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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영 Oct 27. 2024

3. 시간은 더 이상 그의 뒤에 있지 않았다

 이상한 꿈이었다. 꽃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유성은 그 선명한 어린 꽃의 말을 되뇌며 잠을 놓쳤다. 왜 계속 되뇌는 것인가 고민한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꽃의 가슴 벅찬 칭찬과 내가 꿈꾸던 서울의 삶이 아니었던가 생각하지만 그는 확실히 그 꿈에서 불편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 찝찝함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유성을 이 새벽에 깨어있게 한다. 잠에서 깨기 전 연기 사이로 어린 꽃을 찾아 헤매던 장면이 어렴풋이 그의 머리를 스친다. 나의 꽃. 당연하게도 아무런 소득 없이 우왕좌왕하다 잠에서 깼겠지. 불안하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것이 나의 꽃들에게도 침투하기 시작했구나. 그만큼 가까이 왔구나. 이제 곧 다가오는구나.. 손톱을 물어뜯으며 그는 어둠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방학이 끝나간다. 유성은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두렵다. 다시 치열하게 도시에서 가난과 투쟁할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서서히 현실이라는 녀석이 그의 목을 옥죄어 오는 것이 느껴진다. 유성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며칠 전부터인가 하나 둘 서울행 기차를 타고 떠났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누구는 복학을 한다며, 다른 누구는 사업을 한다며 본인들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더 즐기고 싶다.. 그는 굳게 다짐하였다. 아직은 풀어야 할 불편한 숙제도 있고 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꽃을 가꾸고 싶다.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애초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유성은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좋은 학교나 스펙도 없던 유성인데 꽃은 자신을 열망했다. 그리고 그 열망은 유성에게 기쁨보다는 조금의 오싹함을 주었다. 연기 속에 사라진 꽃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전화 한 통이 유성의 휴대폰을 울린다. 휴대폰에는 유현이라는 이름이 찍혀있다.


 - 여보세요.


 - 어 그래 나다 뭐 해


 - 그냥.. 봉사 중.


 - 아 그래? 이제 취업 시즌이니까 너도 뭐 준비하는 줄.. 뭐 비슷한 건가? 어쨌든 끝나면 연락해 수고해


 딸깍.. 피곤하다. 유성도 아마 돌아간다면 취업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 결국 그의 머릿속을 침투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그것을 알았는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괴로워한다.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유성이지만 그곳에서 경력을 쌓아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곳으로. 더 그의 꿈을 빨리 이룰 수 있는 곳으로. 회사를 다니며 취업 준비를 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에게는 어쩔 수 없다. 평범한 삶을 위한 서울에서의 고된 삶은 상상할수록 그의 마음을 이미 서울행 기차에 싣고 떠나보낸 듯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손은 점점 줄기 시작한다. 그만큼 일의 양이 늘어난 유성은 바쁘게 하루하루 일해나간다. 꽃밭의 크기도 늘어나 원래 그의 담당이 아니었던 꽃들도 여럿 관리하게 되었다. 갑자기 구역이 넓어져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키워야 할 꽃들이 늘어난 것이 그에게는 큰일이었다.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노력과 정성이 분산되는 법처럼 너무나 많은 꽃들 때문에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돌볼 여력이 전혀 없었다. 허리를 피는 시간도 많아졌다. 유성뿐만 아니라 다른 일손들도 바쁘게 늘어난 본인의 구역을 관리하느라 더 분주해 보이는 것을 허리를 들 때마다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유성은 꽃에서 물을 주다 손이 자주 미끄러진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나 생각하지만 그는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도 점점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일이 많아져 잡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법도 하지만 이 짙은 안개는 시시때때로 유성의 시야를 가렸다. 그의 손을 미끄러지게 한 건 그의 땀이 아닌 그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그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마다 유성의 핸드폰에는 서울에서 온 연락들로 수두룩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 하는 이야기들이 짠 것과 같이 비슷하다. 서울에서 오는 이 연락들은 어서 정신 차리고 서울로 돌아오라고 그의 머릿속에 희뿌연 매연을 불어넣는다. 누가 취업을 했는지, 이번 시험 난이도가 어땠는지, 정원이 몇 명 증가했고 감소했는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로 서울의 매연을 간접 흡연시킨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은 그래서 하늘이 잿빛인가 보다. 그렇게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독촉하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문득 유성도 점점 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고 있음을 느끼고는 고개를 떨군다. 꿈속의 꽃이 떠오른다. 결국 만개한 꽃들도 어디로 팔려가는가가 중요한 것인가라는 의미 없는 공상에 빠진다. 그래도 맞는 말 아닌가. 어느 이름 모를 어린아이의 입학식으로 쓰이고 버려질 꽃이 될 수도 있고 부유한 집안에서 가정부의 관리를 받으며 무병장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름 의미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느낀 유성은 어린 꽃을 떠올리다 이내 다시 현실을 자각한다. 시간은 더 이상 그의 뒤에 있지 않았다. 어느새 시간을 쫓고 있는 그의 모습은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뒤쳐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특히나 가족들의 걱정 어린 문자를 보고 있으면 유성이 쫓는 그것이 더 아득해질 뿐이다. 보이지 않는 선두주자를 따라잡으려 쫓다 결국 그는 다짐한다. 떠나야겠다고. 이제는 현실을 살아야겠다고.


