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윤이야. 네가 있는 곳은 날씨가 어때? 여기는 역시 더워. 학교에서는 에어컨을 무조건 18도로 틀어. 그러면서 부채까지 들고 있는 애들도 있어. 복도에만 나가도 뜨겁다니까. 중학생 때는 어떻게 이런 날 매일 놀러 다녔는지 몰라. 초등학생들의 눈초리를 받아도 놀이터 가서 놀기도 하고, 단골 카페에 가서 급하게 수학 숙제를 했는데. 너는 여기 있다가 이사 갔으니까, 거기는 좀 시원하게 느껴지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너 생각을 많이 해. 여기 다 풀어 적지 못할 만큼 생각의 뭉치가 커서, 압축한다고 고생 좀 했을 정도야. 너랑 여기서 함께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너가 계속 여기 살았으면 지금 우린 뭘 할까, 하는 상상과 함께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이런 걸 애틋하다고 하는 건가? 서글픔까지는 아니고 산뜻한 그리움이니까 애틋함이라고 하자.
너가 없으니까 떡볶이를 먹을 일이 잘 없어. 너랑 만났다 하면 떡볶이였는데. 그것마저도 둘 다 나가는 걸 극도로 귀찮아해서 매일 배달. 주로 너희 집이었지. 쿠폰이 가장 많은 가게를 찾아서 주문하느라 새로운 떡볶이도 많이 섭렵했어. 맵기는 가장 안 맵게. 중학교 1학년 때 엽떡 2단계를 먹었다가 쿨피스로만 배를 채운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 짓을 다시 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안 맵게 해야 했잖아. 치즈 추가는 필수지!
너 방에 있는 작은 탁자에서 수다 떨면서 먹거나, 너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아이맥으로 영화를 봤지. 주로는 수다를 떨었지만 아이맥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재밌었어. 너 아이맥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아이맥이다? 나 엄청 호들갑 떨었던 거 기억나지. 세상에 화면이 그렇게 깨끗하고 선명하고, 디자인은 또 왜 그렇게 예쁘고... 근데 부럽지는 않았어. 언제든지 너랑 만나서 같이 보면 되니까. 그렇게 우리는 드라마도 봤고, 유튜브에 있는 버스킹 영상도 봤고, 내가 재밌다고 한 애니메이션도 봤어. 아, 한 번은 내가 온라인 콘서트를 예매했는데 우리 집은 티비랑 폰이 연결이 안 돼서 너희 집에 가서 본 적도 있었다. 진짜 웃겼다니까. 난 응원봉 흔들면서 감탄하고 있고, 너는 옆에서 구경하고 있고. 너희 어머니께서도 와서 보셨잖아.
아, 너희 어머니가 해 주시는 크로플은 진짜 최고야. 아무리 맛있다고 하는 크로플을 먹어도 너희 집에서 먹는, 너희 어머니가 해 주시는 크로플이 나에게는 최고의 크로플인걸. 아이스크림까지 얹어 주시면 진짜 완벽했지. 3학년 때는 거의 매일 너희 집에 갔는데도 너희 어머니께서는 집이 밝아져서 좋다며 오히려 나를 반겨 주시고 나를 첫째 딸이라고 불러 주셨어. 그게 기뻤고 너무 감사했어.
우리 집에서 노는 일도 있긴 있었지만 금방 집 앞 공원으로 나가곤 했지. 씽씽카를 타는 아이들 옆에서,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을 지나쳐 우리는 산책했어. 몇 바퀴를 돌았을까. 에어팟을 사이좋게 한 짝씩 나눠 끼고는 계속해서 얘기를 했어. 너는 말을 천천히 하고 나는 빠르게 했는데, 그 묘한 엇박도 재밌었던 것 같아.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이 절대 끊기지는 않았어. 어떻게 그렇게 할 말이 계속 생겨났을까. 우리는 천진난만했고 또 다정했어.
너가 고등학교 얘기를 할 때부터 나는 뭔가를 느꼈었나? 기억이 안 나. 너랑 나는 많이 달랐어. 그때까지는 그걸 잘 느끼지 못했어. 취향은 떡볶이로 대통합했고, 생각의 차이는 터지는 웃음으로 극복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사이에 미래는 우리 바로 앞까지 와 있었어. 나는 그제야 고등학교를 급하게 알아보다가, 너를 따라 입학설명회를 다녔어. 너는 이미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더라. 입학설명회가 끝난 날 너희 집에서 자고,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나는 즐거움과 막막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아. 너가 빛나 보였어. 나는 닿을 수 없는 반짝임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진짜로 멋있었어. 대단했지. 그렇게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그래서 나도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너한테 맨 처음 알려 줬어.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빈도는 줄었고 각자의 노력을 했어. 하지만 멀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각자의 방식이니까.
너가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안 놀랐다면 다 거짓말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도 몰라.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찾아보는 너의 눈빛이 총명했던 걸 기억하거든. 그리고 너에게는 정말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했거든. 가장 넓은 길을 가지 않으면 불안한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너를 아니까. 그래서 응원해 주기로 마음먹었어. 졸업식 날, 안 슬펐다면 그것도 다 거짓말이야. 그래도 마지막 파티를 즐겼어. 사진을 많이 찍고, 애들이랑 마지막으로 이상한 짓을 마구 하고. 너랑 한 짝씩 바꿔 신은 슬리퍼는 다시 바꾸지 않은 채로 내버려 뒀지. 지금 너는 그걸 갖고 있으려나? 나는 신발장에 가지고 있을 거야.
너가 이사를 가고도 우린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났어. 거기에 우리 이모가 살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는 옛날보다 점잖아진 태도로 이야기를 했고, 입는 옷도 제법 자란 티가 났어. 지난 일 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요약하고 발췌해서, 그래도 넘칠 만큼 많이 얘기했어. 그러다가 중학생 때의 조각을 잡으면 그걸 같이 살펴보기도 하고. 최근에 후회하는 일, 웃겼던 일, 물어보고 싶은 것, 밸런스 게임. 그런 것들을 하며 우리는 짧은 만남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자리로 또 돌아갔어.
너랑 함께했던 시간이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지금도 너무 가까이 있어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볼 겨를이 없거든. 너랑 만나기 전에 너한테 해 줘야 할 중요한 얘기를 신중히 고르는 시간은 내가 너랑 여전히 가깝다는 걸 알려줘.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버린 걸 보면서 아쉬워하는 우리의 한숨은 나에게 안도감을 줘. 지금 지하철에 너랑 같이 타고 있다면 즉흥적으로 시내에 가서 앨범을 살 텐데, 호들갑을 떨면서 포토카드를 꺼낼 텐데, 하는 상상은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사랑을 줘.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잖아. 칭찬도, 격려도, 표현도, 우리는 익숙해. 너 덕분이야. 너를 통해서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런 말들을 다시 돌려줄 수도 있었어. 너와의 시간으로 나는 여전히 즐거워. 그 빛깔은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그런 우리도 나는 좋아해. 이젠 별로 호들갑 떨지 않는 우리도, 오랜만에 같이 밤거리를 산책하다가 깜박이는 신호등에 전력질주하는 우리도.
어떤 말로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네. 마무리는 항상 어려워. 터져 나온 말들을 다시 묶어야 하는 거잖아. 음, 그럼, 묶어야 한다면 리본으로 묶을게. 너랑 오래도록 함께할 미래를 기대할게. 너의 지금을 응원할게. 나보다 너를 조금 더 믿어. 너의 행복을, 최소한의 불행을 기도해. 모든 너의 편이 되어줄 것을 약속할게.
그럼, 다음에 또 새삼스럽게 편지 쓸게.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