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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설란 Oct 11. 2024

철학자들의 가지각색 행복관 (1)

거닐며 사색하며


문사철은 문학, 사학, 철학의 줄임말로 인문학 3 대장으로 불리며 취업이 어렵기로 유명한 세 개의 학과로 회자되기도 한다. 취업의 난이도 및 학문의 난이도가 문학 < 사학 < 철학 순서로 높아진다는 농담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그중 모든 학문의 토대로 여겨지기도 하는 철학은 어쩐지 어렵고 심오해 보여서 가까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철학자는 여기저기서 꾸준히 언급되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소크라테스가 어쩌고 저쩌고, 칸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들어본 적이 있 것이다.


문득 삶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이들은 인류 최대의 고민인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진다.


진리, 본질, 형이상학 등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개념은 잠시 제쳐두고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철학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토대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옮기는 에세이스트고.


생각에 잠긴 채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는 철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철학자, 작가 등 무언가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사람들은 유독 거닐면서 사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탐험에 가까운 산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에피쿠로스는 자신이 세운 학교의 정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거닐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존경하는 철학자 칸트를 따라 자신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것을 하루 일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오늘은 특히 산책을 즐겨했던 세 명의 철학 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엿보기 위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범생다운 행복관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유명한 삼단논법을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오늘날의 논리학으로 통용되는 철학 분과를 만들었고 연역법을 체계화하는 등의 성과를 이룬, 상당히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궁중 의사, 스승은 플라톤이었던 그의 성장 배경이 엘리트다운 면모를 갖추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의 황태자 시절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훗날 정복 왕이 되어 대제국을 이룬 제자가 종종 멀리서 보내주는 자료, 신기한 물건, 동식물 표본 등을 분류하고 연구하며 연역법을 체계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역법은 일반적인 원리나 법칙에서 특정한 결론을 도출하는 논리적 추론 방식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체계화하여 논리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는 연역적 추론의 과정을 삼단논법으로 설명했다.

두 개의 전제, 이를테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에서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결론인 '소크라테스도 죽는다'를 이끌어내는 구조를 제시한 것이다.


그와 제자들은 정원에서 걸으며 공부하는 소요학파(逍遙學派)로 불렸다고 한다. 자연 탐구를 위해 숲 속을 탐험하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얼마나 걸었으면 학파 이름이 '거닐며 돌아다니다'라는 의미의 소요학파일까?

이 대목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기를 즐겼던 그의 학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라 있다.


그런 그가 말하는 행복은 탁월함, 즉 아레테(aretē)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엘리트다운 지성과 성품을 추구한 것인데, 그는 현대적 의미의 행복과는 사뭇 다른 의미의 행복을 추구했던 것 같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과 성품을 갖추기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중용(中庸, mesotes)'을 꼽는다.

일반적으로 중용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말은 중간, 중, 보통, 치우치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단순히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불이 난 건물 안에 사람이 갇혀 있을 때, 비겁한 사람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 하는 반면 무모한 사람은 안전 대책 없이 뛰어들 것이다. 전자가 중용을 찾지 못하고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이라면, 현명한 사람은 상황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구조할 방법을 고민한 후, 가능할 때 적절하게 행동할 것이다.

 즉, 그가 말하는 중용은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며 이러한 중용을 통해 탁월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모범생답기도 하고, 진지한 학자답기도 하다지성과 성품을 갖추라니, 오늘날의 박식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추구할 듯한 행복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어쩐지 인자하신 교수님과 동양의 성인군자가 떠오르는 행복관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의 의미


에피쿠로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삶의 목적은 쾌락이 하며 쾌락주의를 철학의 핵심으로 삼았.


그러나 속세의 맛이 묻어있는 '쾌락'이라는 단어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오해를 많이 샀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흥청망청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는 방탕하고 향락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금욕을 실천한 철학자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소극적 쾌락인데, 그는 서신에서 쾌락은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금욕이라니, 어딘가 궁상맞은 느낌이 드는데 금욕이 어떻게 행복과 연결이 될까?


그의 행복관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말로 대표된다.

아타락시아는 마음의 평온, 평정심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타락시아야말로 마음의 괴로움이 없는 최고의 쾌락이 아닐까?


그는 이렇듯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는 욕망을 절제하는 소박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

아타락시아를 유지하기 위해 정원이 딸린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절제하고 금욕하는 삶의 최대 걸림돌은 바로 타인과의 비교인데,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외부와는 단절된 채 서로의 금욕을 격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제자들은 원에는 담을 쌓고 그 안에서 거닐며 토론하고, 사색했기 때문에 정원학파로도 불린다.


에피쿠로스는 성취 욕망으로 나누면 행복이라는 견해를 가기도 했다.
이 공식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성취라는 분자가 대동소이한 가운데 헛된 욕구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의 미니멀리스트와도 같은 삶을 추구하며 안분지족을 몸소 실천했다.

무언가를 하면 원할 수록 욕망은 커지기만 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나 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학파는 인기도 많았지만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소극적인 삶의 태도 때문에 다른 학파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불필요한 것들을 욕망하느라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아타락시아는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 볼 만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소요학파와 정원학파의 행복관에 대해 살펴보고 있자니 문득 글 쓰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왜 산책을 는지, 산책이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 궁금하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은 가벼운 운동을 통한 건강 증진, 명상을 통한 정서 환기의 효과, 사색을 위한 수단, 스트레스 감소 등을 이야기한다.


옛 철학들이 이를 알고 거닐었는지, 아니면 그냥 무작정 걸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산책을 하면 불쑥하고 아이디어가 솟아나거나, 막힌 곳이 뚫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바야흐로 산책의 계절이다. 꼭 집필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가을의 실바람 느끼면서 머릿속을 환기해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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