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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설란 Oct 18. 2024

슬픔과 불안과 행복

<인사이드아웃 1, 2>로 바라보는 행복의 의미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면서도 감정을 느낄 만큼 거의 모든 순간마다 감정의 바다를 헤엄치며 살아간다. 짜증의 바다를 지나 잠깐 기쁨의 바다로 들어갔다가, 분노의 바다에서 헤매기도 하고, 무료함의 바다를 거쳐 하루의 끝에 다다랐을 때 행복감이 우리를 포근히 감싸면 좋으련만. 

렇게나 다양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후속작인 <인사이드 아웃 2>를 다시 보며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갓 태어난 아기 라일리가 을 뜨고, 라일리의 머리 속에서 란색의 기쁨이(joy)도 처음 등장한다.

기쁨이가 무언가를 조작하자 아기가 웃는다. 그리고 기쁨이도, 라일리의 부모님도 함께 웃는다. 최초의 기쁜 기억이 생성된 순간이다.


그런데 눈물 모양을 닮은 파란색의 슬픔이(sadness)가 등장하, 픔이가 슬며시 제어판을 조작하자 아기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라일리에게 웃음만안겨주고 싶었던 기쁨이에게 라일리를 울려버리슬픔이는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라는 11살 여자 아이의 머리 속에서 기이(joy), 슬픔이(sadness), 버럭이(anger), 까칠이(disgust), 소심이(fear) 다섯 감정 캐릭터들 라일리의 성장을 우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이들은 감정제어센터에 사는데 이 구역의 리더 바로 기쁨이다.

기쁨이는 라일리의 메인 감정으로, 태어나 처음 등장한 감정이라 리더가 된 것으로 추된다.

그런데 라일리의 엄마, 아빠 머리 속을 보면 기쁨이 메인 감정이 아닌 것으로 보아,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리더가 바뀔 가능성도 있는 하다.


영화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추상적인 현상을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했뇌과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들이 장면 곳곳에 녹아 있다.


학문적인 의미에서 뇌는 하나의 또 다른 우주라고 여겨질 만큼 광활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역시 아름답 표현되어 있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예를 들어, 라일리의 머리 속 한가운데 길게 솟아 있는 감정제어센터는 일종의 본부 역할을 하 곳으로 실제 인간의 중심에 있는 변연계를 연상시킨다. 


변연계는 대뇌 피질과 뇌간 사이에 있는 기억과 감정, 그리고 호르몬을 조절하는 중앙부이며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본부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기억 저장소의 구불구불하고 주름진 모습은 대뇌 피질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  감정제어센터와 기억 저장소 ( 출처 : Pixar Wiki )
▲ 사람의 뇌 구조


또한 어둡고 깊은 기억의 매립지에서 라일리의 유아 시절 상상 친구 '빙봉'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통해 망각의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꿈 제작소에서의 소동 역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라일리가 잠이 들면 꿈 작소라는 곳에서 배우 및 감독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그들은 마치 영화를 찍듯이 라일리의 꿈을 만들어고 상영까지 한다.


 장면은 인간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프로이트의 꿈 작업(dream-work)에서 모티브를 따 것으로 보인다. 영화사 '드림웍스'도 회사명을 지을 때 프로이트의 이론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꿈 작업이란 꿈의 복잡한 내용이 의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적 소망의 표현으로 보았으며, 꿈 작업은 이러한 무의식적 욕망을 의식이 허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하는 것이라 말했다.


꿈 제작소에서 일하는 캐릭터들이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장면이 라일리의 꿈속에서는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편집되어 상영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작업의 과정 중에서도 이차적 가공 (Secondary Revision) 관련이 있어 보인다.


▲ 꿈 제작소 세트장과 스태프들 ( 출처 : Disney Wiki )


이차적 가공은 일종의 연출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꿈의 내용이 논리적 보이도록 재구성되는 것이며, 나마 꿈이 덜 혼란스럽고 말이 되는 형태 바뀌는  볼 수 있다.


어쨌든 기쁨이의 주도 하에 다른 감정들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한 유년시절 보내던 11살 라일리에게, 이사와 전학이라는 큰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서 감정제어센터는 그야말로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대혼란을 틈타 슬픔이가 자신도 모르게 기억 구슬에 자꾸 손을 대려는 것을 저지하려던 기쁨이 슬픔이와 함께 감정제어센터 바깥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기쁨이와 슬픔이는 어떻게든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런데 라일리의 근간을 이루는  기억이 슬픈 기억으로 변할까 두려웠던 기쁨이는 슬픔이를 두고 혼자 본부에 복귀하려다 기의 매립지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들은 특정한 감정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억들은 우리의 인성을 이루핵심요소가 되기 하기 때문에 기쁨이가 그토록 슬픔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망연자실한 기쁨이가 기억의 매립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억 구슬로 인해 이야기는 환점을 맞이다.

