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 떨어진 나무 건너엔 위독한 문장을
거미줄처럼 게워 내다 부리가 뭉툭해진 새가 있다
나는 나무의 앞쪽에 기대 있고
하혈을 멈춘 새는 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자정에 멈춰 있다
혼잣말이 수면 위로 차오르면
깍지 푼 눈물이 굳은살 배긴 목구멍에서 멀미를 한다
등이 꺼지고 뼈가 어긋나 봉인된 지문에는 곳곳에
멍울을 녹이는 유리로 덮인 밤이 출렁인다
밤새 뒤척이다 빠져드는 새벽녘 꿈,
목숨 바깥을 다녀온 흰나비 떼들이 새를 쫓는다
“여기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
“그래요 아직 문을 잠그지 마세요
허공을 걸어서 오는 새를 만나야 하거든요“
바람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빨간 동그라미로
갇힌 날은 새들이 부리를 맞대고
꺼억꺼억 울었을 것이다
두 발 뻗고 약속 뒤로 숨다 젖은 날개를 한껏
포갰을 것이다
달의 공전을 따라
나는 나무 뒤편에 기대 있고
하얀 새는 눈동자 저편에서 잠시 박제가 되었다
경계선을 넘어온 체취가
새의 혈흔이 묻은 시작 노트를 한 장씩
갓길로 넘기고 있다
* 어린 왕자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