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이 설란 Oct 25. 2024

그래서 사피엔스는 행복한가

역사학자가 던지는 행복에 대한 질문



역사학자들은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연구한다. 문화사, 미술사, 건축사, 철학사 등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거꾸로 개별 학문을 연구할 때도 역사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의류학과에서조차도 식의 변천사를 탐구하기 위해 동양사, 서양사를 덩달아 배운다.
역사의 흐름과 시대상알아야 당시 의복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화가의 작품이나 각종 유물을 통해 중세 시기 서양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해골 모양의 장신구가 유행했으며, 프랑스혁명 후에는 단두대 형상화한 목걸이가 유행다는 것을 배운다.


비슷한 맥락으로 행복 역시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도 어쩌면 시대의 산물일지 모른다. 인간은 모두 그를 둘러싼 역사적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행복을 논하는 역사학자


<사피엔스>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집필한 거시적 관점의 역사적 통찰들을 담은 책이다.

부제가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인 것처럼 한 권의 책에 그야말로 방대한 양의 인간 역사가 담겨 있다.


2011년에 <사피엔스>가 출간된 후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역사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책 또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 이외의 여러 학문을 다각도로 고찰하여 역사와 접목시키고,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풀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개별 학문을 깊게 연구하는 학자들이 보기에 논리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논란, 여러 학설을 짜깁기했기에 전혀 새로운 통찰이 없다는 비판 또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


그럼에도 <사피엔스>는 일단 흥미롭고, 쉽게 읽히며,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바쁜 현대인이 역사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우리 이 책을 인류 역사의 굵직한 흐름을 훑어보기 위한 교양서적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접근하되,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서적을 참고 수 있다.


<사피엔스>의  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에는 별히 인류의 행복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저자는 이 장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고찰했는지 요약해고자 한다.



행복에 대한 질문


우리가 체감하지는 못하지만 오늘날의 인류는 지난 500여 년 동안 과학혁명, 산업혁명 덕분에 전대미문의 부를 누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이 역사학자는 갑자기 이렇게 질문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부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을 주었는가?


그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발전과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무거운 질문을 또 한 번 던지면서, 일련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것이 사람이 역사를 향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 말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며, 행복의 장기적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류가 당연히 과거보다 행복해졌다는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수렵채집인들은 냉방도, 난방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세탁기나 세제가 없던 시절엔 그 많은 빨랫감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와 같은 생각을 함과 동시에 지금은 세상 참 좋아졌다고, 정말 다행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진보적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일련의 진보 과정에서 혜택을 본 개인이 있는 반면 더 힘들어진 개인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농업 혁명에서 농경을 배웠을 때, 집단으로서 이들이 환경을 바꾸는 힘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먹는 음식은 영양가도 더 적었고 근근이 버틸 양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질병과 착취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듯 다양한 관점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인류의 발명의 어두운 측면만 보는 것 또한 고집이라고 말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단적인 예로 현대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어린이 사망률이 극적으로 줄어든 것은 분명 인류의 행복에 엄청난 기여를 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듯 누구의 입장에서 행복을 고려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며,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하기 위해서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 말한다. 아래 인용된 부분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동물의 행복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동물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 컨베이어 벨트의 병아리의 희생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외부적 요인과 주관적 기대의 관계


이어서 그는 본격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인과 주관적 만족도에 대 고찰한다.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외부적 요인에는 부, 건강 등 물질적 인과 사회·윤리·정신적 요인을 아우르는 비물질적 요인이 존재한다.


그가 여러 연구결과를 살펴보고 내린 소결은 가족과 공동체 등의 비물질적 요인이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요인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앞선 건강, 부, 공동체 등의 객관적 조건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지 않고 인간의 주관적 기대 역시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간단히 말해 기대가 적으면 행복하고 기대가 많으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즉, 처한 상황이나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는 지도 행복의 정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비교의 대상이 전 세계가 되어버린 지금, 인간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항이 되어버렸다. 만족과 관련해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며 행복과 점점 멀어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꼬집는다.


만일 행복이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 ― 대중 매체와 광고 산업 ― 은 지구의 만족 저장고를 생각지 않게 고갈시키는 중일 수도 있다.