라일리가 선수로 출전했던 아이스하키 경기의 즐거웠던 기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기쁨이. 


기쁨이가 눈물을 흘렸는 사실도 의미심장하지만 구슬에 떨어진 눈물을 닦다가 되감아진 기억의 처음 색깔은 놀랍게도 슬픔을 상징하는 파란색이었다.


경기에서의 실수로 자책하는 라일리 부모님이 위로하는 모습이 먼저 있은 다음에 환호의 기쁨이 넘치는 노란색으로 바뀐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의 기억이라도 감정은 뒤섞여 있으며 슬픔 뒤에 비로소 기쁨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본부로 복귀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슬픔이도 나름대로 활약하게 되고, 기쁨이도 슬픔이 숨은 역할을 깨달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설정에 따르면 기억구슬의 색깔은 각각의 감정 캐릭터들의 색깔과 일치한다.

소동의 주원인이자 문제의 파란색 핵심 기억은 라일리가 전학 간 날 자기소개를 하며 울어버린 기억데, 영화의 주제 의식을 나타내는 명장면은 이 핵심기억을 통해 완성된다.


라일리의 가출 소동이 마무리되고 슬픔이와 기쁨이는 제어판의 버튼을 함께 누른다.

그러자 부모님이 라일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파란색이던 구슬에 기쁨의 상징인 노란색이 물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파랑과 노랑이 섞여 연둣빛의 구슬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장면이 관객들을 울리고 마는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는 것, 행복을 위해서는 감정의 조화가 필요하며 특히 슬픔이 있기에 기쁨도 있다 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아닐까.




다섯 캐릭터 중 긍정적인 감정을 형상화한 것은 기쁨이뿐이지만 버럭이(화), 까칠이(역겨움), 소심이(두려움)도 라일리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유독 슬픔이만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감정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엔 관객들도 기쁨과 슬픔, 두 감정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렇듯 슬픔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차분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처럼 슬픔은 유대를 강화하고 기쁨을 극대화하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홀가분지기도 하는데, 이렇듯 부정적으로만 여겨졌던 슬픈 감정도 알게 모르게 여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슬픔이의 소중함을 알게 된 다섯 감정 친구들은 각자를 더욱 존중하고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이전보다 더 조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섯 가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일리가 자라나면서 또 다른 감정 친구들이 본부에 이사를 오게 되는데 후속작인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라일리는 13살이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불안이(anxiety)를 앞세운 여러 감정 캐릭터들이 화려하게 등장하며 시작다.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가운데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때로는 행복한 삶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현상이다.

불안(anxiety)은 두려움(fear)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불안할 땐 뇌과학>에서 저자(캐서린 피트먼, 엘리자베스 칼)는 불안과 두려움이 비슷한 정서 반응이지만 엄연히 다른 감정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지금 눈앞에 나타나 나를 위협하는 맹수와 같이 구체적인 위험이나 대상이 있을 때 발생한다. 즉, 우리가 실제로 곤경에 처했을 때는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당장 어떤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닌데도 무섭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불안이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도 소심이(fear)와 불안이(anxiety)는 비슷하지만 다른 감정으로 묘사된다.

두 캐릭터 모두 주인공인 라일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소심이는 당장의 안전에 집중하는 반면, 불안이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상’을 바탕으로 ‘예상’하는 능력을 가진 불안이는 새로운 감정들의 리더 역할을 하며, 기존의 리더인 기쁨이를 몰아내고 의사결정 권한을 독차지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불안한 감정을 느낄수록 라일리는 괴로워하지만 불안이는 이 모든 것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며 감정제어센터를 독차지한 채 폭주해 버리고 만다.

불안이가 폭주하는 장면은 공황 발작(panic attack) 현상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실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힘들어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불안은 환영받지 못한다. 불안을 위시한 부정적 감정들이 일어나는 만큼 기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성장하면서 세상과의 접점이 많아지고, 더불어 대처해야 할 상황들이 늘어남에 따라 본격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타다. 더러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안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사시대에는 불안이 심한 원시인이 살아남기 유리했다. 동굴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호기심에 나가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숨죽여 엎드려 있는 편이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상의 유전자를 간직한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심할 것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이 심한 듯하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실제로도 과도한 불안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며 공황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일상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찬물을 끼얹는 불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전편과 비슷한 맥락 불안한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라일리의 자아 정체성 형성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받은 불안이는 결국 폭주를 멈추고, 모든 감정 캐릭터들이 라일리의 ‘자아 나무(신념의 나무)’를 껴안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소동이 마무리된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대체 왜 인간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지, 불안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우리 안의 다양한 감정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고 여러 가지 의무가 늘어남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기쁨의 양 자체는 점점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하나 꼭 필요한 감정들을 잘 다루고 감싸 안을 수 있다면 우리 안의 여러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진 행복은 점점 커져갈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 2>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we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인 동시에 우리가 우리 내면의 감정들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행복의 출발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슬픔과 불안은 행복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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