대, 20대를 거쳐 중년 여성이 된 2023년,

드디어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 여행을 합니다.

건강 검진 신체검사에 흑이 보였고 그 혹은 선생님의 꿈을 1년 만에 무너뜨렸습니다.

기대에 찬 서울 여행은 암 치료를 위한 서울 방문이었습니다.


아등바등 바보처럼 휴가도 없이 힘들게 산 저 자신이 너무나도 한탄스러웠고

에버랜드 꼭 가겠다는 결심이...

신나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차디 찬 병실, 예쁜 옷 입고 나들이 가는 게 아닌 환자복을 입게 된 현실이라니...

내가 이렇게 서울에 오게 되다니 너무나도 눈물이 났습니다.


수술 준비로 서울 상경할 당시 한강 다리를 건널 때에는 수술 걱정도 잠시 잊고

촌사람처럼 창가에 붙어 "와~ 서울이다. 한강이다! 티비에서 보던 한강!" 하며

드디어 한강을 봤다면서 촌스럽게 지인들에서 사진 찍어 보냅니다.

그렇게 저의 첫 번째 서울 여행은 수술과 항암으로 시작되었고

재발하여 또다시 수술, 항암의 반복, 거기에 방사선 치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방사선치료는 한 달 동안 매일매일 가야 하는지라, 지방 사람인 저는 집에서 다닐 수 없어서

서울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 한 달 동안 있었습니다.


아끼며 살던 시절을 후회하며

"돈 쌓아두면 뭐 해. 나 있고 돈 있는 거지."하며

서울 변두리 저렴한 곳이 아닌 비싼 시내 중심에 있는 요양병원을 잡았습니다.

요양병원 앞 비싼 건물들, 요양병원 옥상에서 본 서울의 별은 너무나도 예뻤습니다.




ⓒunsplash

앞 건물 거실 너머로 보인 모습

거실 탁자에 앉아 담소 나누는 부부

아이들과 안고 장난치는 아빠

다 너무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생 별거 없네~ 서울 사람들이라고 지방 사람들과 다르지 않네."

행복은 온 가족 퇴근 후 전부 모여 하하호호 웃으며 지내는 거구나.


우리집 거실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저는 없는, 남편과 아이 단둘이서... 밥 차려줄 엄마, 아내가 없어 별 반찬 없이 웃음도 없이,

아일랜드 식탁에 둘이 같은 방향을 보여 우울하게 식사할 뒷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반드시 내가 암을 이겨내서 행복한 거실 모습 만들겠다 다짐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끝으로 지방 집으로 내려와 항암으로 다 빠진 머리도 자라 가발 벗고 당당히 다닐 수 있는 나로 변했습니다.



'투병은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기회,
큰 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다.'

는 명언처럼 다시 받은 인생, 내 삶의 모양을 바꿔 반드시 행복하게 살겠다. 내 아이 대학교 졸업식 때 꼭 옆에 함께 있겠다 오늘도 다짐합니다.


매사에 감사하며,

제가 계획한 첫 서울 여행은 병원에서 환자복 입고 시작했지만 정말 이번에는 환자복이 아닌 예쁜 옷 입고 선글라스에 화려한 모자 쓰고, 진짜로 고생한 나만을 위한, 나에게로의 서울 여행을 준비 중입니다.




ⓒunsplash

참 그리고 저 이제는 한강 다리 지날 때 "우와~!" 하지 않아요.

반 서울 사람이 다 된 저.

한강 다리 지날 때도 우아하게 서울 사람처럼 앉아 있습니다.

(대신 절대 말은 하지 않아요. 입 떼는 순간 사투리가 심해서)









*'김*진'님의 암 환우 수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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