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고 아름다웠던
당신의 첫사랑은 어떤가요?
한 친구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첫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태어나서 처음 좋아한 사람, 아니면 처음으로 엄청 많이 좋아한 사람?"
나는 후자라고 답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모든 기억을 재배열해서, 이 사람 전에는 아무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게 만든 사람. 이 사람 이전의 짝사랑을 모두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 언제까지나 반짝이는 사람.
나의 첫사랑은 갑작스러웠다. 예고도 없이, 그전에 알았던 적도 없이, 한 번에 내 삶에 나타났고 한 번에 내 마음에 파고들었다. 첫눈에 반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그 사람을 보고 처음 알았다. 마음을 빼앗겼다는 진부한 말도, 사랑에 빠졌다는 상투적인 말도, 그 사람 때문에 쓰게 되었다.
우선은 좋아하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나서 이유를 찾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라는 질문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좋은 말만 하고 싶어서, 이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완벽하게 전하고 싶어서 내 감정의 이유를 신중하게 찾았다. 그러나 물론 뒤늦은 변명이었다. 맨투맨이 잘 어울리는 게 좋았다, 회색을 좋아하는 것도 좋았다, 머리카락 색이 옅은 것도 좋았다, 이런 식이었다. 일단 좋아하기 시작해 놓고 사족을 덧붙였다. 원래 첫사랑은 말이 많았다. 혼자 무언가를 끄적거리거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생각하거나, 친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첫사랑은 수다스러웠다.
그 사람 이외의 것은 모노톤으로 보였다. 이런 내가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그 사람만이 컬러풀했다. 그 사람의 눈빛이 향하는 곳에 의해서, 짧은 인사에 의해서 내 하루는 좌우되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의 길이도 그 사람에 의해서 달라졌다. 그때 쓴 짧은 글이 너무나도 많다.
내 첫사랑은, 아쉽게도 금방 매듭지어졌다. 나는 용기도 없고, 타이밍도 못 잡는 애였다.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애였고 긴장하면 어설픈 짓을 하는 애였다. 그래서 내 첫사랑은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그 과정을 다 쓰는 건 소용없다. 어쨌든 끝난 일이니까. 여느 첫사랑 이야기와 비슷한 서술일 뿐이니까. 결국 내 첫사랑은 빨리 뛰는 심장과 빨개지는 얼굴, 무심한 인사로 남았다.
그러나 한 가지 몰랐던 게 있다. 첫사랑은 생존력이 강하다는 걸. 세상에 이렇게 '첫사랑'이 들어가는 노래가 많은 이유도,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드라마나 영화가 많은 이유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각해 봤다고 해도 느껴보지 않았다면 알았을 리가 없다. 첫사랑은 끝나고 난 다음이 더 고통스러웠다. 예고도 없이 떠올랐고 나를 온통 뒤덮었다. 후회와 아쉬움, '혹시'라는 말로 내게 남았다. 상상 속의 장면으로 내 첫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구차하다고 느껴질 만큼, 내가 한심할 만큼, 그럼에도 멈추지 못할 만큼.
앞으로 내 첫사랑의 행선지를, 알 수가 없다. 당장 두 달 후에 떠올려 보면 첫사랑이 또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서글퍼지는 건, 내 모든 첫사랑은 단지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일 뿐이라는 거다. 진짜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웃어준 적도 없고, 내 이름을 불러준 적도 없고, 말 걸면 그때는 친절하긴 했다.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서만 살아 있었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서로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서워하는 건 뭔지,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벌써 잊혔을지도 모르는 배경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관계였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기뻐하고, 나만 힘들어하는 그런 관계였다.
그 사람을 진짜로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나는 그 사람에게 인사할 수 있을까. 오랜만이라며 웃어줄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 상상 속 말고 실제의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첫사랑의 모양이었다.