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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설란 Oct 15. 2024

철학자들의 가지각색 행복관 (2)

명랑함을 강조하는 비관주의자 쇼펜하우어


금수저, 비관주의의 대명사, 천재, 다소 오만했던 철학자


금수저, 비관주의, 천재, 오만.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가 직접 쓴 글이나 그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철학에 몰두했던 쇼펜하우어는 의외로 삶의 고통에 주목한 비관주의자였다.


쇼펜하우어의 통찰은 그에게 감명을 받은 후대의 많은 학자 및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만큼 천재적이었다.

그의 저서는 특히 프로이트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체계화한 무의식의 개념이 쇼펜하우어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천재성을 진즉에 알고 있었던 그의 글에서는 왠지 오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보통의 사람들을 바보, 멍청이, 속물 등으로 칭하며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 그의 사상이 주류 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대표 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지만 말년의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명성을 얻는데 한몫 한 글은 <소품과 부록>이라는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소품과 부록> 우리나라에서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로 번역되었는데 인간의 행복, 고통, 죽음 등과 관련된 다양한 생각 및 독자에게 전하는 실용적인 조언들이 담겨있다.



비관주의자가 어쩌다 행복론을?


삶은 고통이라 외치는 비관주의자가 행복을 논하다니, 언뜻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가 염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은 우울한 가정사(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의 불화 등)로 인한 개인적 낙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했던 소년이 관찰한 고통스러운 세상은 그가 자라온 유복한 환경과 대를 이루며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십 대의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권유로 떠난 유럽 여행에서 착취당하는 노예, 무자비한 폭력, 지독한 가난, 광기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아들의 상업적 감각을 키우기 위해 떠난 여행이 오히려 철학적 사고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며, 고통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본질을 그렇게 보았을 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는 괴팍한 구석은 있지만 유머러스하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고독과 예술을 즐기는 인생을 살았다.


쇼펜하우어가 행복론을 펼친 이유는 비록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고통스러울지라도,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줄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한 의도였다.






그가 우리 앞에 다시 살아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여러분, 삶이 이렇게나 고통스럽습니다. 제 견해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마냥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나요?


직시하되, 줄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좋은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노력과 실천으로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삶것입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실용적인 방안들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했으니 한 번쯤 읽어보시고 더 나은 삶을 사세요.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에서 '행복'을 언급한 부분을 톺아보면 그가 유난히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정신 건강은 천적인 기질과 명랑한 마음으로 연결되는데 이 모든 것의 선결 조건이 바로 신체의 건강인 것이다.


대체로 우리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의해 좌우된다. 건강해야 모든 것이 향유의 원천이 된다.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건강과 운동강조하다니, 이보다 실용적인 철학자의 조언이 또 있을까?


고상한 성격과 뛰어난 두뇌, 낙천적 기질과 명랑한 마음, 튼튼하고 아주 건강한 신체와 같은 주관적인 자산, 즉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이 우리의 행복에서 으뜸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명랑한 기분에 크게 좌우되고, 명랑한 기분은 건강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쇼펜하우어는 명랑한 정서를 행복을 위한 최고의 자산으로 여지만 탁월한 개성, 고상한 인격, 지혜 등의 내면적 가치도 중요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적 모습과 인간이 원래 지닌 것, 요컨대 인격과 그것의 가치가 행복과 안녕의 유일한 직접적 요인이다.



정신적 향유를 통한 고통 감소


쇼펜하우어는 행복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므로 자기 힘으로 얻 신적 향유를 강조한다.

탐구, 사유, 감상, 음악, 독서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정신적 향유를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예술 자연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면 삶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에 높은 가치를 부여고 음악에 대한 조예 또한 깊었다. 그는 음악이 인간의 고통과 욕망을 넘어서는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종종 집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며 감상에 빠지곤 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그냥 본인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타인의 행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술을 향유하고, 창조적인 활동에 몰입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평안, 치유를 가져다주는 행위임분명 여러 연구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흔히 도파민이 분비되면 쾌감을 느끼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한다. '도파민' 하면 중독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르지만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과제에 몰입할 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도박이나 약물등의 과도한 자극에서 비롯되는 도파민의 작용과, 몰입 상태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작용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전자의 도파민 분비는 강렬한 쾌락을 경험하게 하지만, 반복될 경우 신경 적응으로 인해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게 되어 중독으로 이어진다.


반면 몰입 상태에서의 도파민 분비는 중독처럼 강렬한 보상이 아닌,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동기부여와 집중을 촉진하며,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적으로 이끌어낸다고 한다.


어쩌면 쇼펜하우어는 예술이든, 자연이든, 깊은 사색이든, 아름다움과 창조적인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 지속적인 행복에 이르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방대한 양을 자랑하며 다루는 주제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게다가 시대가 변한 탓인지 현대적인 시각에서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이 에세이집을 어떻게 감상하고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생관, 행복관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을 찾아보며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쇼펜하우어에게 행복은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그는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오히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행복론을 쓴 이유일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한 생활은 비생존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이라고 했데 이 대목에서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우리나라 속담이 떠오른다.


삶은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명랑함이 최고의 자산이며, 따라서 낙천적인 성격으로 태어난 사람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고통을  감소시키는데 예술을 향유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쇼펜하우어 우리에게 내려주는 처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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