행복 유전자와 행복 호르몬


저자는 행복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도 소개한다. 접근법은 내부적 요인으로 볼 수 있는 화학적, 유전적 요인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고 본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행복은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그는 이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런 예시를 든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사람은 실제로 돈이나 연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이야기꾼 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여러 재미있는 비유에 실소를 터뜨리며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역사는 행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각자의 세로토닌 분비 수준에 의해 행복이 결정되는데 프랑스혁명이 도대체 인류 행복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유전자 복권에서 '즐거운 생화학'에 당첨된 사람은 혁명 전이나 후나 여전히 행복했고, '우울한 생화학'을 가진 사람은 과거 루이 16세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신랄한 불평을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에게 던졌다.



삶의 가치는 망상일 뿐일까


행복이 유전과 호르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우리 삶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을 판단할 때 우리의 가치체계가 어떠한지도 중요하다. 실제로도 우리는 각자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헌신하고, 비록 고통스러울 때가 있더라도 그것을 견뎌가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어떤 숭고한 가치, 신념 등을 통해서도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며 행복에 대한 논의가 거의 마무리되어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대의 과학자는 지식의 증가에서, 병사는 고향을 지키는 것에서, 기업가는 새로 회사를 세우는 데서 의미를 발견하지만 이들이 찾는 의미가 중세시대 사람들이 경전 읽기에서, 십자군 전쟁에서, 성당 건설에서 찾았던 의미보다 더 환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 찾기 역시 자기기만일 수 있다면 저자의 말대로 이는 꽤 우울한 결론이다. 람들이 금까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혹은 평생을 바쳐 추구해 왔을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우리는 무엇이 행복인지 진정 안다고 할 수 ?


논의는 이어져현대의 자유주의까지 흘러온다. 현대인 자유주의 신봉다.

이것에 대해 특별히 이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의 느낌, 주관이 중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는 우리가 행복의 느낌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저자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행복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

과거 대부분의 종교,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는 보통 사람의 느낌이나 선호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행복에 있어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행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기고 연구했던 불교의 입장을 예로 든다.

불교에서 번뇌의 원인은 순간적인 감정추구는 것이다. 이런 추구는 무의미하고 보상도 없다.


끊임없이 행복을 갈망하는 것도 마찬가지.

따라서 불교 사상은 갈망을 멈출 필요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이는 명상의 본질과도 연결다.


행복 추구것조차 고통일  있다니, 이 세상의 수많은 행복 추구자머리 한 대 세게 맞은 느낌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교 사상은 추구하기를 멈추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것을 권한다.


부처의 가장 심원하고 중요한 통찰은 따로 있다.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한마디로 '평정'인 듯하다. 말은 쉽지만 깊이 공부해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불교 철학은 어쩐지 어렵고도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본디 행복을 추구하는 필자는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이상, 외적이든 내적이든 무언가 추구하기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생각한다.


래서 추구를 중단하라는 말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사피엔스>의 19장을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있다. 외적요인은 돈, 건강 등의 물질절 요인과 가족, 공동체 등의 비물질적 요인으로 나뉜다.


물질절 요인이 분명히 중요하긴 하지만 비물질적 요인이 행복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며, 어쨌든 외적인 요인의 총합이 인간의 기대치에 비해 얼마냐 큰지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결정되는 듯하다.


이 책에 표현된 내적 요인은 인간의 신경과 호르몬 작용을 뜻하는데 생물학자들은 결국 유전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이와는 다르게 삶의 의미를 찾고 그것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인간이 행복하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지만, 개인의 가치 체계나 행복에 대한 느낌 역시 환상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논의는 결국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불교 철학까지 이르게 된다. 불교 철학에서 행복을 얻는 비결은 특정한 감정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파악하는 데 있다. 바꿔 말하면, 불교에서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일종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행복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한다. 따라서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공백을 채워나가야 한다며 행복에 대한 논의를 끝맺는다.


앞으로 학자들이 행복의 역사에 대해 어떤 연구를 이어가고, 또 어떤 놀라운 인사이트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우리도 때로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지며 개인적 행복의 공백을 조금씩 채워나갔으면 한다.


이전 09화 잊지 말고 Clap alo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