- 저기..


 유성은 바로 고모에게 내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녀도 이미 일하는 사람들 중 여럿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에 유성을 이해해 주는 모습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일도 마무리 되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유성이 떠나도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언젠가는 올 줄 알았지만 많이 슬픈 현실로의 돌이킴이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해야 할 말을 한 그는 퇴근하겠다는 말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청소를 시작한다. 내일 떠날 때 씻고 출발해야 하므로 세면도구는 놔두고 다른 것들부터 하나하나 가방에 넣어본다. 항상 어딘가를 떠날 때는 아쉬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유성도 가슴 얕은 곳에 짙은 향을 풍기며 자리하고 있었다. 설렘은 없다. 내려온 만큼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 다시 자신의 평범을 위하여 잿빛 불길 속으로 뛰어들 뿐이었다. 싱숭생숭했지만 마지막 날인만큼 꽃들에게 온 정성을 쏟아 잠이 안 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정돈된 방 안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고요한 어둠 속, 채 마르지 않은 빨랫감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이 그의 떠남에 반응했다. 그날의 꿈에도 어린 꽃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날이 밝았다. 눈을 뜬 유성은 뒤척이다 마룻바닥으로부터 몸을 천천히 뗀다. 밤새 떨어지는 물을 받았던 양동이를 비운다. 짐을 완전히 다 싸고 밖으로 나온 유성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맞이한다. 곧 다가올 회색빛 하늘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새파란 하늘을 최대한 눈에 담아본다. 하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은 잿빛으로 가득 차있다. 벌써부터 올라가서 할 일들, 따야 할 자격증, 문제집, 시간 분배까지 생각할 일이 태산이다. 가방을 메고 고모와 고모부가 계실 밭으로 향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꽃들을 가꾸고 있을 그들에게 인사라도 할 겸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꽃들을 보러 발걸음을 무겁게 하나하나 떼었다. 밭 앞에 도착하니 그들이 농부들과 함께 유성을 배웅해 주러 앞에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몇 가지 조언들과 함께 이번에도 내려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다.


- 꽃들도 자네가 떠나니 아쉬운 모양이야. 이 친구들도 자네한테 많이 고맙다고 하네.


- 암, 그래야지. 자네 아니었으면 이 친구들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걸세. 나도 고맙네.


 꽃들도 소작농이 떠날 때가 다가옴을 느꼈나 보다. 하긴 평소와 다르게 어리바리하던 최근의 유성을 보며 의아해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유성이 떠날 때 친척들을 통해 감사인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유성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거라고, 그때 주었던 물과 비춰주었던 햇빛이 본인과 이 꽃밭을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친척들은 유성이 맡은 밭의 성장에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로 감사를 표했다. 유성은 생각보다 과한 친척들의 말에 조금은 당황했다. 본인이 큰 사명감 없이 했던 일들이었지만 이것이 꽃들의 성장의 발판이 되고 생존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소작농은 평소 가지고 있던 조금의 책임감이 조금씩 마음속 자리를 꿰차기 시작해 지금은 비워내기 어려울 정도로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유성은 떠나야 한다. 그렇게 친척들과 어느 정도 작별인사를 하고 기차역으로 길을 나선다. 걷다가도 몇 번씩 뒤를 돌아 꽃밭을 본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푸르른 꽃 향기. 꽃들은 얼마가 걸리든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축복의 향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유성은 그 향기도 마음에 담아본다. 서울에서 문득 떠오를 이 향이 그를 살아있게 하기를 스스로 희망해 본다. 기차역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인지 현실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발걸음이 빨랐나 보다. 유성은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대부분 이제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았다. 다시 온다면 언제일까, 그때에는 어떤 꽃들이 있을까. 기차역에 들어가니 역시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그의 상경을 위로한다. 역 안은 두 세명의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두어 명의 직원들만이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표를 꺼내 전광판과 비교해 본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꽃밭에 있으려고 했기 때문에 기차는 금방 왔다. 


 - 지금 서울행, 서울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차는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와 서서히 멈추고 문을 열었다. ‘서울행’이라고 디지털로 적혀있는 기차를 확인한 유성은 열차에 오르려다 다시 한번 몸을 돌려 꽃밭 쪽을 바라본다. 그가 품속에 담아놨던 꽃향기들을 떠올린다. 그는 한 번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염려한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온몸이 매연으로 가득 차 눌러앉게 될 자신을 걱정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속의 꽃향을 한 움큼 쥐어 들이마시리라 다짐한다. 유성이 정성 들여 주던 물, 햇빛은 이제는 꽃들에게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다. 꽃들에게 주려고 밭에 왔던 유성은 어느새 이제는 받는 입장이 되었다. 방학의 그날들은 이제 모두의 인생의 기억으로 남게 되어 각자의 순간에 은은하게 빛날 것이다. 그때의 꽃들도, 그때의 태양, 땀을 흘리던 원예가들, 저녁밥, 방 안의 고요함, 그리고 유성도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꽃밭을 추억하며 가방을 메고 서울행 기차를 탄다. 나의 꽃들이 잘 자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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